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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Gray Feb 21. 2024

유럽사례를 통해 본 연금개혁에 대한 인구학적 접근

프랑스의 국립인구통계연구원 (Institut national d'études démographiques, INED)은 프랑스 인구통계와 관련된 여러 사안에 대한 장기 추적연구 및 관련 보고서를 발간하는 국책연구기관이다. 한국의 통계청에 가깝다고 할 수 있으나 통계를 담당하는 국책기관인 프랑스국립통계경제연구원 (L'Institut national de la statistique et des études économiques, INSEE)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는 점에서, 통계청의 기능과는 별도의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이라고 볼 수 있다. 


프랑스 국립인구통계연구원(INED)에서는 크게 가족 및 성, 출산 및 사망, 건강 및 보건, 이민문제, 차별과 통합, 주거 환경, 성별문제, 노령화 및 연금문제 등 여러 가지 현안을 인구학적인 관점에서 다룬다.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보건사회연구원에서도 유사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나, 프랑스의 INED에서는 인구학 연구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보다 방대한 규모의 연구를 진행한다. 


코로나가 발병했을 때 즉각적으로 인구 전수조사인 센서스(Census)에 가까운 대규모 조사를 무려 3차례 이상 진행한 곳도 바로 이 기관이다. 그만큼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인구 문제를 관찰하는 기관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인구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담하는 인구통계기관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굉장히 우려되는 부분이다. 


사실 프랑스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 2차 세계대전 시기까지 극심한 인구감소를 겪은 나라다. 1896년, 프랑스의 문호인 에밀 졸라는 le Figaro지에 ‘인구 감소라는 비극’이 다음 작품의 주제가 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으며, 바로 뒤 이은 해인 1897년, 프랑스 인구통계학자인 자크 베흐티옹(Jacques Bertillon)은 ‘프랑스의 소멸이 임박한 명백한 증거를 목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1950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인구감소 문제가 심각한 국가가 바로 프랑스였다. 


이 같은 배경 하에, 1945년에 국립인구통계연구원(INED)이 설치되었으며, 이는 국립통계경제연구원(INSEE)의 설립연도(1946년)보다도 한 해 이르다. 이 같은 국가차원의 인구통계연구 지원은 세계대전 후 국가 재건을 위해 통계자료 수립이 필요하다는 정치적 의지로부터 탄력을 받아, 이 후 약 80년 간 프랑스의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조해왔다. 현재 프랑스는 OECD 국가 중 3번째로 높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프랑스 국립인구통계연구원을 위시한 국가 차원의 중장기적 인구문제 연구 및 개입이 상당한 효과를 보였다는 점은 한국의 현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INED에서는 매년 연차보고서를 발표하는데, 2021년도 발간된 보고서의 노령화 섹션에서 이례적으로 한국을 비교 대상군으로 한 포커스 연구를 소개했다. 유럽은 EU국가 간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EU국가 간의 비교연구를 주로 하는 한편, 비EU권 국가와의 비교연구는 상대적으로 미진한 편이다. 이 같은 EU 중심적인 연구 경향에도 불구하고, 노령화나 인구감소 문제를 다룰 때에는 이례적으로 한국과 비교를 하는 케이스들이 빈번하게 발견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인구구조 변화가 그만큼 극적으로 심각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2021년도에 발간된 INED의 보고서를 살펴보면, 2015년도 인구구조에서 65세 이상 노령인구 비율의 증가폭이 홍콩이 1위 (4.5%), 이스라엘이 2위 (4.2%), 한국이 3위(3.8%)로 나타났다**. (표1)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인구 구조에서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을 2050년까지 예측해 볼 때, 한국이 홍콩이나 이스라엘보다 더 빠른 시일 내에 30%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경우, 사실 2050년을 기준으로 노령화 인구가 전체의 20%에도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이스라엘은 노령화 증가율이 2위로 매우 높으나, 인구 구조 자체가 젊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기 힘들다는 뜻이다. 그에 반해 한국은 기존 인구구조 자체가 이미 노령화가 심각할 뿐만 아니라, 노령화 증가율까지 높다. 


한국에서 인구 노령화 문제를 언급할 때, 주로 비교군으로 삼는 일본의 데이터도 살펴 볼 수 있다. 일본은 노령화 증가율이 2.5%로 상대적으로 높은 편은 아니지만, 이미 노령화가 많이 진행되어 있기 때문에 2050년도 아닌, 불과 2030년에 노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3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그림 1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이 이 같은 일본보다도 훨씬 인구 노령화 문제가 극심하다는 것이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 바로 화살표 길이다.




그림 1의 화살표 길이가 의미하는 것은 65세 인구 비율이 10%에서 20%로 증가하는 데 걸리는 기간, 그리고 20%에서 30%로 증가하는 데 걸리는 기간을 의미한다. 그래프 맨 첫 번째 프랑스의 경우, 65세 인구 비율이 10%에서 20%로 증가하는 데 1940년에서 2030년까지 약 80년이 걸린다. 그래프 아래에서 두 번째 한국의 경우, 그 기간이 채 20년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20%에서 30%까지 도달하는 데에는 채 10년도 걸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한국보다도 일찍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과 비교했을 때, 그 심각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일본의 경우 10%에서 20%으로 증가하는 데 20년이 걸렸고, 20%에서 30%로 증가하는 데 20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즉, 한국은 고령화 사회를 대비할 사회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함을 의미한다.


