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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eong Mar 10. 2022

사는 이야기

늦여름의 통곡

 

한 여름 백일 동안만 핀다는 배롱나무 꽃들이 불난 듯 벌겋게 타오르더니 어느덧 한 송이만 남아있던 날.

몇 년째 가뭄에 어려움이 많은 퀸즐랜드는 이번 여름도 적은 강수량으로 끝나는 듯했다.

폭우는 아니지만 꽤 많은 양의 비가 타들어가던 산과 들에 내리기 시작했다. 3일 정도 쉬지 않고 밤낮으로 내리는 빗소리가 그 어떤 음악소리보다 감미롭고 웅장하고 감사했다. 땅 속에 뿌리까지 물을 먹으려면 비가 더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당에 나무와 꽃을 보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말이 이런 느낌이란 걸 알았다.

4,5일이 계속된 비로 인해 여기저기에서 침수 소식이 전해졌다. 도로가 범람하고 많은 집들의 도로가 물에 잠겨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인터넷은 물론 전기도 끊긴 집들이 늘어났다. 대형마트, 약국, 식당들까지 전기도 끊기고 직원들이 출근할 수 없기 때문에 문을 닫았다.

이 상태로 이틀이나 더 비는 쉬지 않고 내렸다. 전화로 지인들과 친구들의 안부를 물었다. 한 친구는 집 주변까지 물이 차올라서 집안에서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상황이라며 사진을 보내주었다. 전기와 가스공급이 중단되어 간이 버너로 라면과 커피정도는 먹을 수 있고 창밖의 집들은 지붕만 보이는 상태인데 그것에 비하면 친구 집은 호화로운 생활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한 친구는 뒷마당이 백 미터 정도는 되어 보이는데 끝에서부터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며 ‘집까지 물이 오기 전에 비가 멈추겠지’라고 말했다. 친구 집에 키우는 닭들과 양들이 갈 곳을 잃어 본채까지 올라와서 앞마당으로 모두 피신시켰다고, 집을 잃은 것은 야생동물들도 마찬가지였다. 갈 곳이 없는 캥거루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그야말로 난리도 아니었다.

냉장고의 음식들은 다 상하고 빨래도 할 수 없고 상상만 해도 안타까웠지만 도로가 막혀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대부분 상가는 이틀 후 전기가 공급되었지만 마트에 냉동냉장 식품은 텅 비어있었다. 공급이 불가능한 상태이므로 식사도 대충 해결해야만 했다.

3,4일이 지나 전기는 대부분 연결되었지만 한 친구의 동네는 비가 멈추었는데도 불구하고 전기와 가스는 여전히 공급되지 않았다.

그 결과 평소 인사만 하고 지내던 이웃들과 서로 자신의 음식들을 나누고 힘든 일을 함께하고 이야기하며 웃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을 선물처럼 받았다고 했다.

오로지 자연의 에너지로 일어나고 어두워지기 전에 잠자리 준비를 끝내고 나면 긴 시간 동안 아내와 흘러간 시간을 데려다 달콤한 이야기를 끝도 없이 주고받았던 열흘간의 생활은 또 다른 행복의 순간이라고 했다.

우리 집의 안부들을 물었지만 감사하고 미안한 상태라고 했다. 큰 도로로 나가는 두 갈래 길 중에 한 도로만 침수되었고 한 방향은 통행이 가능했다. 전기도 문제없고 5일째 되던 날 하루 반나절 정도 인터넷 복구를 위해 사용이 불가능했던 것이 전부였다. 지대가 좀 낮은 아래 마당은 물이 좀 많았지만 잠기지는 않았다.

이 집을 구입할 때 남편은 금요일만 되면 매도를 위해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집들의 리스트를 만들었다. 호주는 주말에 오픈하우스를 한다. 한 집마다  30분씩 오픈을 해서 관심 있는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에 자유롭게 집을 살펴볼 수 있다. 시간과 매물로 나와 있는 집들을 순서에 맞춰 다니다 보면 대략 매주 10개 정도의 오픈하우스를 보았다. 그중에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우리가 원하는 금액을 작성해서 중개사에게 접수하면 매도자와 상의해서 계약이 진행된다.

몇 개의 집중에 내 마음에 드는 집들이 있었다. 지금 오퍼를 하자고 하면 남편은 저 집에 대해 좀 더 조사가 필요하다며 그 자리에서 오퍼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집에 오면 마음에 드는 집의 관할 시청 사이트에 들어가면 최근 백 년 동안 침수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집을 보고 확인하는 동안 이미 계약이 진행되고 있는 집들도 있었다. 그때는 매주 집을 보러 다니는 것도 힘들었고 저 정도까지 해야만 하는지 남편이 심하다는 생각에 짜증도 내곤 했다.

‘돌다리 두드리다 깨져서 건너가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남편에게 지어준 나와 성격이 정 반대인 나는 가끔 속이 터질 뻔한 적도 있었다.

그 꼼꼼한 성격이 이번 홍수로 인해 목에 힘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걸어 다닐 때 보면 어깨가 춤추는 것 같다.

이래서 ‘부부는 정 반대 성격이 좋다는 말이 생겼을까?’ 생각했다. 늘 나의 성격을 칭찬하고 아이들은 엄마를 닮았으면 좋겠다는 남편 말에 조금은 건방졌던 나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 당신 덕분에 좋은 집에서 편하게 잘 살고 있고 고맙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남편이 먼저 생색을 냈다.

백 년 만에 많이 내린 이번 비로 퀸즐랜드는 가뭄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앞으로 몇 년간은 물 걱정 없을 것 같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피해 가정마다 도움의 손길이 닿아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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