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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eong May 25. 2021

영어로 말하기



영어과목을 참 좋아하는 딸이 유학을 가고 싶다고 했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뒤였다. 남편은 호주로 유학 간 아들도 있었지만 절대로 딸은 보낼 수 없다고 했다. 남자 형제만 8명 중 막내인 남편은 딸 사랑이 남달랐다.
몇 달 고민 끝에 이민 가기로 결정했다. 영어는 아들도 하고, 딸도 학교 영어성적이 거의 만 점이었기 때문에 걱정 안 해도 되겠다고 생각을 했다.
호주에 도착했다. “퀸즐랜드 골드코스트”라는 지역은 현지인들도 가장 살고 싶은 곳 1위라고 했다.  퇴직 후 전입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인심은 물론, 기후도 호주 전체에서 가장 좋다고 했다. 칠십여 가구가 살고 있는 타운 하우스로 집을 정했다.
입주 첫날 아침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앞마당으로 나갔다. 옆집 호주 여자가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은 반가운 미소와 표정으로 “굿모닝”하고 인사를 했다. 거기까지는 들렸다. 그다음 이어지는 말은 내가 귀를 막은 건지 그 여자가 소리 없는 말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당황한 나를 본 아들이 와서 인사하고  우리 가족을 소개했다.
다음날부터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도 그렇지만 이웃사람에게 너무 반색하는 표정을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영어회화 책 한 권을 외우기로 결심하고 공부했다. 암기가 거의 끝나자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딸과 대형 슈퍼마켓에 갔다.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계산대에서 내가 직접 해보겠다고 딸에게 말했다. 약간 긴장되었고 드디어 나의 순서가 되었다.
직원: “하이. 하와유 투데이?”
 나: “굿. 땡큐. 유?”
직원: “아임 굿. 땡큐” 이어서 무슨 말인가 했는데 잘 들리지 않았지만 “캐시”라는 말이 들렸다. 부족한 영어 때문에 눈치가 빨라진 나는 순간 현금으로 계산할 건지 물어본다고 생각하고 “예스“라고 대답하면서 현금을 직원에게 주었다. 그러자 직원이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때 딸이 와서 뭐라고 이야기했고 상황은 종료되었다. 못 들었던 말은 ”현금 찾을 거야? “라고 물어보았는데 ”네 “라고 하더니 현금을 주니까 이상했던 것 같았다. 호주는 대형슈퍼에서 카드로 결제하면서 이백 불까지(한국돈 20만 원정도)  현금 인출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시 외출하는 것이 무서웠다. 자신감도 떨어지고 벙어리와 다름없는 신세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앞이 막막했다.
아들 친구가 한국 슈퍼와 교회, 절 등의 위치를 알려주면서 한국 사람들 만나면 정보도 얻고 도움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남편과 절에 찾아갔다. 사람들이 친절하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우리 집하고 가까운 사람들 연락처도 주고 무엇이든 필요하거나 궁금한 점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다. 오랜만에 한국 사람들과 모국어로 대화하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 영어로 말하는 어려움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실수했던 나의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은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며 자신의 실수담을 이야기했다.
십 년 넘게 사신 분으로 남편과 레스토랑에서 식사 후 커피를 주문했는데 콜라가 나왔고, 메뉴를 바꿀 자신이 없어서 그냥 마셨다고 했다. 가장 창피한 기억은 어느 날 해질 무렵 마당에 나갔는데 옆집 여자가 보여서 웃으면서 자신감 있게 큰 소리로 ‘굿모닝! “이라고 인사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순간 자신의 입을 때리고 싶었다면서 크게 웃었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니 약간의 용기도 생겼고 다들 비슷하다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하며 돌아왔다.
주류 판매점에 갔다. VB라는 맥주가 맛있다는 말을 듣고 직원에게 어디 있는지 물었다. 매장이 너무 넓어서 찾기 힘들기도 했거니와 직원에게 연습 겸 말도 걸어 보고 싶었다.
나: 익스큐즈미. 아임 룩킹 포 VB?
직원: 갸우뚱하더니, 쏘리. 텔미 어게인 플리스?
나: VB?
직원: (무안해하며 웃는다. )“쏘리. ”
“이렇게 쉬운 말도 못 알아듣나, 바보 아니야? “라고 생각했다. 직원 손을 끌어다 바닥에 VB라고 썼더니 ”아! VB “ 어려운 퀴즈라도 맞춘 듯 반색했다. 내 귀에는 같은 소린데  입모양을 자세히 보니 V자에서 직원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면서 말하고, 속 터지는 나는 입술을 내밀면서 말했다. 그렇다고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직원이 따라오라고 했다. 진열대 앞에서 직원은 우리를 보며 긴 문장을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1병, 6병씩 포장된 것, 한 박스 중 어떤 걸 원하는지 물었다. 한 박스를 산다고 했다. 직원은 또 질문했다. 냉장고 안에 있는 것과 실온에 있는 것 중 좋아하는 걸 선택하라고 했다. 시원한 맥주 한 박스 산다는 것이 호주에서는 참 어렵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지난 일이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참 힘든 시간이었다. 이야기를 다 하자면 수필집 한 권은 쓸 것 같다. 꾸준히 영어공부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렵다. 한글이 세계 공통어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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