프랑스와 같이 80년에 걸쳐 서서히 고령화 문제를 대비해 온 나라와, 불과 30년도 안 되는 사이에 인구의 30%가 노령인구가 되는 한국은 사회 시스템을 정비하는 데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연금 고갈 문제이다.


80년이라는 한 세기에 가까운 기간 동안 세대 간 연금에 대한 컨센서스를 구축해 온 프랑스와 달리 한국은 세대 간 컨센서스를 구축할 사회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는 현재 연금을 둘러싼 세대 간의 갈등을 심각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배경으로 작용한다. 연금에 대한 세대 간 컨센서스란 개별 국민의 노후에 대한 필수 공공보장책으로서 연금제도에 대한 신뢰 (권리에 대한 신뢰)와 이를 위한 생산 가능 인구의 세금 납부 필요성에 대한 세대 간 공감대 (의무에 대한 공감대)를 일컫는다. 


프랑스의 경우, 오랜 세대에 걸쳐 연금제도의 수혜에 대한 신뢰와 연금제도 유지를 위한 납세에 대한 의무를 학습해왔다. 그러나 한국은 급격한 인구 감소로 인해 이 같은 컨센서스를 짧은 시간 내에 구축해야 하기 때문에, 보다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전 국민 의견조사 수행, 세대 간 TV 토론회 진행, 연금 수혜자와 납세자의 상황을 묘사하는 공감대 형성 캠페인, 연금개혁 관련 공청회에 일반 청년집단을 선정하여 초청장 발부 등 공론화의 장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세대 간의 사회적 합의와 더불어, 연금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도 향상을 위해 국가차원에서도 연금제도 운영의 투명성과 정보접근성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공단의 자금 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며,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연금 상품 및 투자 상품과 연금공단 투자의 기대수익의 직접 비교를 가능하게 하는 정보공개 서비스가 필요하다. 


실제로 국민연금 운영의 모범으로 손꼽히는 덴마크의 경우, 국민연금 납부자가 연간 수익율 및 연간 관리비용 등 다양한 변수를 기준으로 국민연금과 민간연금 상품을 직접 비교할 수 있는 기능 뿐만 아니라, 예상 연금지금액과 리스크 기반의 연금투자 불확실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필요성과 세수 확보에 대한 합의가 단순히 ‘사회적 선의’에 호소하는 제도가 아니라, 경제적 필요성과 합리성에 기반한다는 인식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국민연금공단의 기금운영 시스템에는 민간 시장 원리가 보다 철저하게 도입되어야 하며, 납부자들을 대상으로 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장기적인 연금 세수 확보를 위해 젊은 층의 노동시장 진입 연령을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은 대학 교육 4년, 취업준비 또는 대학원 2년, 남성의 경우 군복무 기간 2년의 시간으로 인해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이 매우 늦은 편이다. 한국과 같이 인구가 급감하는 나라일수록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 지연은 생산가능인구(만15세~64세)의 실질적 비중을 급격하게 악화시킨다. 즉, 안정적인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생산가능인구에 해당하는 최소 연령대부터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유입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 


실제로 유럽 내에서도 강력한 사회보장제도와 연금제도를 보유하고 있는 북유럽 국가의 경우, 노동시장 진입연령이 낮은 것이 사회보장체계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하나의 배경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덴마크의 경우, 실질적인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평균 연령이 15세로, 15세 무렵이면 부모와 같이 거주하는 청소년들은 부모에게 집세를 일부 부담하기 시작한다. 18세가 되면 대부분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경제적 자립을 시작한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청년층의 경제적 조기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청년실업률을 낮추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다룬다. 또한, 대학 지원을 선택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고등학교 졸업 이후 1년간의 갭이어(Gap-year)를 통해 직업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제도적 노력은 결과적으로 보편적 연금정책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실질적 생산가능인구 증가로 이어진다.


공적연금제도는 기본적으로 경제성장과 인구성장에 밑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경기침체와 인구급감이라는 요인은 필연적으로 연금제도에 대한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특히 한국은 이례적인 인구 감소 현상을 겪는 국가로서 사실상 인구 회복 문제에 있어서 비가역적인 임계선을 넘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 같은 거시 맥락을 고려할 때, 단순히 연금제도만을 개편하는 방식은 본질적인 해결방법이라고 보기 힘들다. 복지 선진국들 사례를 비추어 볼 때, 연금제도의 설립과 유지는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끈질긴 설득 작업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사회에 주어진 사회적 시간이 매우 짧다는 점에서, 국가차원에서 연금제도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고 대대적인 설득 작업이 필요하다.




* Tomlinson, Richard (1985). The ‘disappearance’of France, 1896–1940: French politics and the birth rate. The Historical Journal, 28(2), 405-415.

** Carole Bonnet, Emmanuelle Cam Bois, Romeo Fontaine (2021), Dynamiques, enjeux Démographiques et socioéconomiques Du vieillissement Dans les pays à longévité élevée, Population INED

*** Insurance & Pension in Denmark (2020), Why does the Danish Pension System Rate so High on the Mercer Index, https://www.fogp.dk/en/press-release/why-does-the-danish-pension-system-rate-so-high-on-the-mercer-index/

**** Esping-Andersen, Gosta (1990). The three worlds of welfare capitalism. Princeton University Press.

***** Van de Velde, Cécile (2014). Devenir adulte: sociologie comparée de la jeunesse en Europe. Pu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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