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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Feb 01. 2024

동북아 평화 프로세스 시뮬레이션 활동 소회

동북아 평화 프로세스 시뮬레이션 참여 하였다.

한국어와 영어로 동시에 진행된 본 세션은 한국인과 비한국인이 함께 참여하여 팀을 이루어 진행되었다. 

한국, 북한, 미국, 일본, 중국, NGO 단체의 대표단 역할을 맡아 다른 국가/단체와 협상을 진행한다.

협상 후 UNSCR 1325 여성, 평화 안보를 위한 지역 행동 계획 안건을 상정하고 이 안건은 각 대표단의 만장일치를 얻을 경우 승인된다. 

거부권 (veto)은 단 한 번만 낼 수 있는 조건이며, 협상의 목적은 내가 대표하는 국가, 자국의 이익을 최대로 할 수 있는 안건 중 상대가 동의할 수 있는 제안을 제시하여 합의에 이르도록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다. 외교적 협상 시뮬레이션에 처음 참여한 나는 이번 활동을 통해 국가 간 복잡한 이해관계가 모두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상당히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국가와의 합의는 다른 국가와의 상충된 이해관계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 시뮬레이션 과정에서의 나의 경험을 정리해 보았다. 


1.     만장일치로 결의안이 채택된다는 것 

우리가 원하는 것을 제안하기 위해 모든 이해 당사자의 니즈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아주 작은 행보에 그치기 쉽다. 요구 사항은 폭넓고, 광범위한 개념의 요구로 이어진다. 용어와 표현에 아주 민감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서, 표현을 이해 당사자들의 입장으로 대입해 보게 된다. 

예를 들어 “보편적 정의에 따라 000을 실행한다.”라는 안건은 보편적 정의가 이미 정의되어 있고, 그 정의에 따르지 않는 국가에게는 상충된 주장이 된다. 그런 당사자는 안건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논의 끝에 “보편적 정의”는 “공통의 정의” 로 변경하게 된다. 공통의 정의라는 건, 협의를 거쳐 만들어진 정의를 의미하여 추가 논의를 통해 공통의 정의를 찾아내는 오랜 과정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정의하느라 실제 실행 단계로 언제 넘어갈지도 알 수 없다. 실행 가능성을 위해 결국 ‘공통의 정의’라는 부분도 삭제하고 여러 국가들과 합의된 결과에 따라 ‘000을 실행한다”로 안건을 상정한다.

이는 마치 모두를 만족시키려다 누구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지지 못하는 상황 같았다. 속도를 제대로 낼 수 없는 이런 안건은 실행이 더디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다양한 이해 관계자를 만족하기 위해서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마인드를 가져야 했다
  

2.     딱 한 번의 거부권을 가진다는 것

다른 국가(사람)의 안건에 신중한 결정(찬성 or 반대)을 하게 된다. 반대나 거부권을 언제든 행사할 수 있다는 것과 한 번만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태도를 가지게 했다. 

언제든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은 작은 손해에도 민감하고 감정적 상황에 따라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딱 한 번의 거부권, 기회가 한 번밖에 없다는 것은, 좀 더 이성적으로 이 것이 정말 옳은 것인가, 우리에게 가장 이익인가를 계산하게 된다. 거부권을 남용하지 않고,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 신중한 선택이 무엇인지 검토하게 된다. 

이날의 결과는 각 대표단의 안건은 모두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그 이유는 밝히지 않는다고 한다. 왜 거부를 했는지, 어떤 배경과 이해관계로 인해서 합의할 수 없는지 No에 대한 이유는 설명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이후 거부에 대한 각자의 해석만이 분분할 뿐이다.  


3.     가상의 세계에서도 작용하는 실제 국가별 현실   

각 국가에 대해 우리가 아는 지식과 배경들은 가상의 국가 대표단의 시나리오를 넘어서서 작용하고 있었다. 나는 미국 대표단 그룹으로 미국 측 입장에서 협상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장 높은 기득권을 가진 국가이다. 우리 그룹은 재미를 위해 우리끼리 트럼프처럼 거만하게 앉아 보기도 하며 아주 잠시 갑의 자세를 취해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내가 한 행동은 철저하게 재미를 위한 것이지 협상 중에 그런 태도를 직접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NGO 단체에서는 미국이 너무 거만한 태도를 보인다는 의견이 나왔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기득권임을 드러내고 있거나, 누리고 있었다. 드러내지 않는 기득권의 자세, 우리는 자신감이라고 여긴 태도조차 애써 주의하지 않으면 상대에게는 거만한 태도로 여겨질 수 있었다.

시뮬레이션이라는 가상의 활동에 불과했지만 나는 점점 더 미국이라는 입장을 누리며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우월한 입장, 모두가 만나서 협상을 하려고 하는 상대, 내가 가지 않아도 나를 만나기 위해 줄을 서는 국가들, 이런 상황에서 지금의 미국의 태도와 다르지 않은 특권주의에 젖어드는 나를 발견했다. 

