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만든 보이지 않는 기준들
문화는 공기처럼 우리의 일상에 흐른다.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생각과 태도, 그리고 행동은 끊임없이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문화적 다양성을 가진 국가와 조직은 이 차이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고민한다.
포용적 정책은 그 고민의 결과물이다. 이를 통해 개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하지만 포용의 기준과 방향은 국가마다 다르다.
이번 27회 ‘Cultural Talk for Diversity’를 진행하며, 인도와 유럽의 사례를 통해 문화적 다양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도를 떠올릴 때 힌두교를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소를 신성시하기 때문에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라고 배운다. 하지만 이는 인도의 복잡한 다양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이해다.
나는 인도 남부 Kerala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거래처의 초대로 간 저녁 식사 장소는 스테이크 레스토랑이었다. 그곳에서 지글거리는 소고기 스테이크를 즐기고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인도인이었다.
인도 전체로 보면 힌두교 신자가 70% 이상이지만, Kerala 지역은 기독교 인구 비중이 높은 곳이다. 그들에게 소고기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 일뿐이며, 이를 먹는다고 해서 비난받지 않는다. 이처럼 한 국가 안에서도 문화와 종교는 균일하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성은 공휴일의 형태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도에는 독립기념일, 공화국 기념일처럼 전국 공통의 휴일이 존재한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 종교와 문화에 기반한 서로 다른 휴일이 함께 존재한다. 대표적인 축제인 Diwali 역시 인도 전역에서 기념되지만, 지역에 따라 날짜와 의미가 조금씩 다르다.
유럽의 사례도 흥미롭다.
벨기에는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연방 국가다. 이 나라는 언어권을 중심으로 공휴일 체계를 운영한다. 27회 문화토크에 참여한 한 벨기에 참가자는 언어에 따른 공휴일을 설명하며 자신의 사례를 공유했다.
남편은 독일어권, 본인은 프랑스어권에 속해 있어 회사에서 제공하는 휴일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날을 쉬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종교와 언어, 역사적 전통에 따라 공휴일의 의미와 우선순위는 달라진다. 이 차이는 때로는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미국인 투자자가 대주주인 한 한국 기업에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긴급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했다. 한국인 대표는 빠른 해결을 위해 미국 주주에게 온라인 미팅을 요청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참석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 대표는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크리스마스가 그렇게 중요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크리스마스는 한국의 설날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장 중요한 날 중 하나이다.
한국에서 설날에 가족과 함께 있는 상황을 떠올려보면, 그때 업무 미팅을 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연인이나 아이들을 위한 즐거운 날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한국적 해석이 상대를 향한 서운함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듯 같은 이름을 가진 ‘공휴일’이라도 그 의미는 문화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공휴일은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니다. 그 안에는 각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관계, 문화가 담겨 있다. 결국 다양성을 이해하고 포용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기준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대화를 통해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https://blog.naver.com/janekimjh
김지혜
KCG (Korea Cultural Consulting Group) 대표
한국인 대상 글로벌 역량 전문 강사
외국인 대상 한국 조직 문화 (영어 진행) 강사
글로벌 기업 교육 현지화 전문 퍼실리테이터 janekimjh@naver.com
010 3808 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