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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Gray Oct 17. 2020

국가가 내 건강을 책임지는 일에 대해

건강보험은 문화고, 정서다

자유주의 건강보험제도(주로 영미권)하에서는 일하는 직장인들과 회사의 분담금으로 건보 예산이 마련된다. 따라서 직업이 있는 직장인들은 분담금을 낸만큼 국가건강보험으로 보장 받는다. 반면 실업자나 자영업자 등에 대한 보장책이 없거나 매우 적다. 즉, 일을 해서 보험금을 납부할 수 있는 사람보호가 가능하고, 그 밖의 사람들은 보호가 거의 안된다. 기여한만큼 돌려준다는 게 이 제도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많은 사람들을 폭넓게 커버해 줄 이유도 없고 예산도 없다. 이마저도 미국 같은 경우는 보험제도의 민영화 수준이 높아서 사보험에 반드시 가입해야 아플 때 보장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분담금을 내지 않더라도 국가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으려면 유명한 영화 "다니엘 블레이크"처럼 자신이 그 누구보다 아프고 가난하다고 스스로 증명하고 다녀야한다. 그래서 국가 지원을 받는 사람들은 쉽게 사회의 최하층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사회민주주의 건강보험제도(주로 북유럽)는 국민 모두에게 높은 수준의 국가건강보험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즉 개인을 책임지는 것은 가정이 아니라 국가라는 개념이 강하다. 그래서 국가가 모든 사람들을 책임지기 위해 돈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세금을 많이 걷는다. 그러니까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든 적게 버는 사람이든 다 세금을 많이 내고 똑같이 국가로부터 보장받는다. 특히, 금은 주로 누진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부유층일수록 조세부담이 크다. 그러니까 극단의 시각으로 보면,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이 타인을 위해 경제적으로 희생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생산성이 높은 사람들이 세금을 덜 내는 나라로 이주하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 제도 하에서 국가보조는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제공되기 때문에 수혜자들이 부정적으로 낙인 찍히는 경우는 드물다. *


근데 사실상 국내총생산 관점에서 보면, 세금으로 건보를 충당하든, 담금으로 건보를 충당하든 변화가 없다. 왜냐면 분담금이나 세금이나 결국엔 공공의료서비스 구매에 다시 쓰이니까 말이다. 즉, 회사들이 분담금을 많이 내거나, 국민들이 세금을 많이 낸다고 해서 국내총생산이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게 아니라는거다. 그래서 일부 거시경제학자들건강보험모델의 차이는 결국 건강보험과 관련된 돈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이 돈을 어떻게 분배하느냐의 문제라고 설명한다.


작년 미국 대선에서 버니 샌더스가 주장한 보험개혁정책, 그리고 이른바 오바마 케어라고 불리는 Affordable Care Act는 기본적으로 분담금형식으로 운영되는 보험정책을 세금중심으로 전환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게끔 하자는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 근데 세금중심으로 전환할 경우 정률로 부과되기 때문에 수입이 많은 부유층에서 반발이 심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상 까보니 차상위계층을 포함한 일반 중산층에서 더 크게 반발을 했다. 왜냐면 차라리 사보험 가입을 안했을 때는 보험비를 지불할 필요가 없었지만, 세금을 걷을 경우 당장의 가계소득이 무조건 줄어들기 때문이다.


버니샌더스와 오바마, 출처 연합뉴스 


국민건강보험 역시 우리가 내는 사보험이랑 마찬가지로 미래에 내가, 그리고 국가가 아플 때를 대비하기 위해 드는 보험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처럼 심각한 건강재해에 대비하기 위해 모든 국민들이 엄청 큰 돼지저금통에 돈을 넣는거다. 근데 이 돼지저금통에 각자 돈을 얼마를 넣을 것인지, 그리고 누가 돼지저금통에서 돈을 꺼내 쓸 것인지 하는 문제는 각 나라마다 다르다. 이건 옳고 그름, 좋은 제도 나쁜 제도의 문제가 아니고 그 나라의 역사와 국민정서에 따라 다른 것 뿐이다.