시나리오 상에서는 미국의 입장에서 요구하는 것과 반대하는 것이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시나리오 상에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도 충분한 가능성으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참가자들은 이미 시나리오 외의 현실 상황을 감안한다. 시나리오 상에서 조건으로 나와 있지 않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현실에서 미국이라면 동의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주저하게 된다. 


4.     가장 강력했던 NGO

시뮬레이션 상에서 협상을 진행하며, 미국대표단이라는 입장에서 다른 국가 대표단과의 협상은 서로 간에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하지만 NGO 단체와의 협상은 달랐다. 

NGO 단체는 처음부터 아주 강력한 자세와 직접적인 주장을 펼쳤다. 마치 모든 국가들이 미국이라는 국가의 눈치를 볼 때 NGO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앉는 듯한 자세로 당당하게 협상 테이블에 임했다. 조금은 무례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강력한 주장을 펼쳤다.

미국팀에 함께 참여했던 전 UN 몽골 대사님이셨던 Dr. Enkhsaikhan Jargalsaikhan 이 미국의 입장을 팀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주셨다. 미국은 많은 자식을 가진 부모와 같다. 한쪽의 말을 들어주면, 다른 자식에게 손해가 가거나, 기분이 나빠질 수 있다. 매 협상 테이블은 각각의 자식을 만나지만 나머지 자식들을 모두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각 국가와의 협상에서 우리의 입장을 고려하고 생각해 볼 조금의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마치 미국이라는 국가가 협상 테이블에서 주도권을 가지듯, 우리는 우리의 주장을 펼치고 상대국가는 그 주장을 경청하였다. 

하지만 NGO와의 협상은 달랐다.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고 우리는 우리의 주장만을 펼치겠다는 자세처럼 느껴졌다. 마치 우리가 그들의 요구에 Yes 나 No로 당장 답해야 하는 것처럼 뭔가에 휘말리는 느낌이었다. 그들의 강력한 주장은 우리에게 앵커링 효과로 당황하게 했다.

대부분의 협상에서 서로의 요구 사항을 듣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NGO는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않는 듯 어려운 협상 상대였다. 우리 대표단원들의 당황함이 느껴졌고, 이때 Dr. Enkhsaikhan Jargalsaikhan 대사님이 NGO의 요구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밝히며 당장에 yes 인지 No 인지 답할 수 없다는 것을 납득시키려 했다.


이후 우리 팀 테이블로 돌아와 Dr. Enkhsaikhan Jargalsaikhan은 왜 NGO는 다른 국가들과 다른 태도를 보이는지 설명해 주셨다.

미국이 부모로서 다른 국가를 자식으로 둔 복잡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그 모든 이해 관계자를 고려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NGO는 다르다. NGO 가 가진 것은 대의, 그들이 주장하는 명확한 미션과 그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것은 군사도, 무기도, 돈도 아닌 지지자들이다.  그들은 케어해야 할 자식이 아니라 뚜렷한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두가 함께 달려야 하는 집단이고, 그 지지자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


이 시뮬레이션을 하기 전 사전 질문 조사에는 이런 질문이 있었다. 

[평화 구축에서 NGO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What is NGOs' role in peacebuilding?)]


모두가 서로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느라 실제 필요한 액션에 다가서는 방법을 고심한다. 결국 그 결과는 실제 목표와는 거리가 있는 아주 작은 행보에 그치는 방안들이 되어 버린다. 그런 국가 대표단들 사이에서 우리 모두가 가진 대의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집단이 바로 NGO 가 아닐까? 

타인의 시선과 미국처럼 다른 자식들을 케어해야 한다는 입장을 배제하고, 우리의 대의를 위해 필요하다면 서로의 갈등과 손해는 좀 감당하는 것도 고려해 보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집단이 NGO이다. 

흔히들 우리는 페미니스트적 생각에는 동의하고, 양성 평등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극단적 페미니스트의 행보는 거부감이 든다. 그럼에도 실제 그들의 행동은 우리가 실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우리가 원하는 양성 평등은 저 정도는 아닌데'라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양성 평등에 너무 미적거리고 있었구나, 저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다시금 되네이게 한다. 


이번 시뮬레이션 이후, 참여자들의 공감 가는 소감들을 정리해 보았다. 


나의 입장에 메여 있지 않는 실익 욕구 파악 필요하다. 

논쟁을 두려워하지 말자. 

의견 개진보다, 중재나 공감이 필요한 상황이 많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뭔가 하는 게 낮다. 

차이보다 공통점을 발견하려는 의식적 노력의 순간들이 변화의 단초가 된다. 

어떤 것이든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 

서로 간의 차이를 이해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제안이 만들어지는 창의적 발상이 필요하다.  

협상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주장과 협상, 그 사이에서 끝까지 합의되지 않는 것도 있음을 받아 들어야 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서로의 다른 욕구를 귀중히 여긴다면 가능해진다. 


 
 https://blog.naver.com/janekim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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