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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Gray Sep 26. 2020

가족애란 무엇인가

암을 둘러싼 가족애

아버지가 암을 완치하셨다. 사실 2년전에 이미 완치판정을 받으셨지만, 혹시 모르는 재발을 염두에 두고 3년 이상 정기검진을 받아오셨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더이상 정기검진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소견을 받았다. 담당의는 이렇게 100프로 회복된 경우는 전례없던 사례라 학계에 보고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아버지의 항암치료 과정에서 이 짧은 단면에 풀기 어려운 무수한 일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정이 서로 아끼고 의지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그건,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달랐다. 사람들은 쉽게 이야기한다. 가족 중 누가 아프면 제 일 다 제쳐두고 매달릴 것이라고. 그러나 막상 그게 현실이 되면 애초 마음 먹었던 것처럼 잘 되지 않는다. 그건 가족에 대한  애정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나쁘게 되길 바래서 그런 것도 아니다. 각자의 현실을 지키면서 병간호를 한다는 것에 대해 한번도 겪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비롯된 괴리일 뿐이다.


나 역시 아버지가 암에 걸리셨을 때, 열 일 제쳐두고 아버지의 병간호에 매달릴 작정이었다. 그러나 20대 대학생이었던 나는, 사실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았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완쾌를 위해 뭐든 다하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항암치료 기간이 1년, 2년, 3년이 지나가면서 나는 점점 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 시절이 내가 평생 꿈꿔왔던 직업을 준비하던 시절과 맞물렸었다. 난 내가 실패하게 된 이유를 아버지 병간호 탓으로 돌릴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그 핑계를 대면서 슬슬 아버지 병간호를 어머니와 동생에게 맡겼다. 나는 우리 집안의 장자니까, 아버지가 쓰러지면 우리 집안을 책임져야하니까, 그러니까 아버지가 쓰러져도 나는 집안이 무너지지 않게 내 할 일을 하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 때 당시에는 그게 내가 할 일 이라고 자위하며 죄책감을 덜어나갔다.


그러나 마음이 강철로 만들어진 사람이 아니고서야 나처럼 마음먹었다고 해서 죄책감에서 완벽하게 벗어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난 스스로 위안하면서도 계속 가족에게 미안해했다. 그래서 내 일을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를 돌보는 일도 아닌 어중간한 삶을 살았다. 가족들도 주변 친지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다. 남편이 아픈데 어떻게 일을 하러 떠날 수 있나며 욕을 먹었던 엄마, 아버지를 돌보느라 아무 일도 시작할 수 없었는데 직업이 마땅치 않다며 욕을 먹었던 동생, 아버지가 아픈 데도 자기 성공하겠다며 악착같이 도서관을 간다고 욕 먹었던 나.


이 일을 겪고 나서부터는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는 말의 무게에 대해 백번 천번 곱씹게 된다. 특히나, 이와 아주 조금이라도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그건 바람처럼 가벼운 말 같이 느껴진다. 이 경우만큼은, 경험해보지 않은 자가 함부로 내뱉는, 아무런 뜻도 깨달음도 없는 무취(無臭)의 문장과 같다 생각한다.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숨겨져 있던 이야기들을 연구하는 학문들이 있다. 보건사회학, 질병사회학 분과에서는 이처럼 환자 가족의 상황, 정신건강 등이 어떻게 환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 또 역으로 가족구성원의 질병으로 인해 나머지 가족들이 어떤 상태에 처하게 되는 지에 대해 연구한다. 특히 이 주제는 국가의 건강보험제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 경제학에서도 중점적으로 다루는 분야이기도 하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아프면 나머지 가족이 희생해야한다는 것.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나조차도 쉽게 이야기 했을 것 같다. 그러나 막상 그 하나의 사실이 본인의 생애 전반을 휘젓는다는 잔인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그 누구도 쉬이 희생을 입에 담지 못할 것이다. 확신한다. 그러니 함부로 이야기 하지 말자. 아무리 사이가 좋은 가족이라 할지라도 오랜 병수발 앞에서는 지칠 수 있고, 달라 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는 타들어가는 독한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공부하러 가는 내게 늘 그러셨다. 괜찮다, 우리 딸 역시 잘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본인이 아프신 것 보다 자식이 본인 때문에 희생할까봐 더 전전긍긍하셨다. 아버지는 되려, 아버지의 암이 자식의 진로에 걸림돌처럼 여겨질까봐, 그걸 더 두려워하셨다. 당장의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자식에게 누를 끼칠까봐, 자식의 앞날에 지원을 못해줄까봐, 그것 때문에 더욱 괴로워하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내가 병간호를 하는 것보다 내 할 일에 충실한 것에 더 기뻐하셨다. 그 많은 감정의 교류를 타인이 알까. 그 많은감정의 행간에 대해 타인이 이해할까.


가족애를 누구보다 강조하는 집안이 있다. 그래서 남의 가정살이에 대해 화목하고 화기애애한 자신의 가족에 중점을 두고 평가한다. 내 지인 중 한명이 그랬다. 자신은 아버지가 편찮으시면 일을 다 때려치고 아버지 병수발에 매달릴 거라 했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 집은 분명 화목하고 화기애애한 집은 아니었다. 지면에 풀어낼 수 없을 만큼의 갈등과 다툼이 많았던 집안이다. 가족애를 강조하는 시선에서 본다면, 결격점이 많다.


그럼에도 우리 가정은 위기상황에 나름의 방식으로 대처해서 여기까지 왔다. 난 그게 존중 받았으면 좋겠다. 시중에서 흔히 잘 팔리는 화기애애 가정분위기가 아니더라도 어려움에 맞서 다 같이 극복해나가는 가정, 싸우더라도 가족구성원의 아픔에 함께 눈물 흘릴 줄 아는 가정. 그게 내가 겪었던 최대한의 따뜻한 현실이다.


상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말이, 아버지의 항암치료에 빗대서야 생생하게 다가온다. 상상과 현실은 다르다. 난 가족을 위해서 뭐든 할 수 있어라는 말은 정말 그 말이 필요할 때를 위해 접어뒀으면 한다. 그리고 말의 무게에 대해 한번 더 생각했으면 싶다.


막상 닥치기 전까지 아무것도 아닐 일들에 대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가 그 노고를 치하해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무섭도록 파고드는 사람들이 있다. 환자의 가족에 대한 연구가 그렇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그 주제에 대해 절대 놓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난 그런 사람들의 사상이 모여 세상이 아주, 조금씩 바뀐다고 믿는다.



* Aude béliard, Jean sébastien edeliman,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 가족들의 생애사를 주로 연구한 프랑스 학자들입니다. 물론 보다 더 저명한 학자들이 많겠지만 제가 곁에서 지켜본 학자들 중에서는 누구보다 이 문제에 관해 진지한 분들이라 한번쯤 관련 논문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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