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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Gray Apr 11. 2023

큰 꿈을 품고 산다

초딩 때 EBS에서 어떤 아리따운 여성분이 나와서 본인은 외국어를 자유로이 쓰는 직업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걸 보고 초딩 인생 3년차 때 장래희망을 적어내는 란에 ‘외교관'이라고 썼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분의 직업은 외교관이 아니라 유명한 통역사였다. 어쨌든 그 길로 장장 15년 동안 내 꿈은 외교관이 되었다. 그래서 전공도 정치외교학말고 다른 과는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대입 이후로 외무직 시험을 오래 준비했다. 장장 15년을 부모님, 친구들, 지인들에게 떠들고 다녔다. 내 꿈은 외교관이라고. 근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실패하고 포기했다. 


그 뒤로 지금에 이르러서 다시 꾸게 된 꿈은 ‘국제보건기구 WHO 사무총장'이다. 지금도 그때처럼 또 맘껏 떠들고 다닌다. 내 꿈은 WHO 총장이라고. 처음 만나는 사람이든, 오래 알고 지내는 사람이든 그냥 내 꿈은 그렇다고 떠들어대고 있다. 


나라고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이 꿈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는가, 확률적으로만 생각해봐도 WHO 총장 임기가 5년이고, 내가 지금 서른이 넘었으니, 앞으로 내가 경제활동인구연령의 막차인 65세까지, 더 넓게 잡아서 75세까지라고 해도 내 생에 WHO 총장이 바뀔 일은 대략 8번이다. 8번 내에 이 지구 상 인간들과 경쟁해서 그 자리를 따내야 하는 데 그게 어디 감히 인력으로 쉬이 되는 일이겠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 건 나도 안다. 그래도 그냥 떠들고 다닌다~ 처음 우리 시부모님께 인사를 드린 자리에서도 저는 WHO 총장 되는 게 장래희망이라 결혼하고 남편과 떨어져 지내더라도 외국에 박사를 나갈 예정입니닷! 하고 당당히(?) 포부를 밝혔더랜다. 쟁쟁한 학교에서 학위를 마치고 10년 20년 가까이 현업에서 일해오신 박사님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저는 박사 끝내고 WHO 총장되는 게 꿈입니다! 라고 이야기 했더랜다. 


내 꿈을 들은 어른분들 모두 하하하 좋은 꿈이다 해주셨다. 다음번에 만났을 때도 WHO 총장되어야지! 라고 웃으며 이야기 해주시는 게, 난 그게 너무 즐겁더라. 그 분들이 내 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 지는 모르겠다. 허나 그게 야망이든 허풍이든 거짓말이든 남을 해하는 일이 아니라면, 자기 안에 꿈을 품고 사는 게 어찌 욕먹을 짓이겠는가. 물론 어디고 내 꿈을 비웃고 갉아먹는 자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객관적', ‘비판적', ‘현실적' 이라는 말로 남의 꿈을 난도질 하고 다니는 칼잡이들이 있다. 근데 그러든지 말든지. 인생에 어떤 꿈을 품으며 사는 지는 본인만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나의 일에 관심없다는 말 자주 들어보지 않았는가? 사실이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면 꿈도 마음대로 꿔도 된다. 어차피 남들은 내가 그 꿈을 이루는 데 성공하든 실패하든 별 관심이 없다. 실패해봤자 칼잡이들한테서 ‘너 그렇게 떠들더니 겨우 이런 일 하니?’ 라고 놀림받는 게 전부다. 뭐 그딴 게 무섭나. 남에게 그런 칼날을 던지는 애들은 스스로 역시 별볼일 없는 경우가 더 많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꿈 덕분에 일상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 나는 이렇게나 크고 멋진 꿈을 꾸는 사람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고 위로하면서 더 나은 삶을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사람은 모두 남들과 다르게 특별하다. 특별한 사람만이 꿈을 꾸는 게 아니고, 모든 사람이 다 태어날 때부터 특별하다.


그러니 자기 마음대로 꿈을 꿔도 된다. 자기 마음 깊은 곳에 품은 꿈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나중에 실패할까 두려워 숨길 필요도 없다. 말하는 대로 된다고 우리 유느님이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더 이야기하고 더 떠들어대도 된다. 내 꿈은 이렇게 대단하다고 더 이야기해라. 그렇게 자신이 품은 광대한 꿈을 더 많이 이야기 할수록 본인이 그런 사람이 되어간다. 내 꿈이 하늘 끝에 닿아있다면, 적어도 중간은 가지 않겠는가. 그렇게 당찬 포부를 이야기하고 움직여라. 입만 나불나불 포부만 이야기한 채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애들은 칼날 맞아도 싸다. 장부가 칼을 들었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뭐라도 해라. 그런 큰 꿈을 이야기했으면 책임지고 무라도 썰어라. 큰 꿈을 꾸고 무라도 써는 애들은 뭐가 돼도 된다. 남들은 몰라도 난 그렇게 믿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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