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놀자.

베트남에서 가정보육

by Jane J

만 4살이 된 둘째는 2살 때부터

다니기 시작한 유치원을

3개월 전에 그만뒀다.


내가 유치원을 보내지 않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말이 너무 늦게 트여 내 속을 태웠다.

5살 전까지 내가 가정보육을 했었고,

유치원은 그 이후에 갔다.

그리고 6살이 되도록 입을 닫았다.


말만 안 할 뿐이지 말귀는 다 알아들어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부모 입장이 되어보니 밤낮으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초등학교를 들어가서도 딸은

여느 아이들처럼 유창한 대화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교우관계에 영향을 주고

아이가 상처를 받을까 늘 노심초사였다.


혹시 내가 가정보육을

오래 해서 말이 늦었나 싶어

둘째는 누나의 영향으로

유치원에 빨리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년부터 잘 가던 유치원을

등원할 때마다 가기 싫다며

울고 떼쓰기 시작했다.

그런다고 마음 약해질 내가 아니지만,

아이는 몸이 연속적으로 아팠다.


아프면서 크는 거라 생각하기엔

병원 가는 횟수가 너무 많았다.


단순한 감기로 시작해서

기관지염으로 점점 확대해 갔고

밤새 보살피고 회복시켜

다시 보내면 금방 또 옮아오고 아팠다.


아이가 면역력이

약해서겠지만 계속 병치레하며

얼굴이 수척해져 가니

지켜보는 내 마음도 좋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유치원 상담이 있어

갔을 때 실내 온도에 깜짝 놀랐다.


여기 날씨가 무척 덥긴 해도

성인인 내가 느끼기에

유치원은 냉장고 안처럼 너무 추웠다.


아이들은 뛰어놀고 있었지만,

기관지가 약한 내 아이에겐

힘든 환경이었다.



비용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일반적인 한국유치원에 다니고 있었지만,

1년 비용은 한화 1100만 원에 달한다.


1살씩 올라갈수록 점점 오르고

유치원은 7살 때까지 다녀야 하는데

이 어마무시한 비용을 생각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대학등록금도 아니고,

매년 천만 원이 넘는 비용은

외벌이 가정에 큰 부담이었다.

남편 혼자 버는 수입으로는

버티기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올해 초부터 가정보육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남편은 반대했지만,

아이가 병원에 자주 다니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굳혔고,

결국 설득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주변에도 가정보육을 하는

사람들은 없었고,

혹시라도 아이에게 불리한

선택이 될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오래 곁에 두고,

사랑을 듬뿍 주며 건강하게

키우는 게 지금으로서는

가장 합리적이라 생각했다.


다행히도 집에서 보낸 지난 몇 달 동안

병원에 가는 횟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또래보다 말도 빨리 트였고

표현력도 좋아졌다.

힘든 것보다 함께 하는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나는 완벽하지 않은 부모이지만,

아이와 함께 웃고 울며,

하루를 버텨내는 이 시간은

언젠간 우리 모두의

추억의 시간으로 평생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