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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슐랭을 읽는 여자 Jan 08. 2024

서머셋 몸 '점심'의 아스파라거스

아스파라거스, 채소더라도 탐욕스런 그 이름

내가 아스파라거스를 가장 맛있게 먹어본 것은 뉴욕의 Eleven Madison Park --- 명실상부 미국 1위이자, 세계 3위 레스토랑의 품격이라고나 할까. 나는 촉촉하게 익혀 나온 아스파라거스를 한 입 베어물었다. 고소한 버터물에서 반신욕을 한 듯 부드러운 버터의 풍미가 아스파라거스의 우아한 채소향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아 이정도면 채식을 할 수 있겠다’라는 책임감 따윈 안중에도 없는 믿음까지 생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방광 안에서 쪄낸 아스파라거스입니다.”      


뱉을 수는 없었다. 너무 맛있다. 혹시나 인생의 반을 미국에서 살아온 나 자신의 반쪽짜리 정체성과 유학생의 불안정한 언어 능력에 온갖 무게와 초점을 맞추고는, 내가 그저 단어를 잘못 알아들었겠거니 세뇌를 걸었다. 하지만 저기 전방 5미터에서 라섹을 하여 양쪽 시력이 1.0이 된 나의 선명한 눈에 보이는 것은- 옆 테이블을 향해 다가오는 바로 터질 듯이 부푼 방광 속에 질퍽이는 버터물 사이로 곤한 잠을 자고 있는 아스파라거스- 바로 내가 먹고 있는 아스파라거스의 한창 조리 중의 모습이었다.    

  

호기심도 많은 부부 때문에 풍선처럼 터질듯한 방광을 보며 아스파라거스를 씹었다. 아직도 그 터질듯한 방광의 선정적인 이미지도 잊을 수 없다. 무엇보다 더 소름 돋는건,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때 그 아스파라거스의 맛을 또 먹어보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더 크다는 것이다. 

 

달과6펜스의 저자로 유명한 서머셋 몸의 단편 ‘점심’에서도 나와 같이 촉촉이 익은 아스파라거스의 유혹에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 나온다. 그녀가 주인공은 아니고, 가난한 작가가 한 젊은 여인의 식사 요청을 뿌리칠 배짱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전제산이 뜯기는 이야기를 생동감있는 감정 묘사와 함께 들려준다.      


그는 그녀가 정한 ‘레스토랑’이라는 장소에서 상당한 공포와 분노를 느낀다. 그녀는 메뉴를 보며 말했다. “전 점심땐 아무것도 먹지 않아요.” 차라리 말을 하지 말 것이지. 화자는 예의상 그래도 시켜보라고 말을 넌지시 건낸 것이 문제였다. 여자는 내심 한 그릇 정도는 시킬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메뉴에도 가격이 나와있지 않은 최고급 연어 요리를 시킨다. 그러고는 서버가 예의상 묻는 질문에 하나같이, “전 한 가지 이상은 안먹으니까. 하지만 알젓이 있다면”을 시작으로 샴페인, 아스파라거스, 복숭아, 아이스크림 그리고 차까지 다 시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시절 한달 먹고 살 돈이라곤 80프랑 밖에 없는 화자는 하루에 한달치 식비를 꼴라당 써버린 것이다. 그것도 맘에도 없는 40대 여성한테. 여자의 부탁을 거절한 만한 배짱이 없다는 말도 안되는, 하지만 현실에서도 판을 치는 그러한 이유로.      


결국 화자도 자신의 욕심에 자신이 당한 꼴이라, 읽는 독자들은 재밌다. 분명 번역본인데도 불구하고 참 맛깔난 글솜씨이다.      

“아스파라거스가 나왔다. 큼직하고 국물이 흥건하게 괴어 있고 침이 꿀떡꿀떡 넘어가는 놈이었다. 무르녹은 버터의 냄새가 나의 콧구멍을 설먹설먹하게 해주었다. ---기특한 유태인들이 불에 구운 현물을 바쳤을 때 여호와의 콧구멍이 설먹거렸던 것처럼--- 염치도 없는 그 여인이 크고도 요염한 그 입 가득이 아스파라거스를 처넣고 삼키는 꼴을 바라보며 여전히 나는 정중한 태도로, 발칸 제국의 연극 현황에 대하여 역설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그녀는 그 아스파라거스를 다 때려잡았다.     

 

문장마다 화자가 가진 분노가 생생히 담겨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얼마나 싫으면 대체 저런 묘사를 하는 걸까? 작가나 저 화자라는 작자나 대단하다. 서머셋 몸의 단편집은 구하기가 어려운 단점이 있는데, 한번쯤 그의 다른 단편집이라도 읽어보길 추천한다. 분명 영국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자란 사람인데, 요즘 시대 그리고 우리나라 감성에도 어색하지 않은 정서 표현이 탁월하다. 서머셋 몸 같은 썰 장인을 또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해본다. 


             

프로방스 스타일의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요리      


<재료>

아스파라거스 한다발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를 추천한다. 그냥 두말 필요없이 더 맛있고, 통통하고 부드럽다.) 

1 테이블 스푼 레몬 주스      

프로방스 스타일 레몬 마요 소스 

1 계란 노른자 

2 티스푼 머스터드 

소금 

5 테이블 스푼 올리브 오일 

2 테이블 스푼 레몬 주스 

1 티스푼 믹스허브 (heabes de provence 추천)          


<만드는 법> 

1. 아스파라거스를 필러로 다듬는다. 

2. 아스파라거스 맨 밑을 3센치정도 손으로 뚝 끊는다. 

3. 팬에 물, 소금, 레몬 1테이블 스푼을 붓고 끓인 뒤, 아스파라거스를 넣는다. 열을 줄이고, 천천히 12분 정도 아스파라거스를 익힌다. 

4. 노른자, 2티스분 머스타드, 소금을 믹서에 갈고, 섞는다. 그 뒤 오일, 레몬주스, 허브를 넣어 소스를 완성한다. 

5. 가지런히 아스파라거스를 담고 그 위에 소스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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