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계획보다 ‘적응’이 더 중요한 법이다.
이번 출장 일정은 1박 3일.
아침 9시 30분 김해 공항 출발 비행기였다. 전날 김해에서 숙박하고, 아침 7시에 고객을 만나야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자가 날아왔다. 비행기가 갑자기 두 시간 연착된다는 소식. 나름 베트남 항공이었지만, 다른 저가 항공보다 더 늦게 출발했다.
결국 비행기는 11시가 넘어 출발했고, 하노이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끝없이 이어진 줄 서기와 맞닥뜨렸다. 출국 심사까지 2시간 반을 줄 서야 했다. 공항이 사람들로 가득 찼음에도 직원들은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엄격한 출국 심사는 당연하지만, 2시간 동안 조금씩 줄어드는 경험은 최악이었다. 원래 오후 2시로 잡았던 고객 미팅은 결국 저녁 7시에나 가능했다. 늦게까지 기다리게 된 것은 베트남 상황의 문제였지만, 사과와 미안함은 온전히 우리 몫이었다.
숙소에 도착해 근처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다음 날 미팅 준비를 했다. 처음 맡은 고객, 처음 접하는 제품이라 이해할 것이 많았다. 새벽부터 자료를 살펴보며, 이전 담당자가 쓴 용어, 대표님이 메일로 쓴 용어, 고객이 쓴 용어가 각각 달라 혼란스러웠다. 알고 보니 모두 같은 의미였다. 서로 다른 번역기를 사용한 탓이었다. 모두 제2외국어인 영어를 사용할 때 흔히 생기는 일이다.
오전 대표님과의 사전 브리핑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해 약간 혼이 나기도 했지만, 빠르게 학습하며 적응했다. 로비 테이블에서 자료를 보는데, 옆에서는 말레이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맛있게 반미를 먹고 있었다. 어디서 왔냐는 인사와 함께, 유명한 맛집에서 줄 서서 산 반미를 나눠 주었다. 줄 서서 먹을 만큼 유명한 반미는 마치 거리에서 산 반미에 스팸을 넣은 것 같은 맛이었다. 입맛이 저렴해서 그런지 난 거리에서 파는 반미가 더 나은듯하다.
오후 고객 미팅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고객의 점심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은 듯했다. 직원들은 자유롭게 탁구를 치며 쉬고 있었다.
미팅은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샘플 소개와 제품 사양을 확인한 뒤, 근처 벤탄 시장에도 들렀다. 짝퉁 제품들이 많은 시장이었다. 대표님의 협상 기술 덕분에 몇 가지 옷을 저렴하게 구매했다.
밤 12시 비행기였지만 공항에는 일찍 도착했다. 그러나 호찌민 공항은 이미 인원을 초과한 듯 붐볐다. 티켓팅부터 보안 검색, 입국 심사까지 모두 합쳐 세 시간 반이 걸렸다. 전날 하노이 공항에 도착하여 2시간 반 대기는 오히려 짧게 느껴질 정도였다.
첫 번째 기다림은 비행기 티켓팅. 인천 공항에서도 이 정도 기다림은 당연하다.
두 번째 기다림은 입국 심사였다. 줄이 공항 밖으로 이어진 듯 길게 늘어져 끝을 찾기 어려웠다. 심지어 옆에 있던 환승객도 한 시간도 안 남았는데 긴 줄을 서야 했다. 관계자에게 어필해도 예외는 없었다. 옆에는 fast track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장애인이거나 사전에 비용을 지불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제도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줄을 서서야 입국 심사를 통과했다.
세 번째 기다림은 보안 검색대 통과였다. 다시 긴 줄이 이어졌다.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던 필리핀 환승객은 이제 포기했는지 표정이 평화롭기까지 했다. ‘비행기가 알아서 기다려 주겠지’라는 생각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보안 검색대 통과에도 한 시간 넘게 걸려서야 게이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호찌민 공항에서의 이날 긴 대기와 서서 기다림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들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계획대로 움직이기 어렵다. 한국처럼 일정을 촘촘히 잡으면 스트레스만 쌓일 뿐이다.
그곳에서는 시간의 유연성을 받아들이고, 상황에 맞춰 적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1박 3일, 짧은 베트남 출장. 때로는 계획보다 ‘적응’이 더 중요한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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