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오늘부터 비건인데요?

채소는 입에도 안 대던 육식주의자, 별안간 비건이라니!

by 정민

나는 원래 강경 육식 파였다.

비빔밥에서 나물은 안 먹고 고기만 먹으며, 쌈 채소는 입에 대지도 않고 샤부샤부를 먹더라도 야채가 아닌 고기와 어묵만 먹는 사람. 심지어 체중 감량을 시도할 때도 남들 다 먹는 샐러드를 먹을 바에야 음료만 먹겠다며 두유, 미숫가루 등만 먹는 사람이었다.

회식은 무조건 고기, 야근하며 먹는 야식은 보쌈과 치킨. 정말 누가 봐도 ‘채소’는 없는 식단이었다.

그런 내가 어느날 갑자기, 고기를 먹자는 말에


"저 비건인데요?"를 외쳤다.


가족은 물론 회사 동료들, 친구들까지 모두 “뭐라고?”를 외쳤다.

뒤이어 “네가?”, “곱창 끊을 자신 있음?”, “족발에 와인 포기 가능?”, “여름에 치맥 안 할 자신 있음?” 등등 질문이 쏟아져 나왔고(사실 조롱에 가까웠다. 심지어 믿는 사람이 약 1%였던 것 같다. 자식을 둔 엄마로서 엄마가 양심 상 살짝 믿어줬다.)


나는 모든 질문에 ‘응!’ 이라고 답했다.


강경 육식파가 비건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뭘까?

심지어 채소라면 입에도 안 대던 사람이!


그 이유는 바로 ‘연두’ 때문이다.

이름도 상큼하고 발랄하고 귀여운 ‘연두’.


그녀는 내 반려견도 아니고 우리 가족의 반려견도 아니다. 내가 공예 작업을 하면서 셰어 작업실을 이용할 때 작업실 주인 언니가 키우던 작업실 터줏대감인 진돗개다.

초등학교 때 이후로 강아지를 키워 본 적 없는 나는 처음 연두를 봤을 때 무서웠다.

너무 컸고… 정말 컸으며… 내가 감당하기엔 매우 활발했다. 연두는 한창 놀 나이라 내가 ‘연두 안녕!’ 하는 사이에 꼬리 프로펠라를 만 번쯤 흔드는 아이였고, 나는 그런 연두가 내심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1년이 되었을 때, 나는 연두에게 푹 빠지게 되었다.


연두와 작업실 소파에서 낮잠을 자는 것이 일주일 중 가장 큰 행복이었고, 연두가 웃는 모습이 좋았다. 언제나 연두가 더 행복하기를 바랐다. 회사에서 복지 포인트가 나오면 연두 용품을 사기 바빴고, 사람 조카의 생일에 연두 장난감을 같이 살 정도로 연두는 나의 또 다른 조카가 되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났을 때, 직장을 옮기면서 작업실을 독립했다. 연두가 보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연두에 대한 그리움은 생각보다 컸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꼬박꼬박 보러 갔지만 더 보고 싶었다.


‘연두 분리불안 / 상사병’이었다.


회사를 출근하면서도, 퇴근하면서도, 쉬면서도, 작업하면서도 나에게 넘치는 사랑을 준 연두가 정말 보고 싶었다. 연두와 영상통화를 자주 하면 할수록 연두의 웃는 얼굴이 아른거렸고, 그간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을 느꼈다.


이때 나는 ‘아, 이게 진짜 사랑이구나.’ 라고 깨달았다.


그렇게 연두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나니, 사랑의 범위도 넓어졌다. 정말 모든 동물이 이전과 비교할 수없이 소중한 존재로 느껴졌다. 소개팅 애프터로 동물원에 가도 예전처럼 ‘귀엽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연두가 느끼는 감정을 저 안의 동물도 느낄 거라고 생각하니 웃을 수가 없었다.

그날 나는 집에 와서 매달 작품 판매로 발생하는 일부 수익은 유기견 보호에 쓰겠다고 공지했다. 그리고 별도로 개인 후원도 시작했다.

연두가 내게 준 사랑은 혼자 간직하기엔 커서, 다른 동물 친구들에게 나눠도 나눠도 비워지지가 않았다. 급기야 나는 동물권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동물에 대한 지식이 쌓일수록 머리에 조심스레 ‘비건’이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그간의 식습관 때문인지 현실 불가능하다고 느꼈고, 지킬 자신이 없어서인지 바로 시작할 순 없었다.


그런데 웬걸. 때마침 이직한 회사에 정말 완벽한 ‘비건’을 실행하는 동료가 있었다. 동료 응원에 힘입어 연휴 때 나는 비건 책과 다큐에 도전했다. 쉬운 만화책부터 깊은 내용이 담긴 책까지. 천천히 비건 지향적인 삶으로 나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책까지 다 읽고, 책을 덮을 때 드는 생각은 딱 하나였다.


‘육류랑 유제품은 진짜 못 먹겠다.’


그리고 나는 냉동실에 보관했던 고기를 다 본가 냉동실에 가져다 놓았다.

내 새끼(연두)가 예쁜 만큼 다른 동물들도 예뻤기 때문이고, 그들이 나에게 오는 그 과정을 알게 된 이상 묵과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초보 비건’이 되었다.

비빔밥에서 고기만이 아닌, ‘나물’만 먹어야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