예를 들어, 덴마크의 경우 15살 즈음이 되면 부모와 같이 사는 청소년들은 부모님께 집세를 일부 부담하기 시작한다. 또 집안일을 할 경우 부모님이 금전적으로 보상을 해주고, 용돈벌이를 하기 위한 일을 시작한다. 경제적인 독립 뿐만인 아니라 정신적 독립 역시 이른 나이에서부터 시작한다. 청소년기 학생들이 부모집에 여자친구나 남자친구를 데려와 동침을 하는 일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부모와 자녀가 수직적인 상하관계가 아니고 각각의 개인이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결정도 니 몫, 책임도 니 몫이라는 말이 통용된다는 거다. 18살이 되면 대부분 부모님 집에서 독립할 준비를 해, 평균적으로 20살이면 부모 집에서 떠난다. 스물초반이 넘어서도 독립을 하지 않으면 부모는 슬슬 자녀의 정서적 발달에 대해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근데 20살이 무슨 돈이 있어서 부모 도움도 안 받고 집에서 독립을 할 수 있을까. 이때 국가가 나선다. 청년들을 위한 전폭적인 경제적 지원을 해준다. 그러니까 덴마크 국민들은 사회에 나올때부터 국가보조의 엄청난 수혜자가 되는거다. 또, 많은 세금을 걷어야하기 때문에 국가는 실업률을 낮춰 모든 국민들이 언제든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이런 맥락에서 갭이어(gap year)가 생겨났다. 성년 전에 갭이어를 가지면서 독립성을 기를 준비를 하는거다. 그 시기에 반드시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게 아니라 독립적인 성인으로서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떤 일을 직업으로 삼을 지 스스로 탐색해보는거다. 그래서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학업시작 연령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즉, 국가가 강력한 보호막을 제공하고 일자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기 때문에 젊은층들은 보다 유연하게 진로를 꾸려나갈 수 있다. 또, 어릴 적부터 "선택의 자유와 책임"을 내면화하기 때문에 연령에 따른 압박, 남과 같은 길을 가야한다는 압박이 적다. 일을 하다가 공부를 시작하기도 하고, 공부를 하다가 일을 하기도 하면서 자유롭게 결정하고 책임진다.***


이렇게 덴마크의 높은 개인주의 수준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국가보조의 수혜자가 되게끔 만드는 문화적 배경이 되고, 이렇게 사회에 나설 때부터 국가로부터 전폭적인 도움을 받은 개인들은 세금을 많이 걷는 것에 대해 비교적 관대해지며, 자신이 필요할 때 타인(세금을 많이 내는 국민들)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만큼 돌려줘야한다는 연대(solidarity)의 기본 정신을 되물림하게 된다. 이론적으로, 덴마크는 사회민주주의 복지모델의 대표적 예로, 개인 보호에 대한 탈가정화(defamilarization) 및 국가책임론, 취업시장의 높은 안정성, 그리고 민주적인 가족모델을 통한 독립성에 대한 규범 학습, 그리고 국민들 사이의 연대(solidarity)에 대한 공감의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요인들이 모여서 지금의 건강보험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이 없이 갑자기 분담금으로 이루어지던 보험정책을 세금을 많이 걷어서 운영하겠다고 하면 당연히 많은 반발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잡설이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이런 배경이 없이 좋아보인다고 갑자기 갭이어 제도를 도입해봤자 그게 제대로 운영될 턱이 없다. 개인수준에서도 한국사람들이 일을 그만두고 갭이어를 갖거나 워홀을 떠나는 등의 시도와 덴마크인들이 그렇게 하는거랑 완전 다르다. 국가보장정책도 매우 다르고,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인식도 다르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전통적인 가족관 아래서 자신을 포지셔닝하니까. 


어쨌든 국가나 개인이나 고정된 게 아니니까 정책들도, 사람들 생각도 계속 달라지고 있고, 또 달라질 것이다. 이처럼 건강보험정책, 복지정책을 세울 때 경제적, 정치적 접근법 뿐만 아니라 사회학적, 문화적 접근법이 필요하다. 이번 장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역사적인 관점 역시 건보정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어떻게 국민-정부 간의 관계가 정립되어 왔는지, 또 시민의식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살펴봐야 국민정서에 맞는 정책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니 갑자기 뚱딴지 같은 정책을 들고 나오는 경우는 흔히 말하는 "문과적 소양"이 부족해서 그런거라고 너그러이 생각해주자. 



*  < The Three Worlds of Welfare Capitalism >, Gøsta Esping-Andersen

** < Devenir adulte, sociologie comparée de la jeunesse en Europe>, Cécile Van de Velde

*** J.C. Lagrée, < Cultural patterns of transition of youth >, Berkely journal of sociology, 41-7,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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