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에서 정일이와 만나 속 얘기를 전부 꺼내 놓았다.
나의 개인적인 고민과 누군가에겐 가십일지도 모를 나의 모든 이야기들이
나에게서 빠져나가 정일이에게 도착한다.
나의 이야기들을 그 모양 그대로, 그 온도 그대로 정일이가 감싼다.
내가 이래서 그랬고, 그랬는데 이랬어.
나는 쉴 새 없이 말을 하고 정일이는 언제나처럼 내 편을 들어준다.
속상했던 마음이 달래지고, 화났던 감정이 누그러지고, 삐죽했던 감정들이 맨맨해진다.
언제나 내 편인 남편 말고 또 누군가가 이렇게 내 편이다.
이런 체 저런 체 하지 않고,
어떻게 보일 지를 생각하지 않고,
덜지도 덧붙이지도 않고 내 모양 그대로,
내 온도 그대로 전달해도 되는 누군가가 있다.
그리고 정일이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내 마음과 얘기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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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쪽으로 걷는다고 칭찬받고 싶었나
늘 정직했다고 상이라도 내려지길 바랬나
항상 진심이었다고 모두가 진심이었어야 했나
아니, 당연한 걸 했던 거야.
네가 그랬던 게 특별한 게 아니라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한 거지.
그렇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뭐지?
그런 게 당연하지 않은 사람들, 네 쪽 사람이 아닌 사람들.
네 사람들 너머에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
안 마주치면 좋겠지만 살다 보면 한 번쯤 두 번쯤, 아니 여러 번 마주칠 수밖에 없지.
그게 인생이야.
나도 가끔 반칙하고 싶어.
상처 입히는데 스스럼없고 싶어.
모르는구나. 그 너머에 있는 사람들도 네게 상처받아.
너는 아닌 것 같지만 너의 올바른 쪽이 누군가에겐 틀린 쪽 일수 있고,
너는 정직했지만 누군가의 기준에는 못 미칠 수 있고,
너는 진심이었겠지만 네 사람이 아닌 누군가에게 정말 진심이었다고 당당할 수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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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 주변을 둘러본다.
이런 체 저런 체 하지 않고,
어떻게 보일 지를 생각하지 않고,
덜지도 덧붙이지도 않고 내 모양 그대로,
내 온도 그대로 전달해도 되는 내 사람들을 보며
나는 안도한다.
그리고 옳고 그름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초록이 동색인 내 사람들의 숲에서 살아가면 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