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규칙들

통념과 미신, 그리고 금기

by 김지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규범과 문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한다.

점심을 먹으며 보던 TV 프로그램에 80대 후반, 90대의 할아버지가 출연해 자신의 결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94세의 할아버지는 군대에 있을 때, 전역하면 결혼을 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여성이었다. 부모님이 정해준 상대였다. 결혼식 날, 한국의 전통 혼례를 치르며 신부가 절을 하는 순간, 그는 가려진 손 뒤로 처음 신부의 얼굴을 보았다.

그렇게 처음 만난 사람과 7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살았고, 아내는 먼저 세상을 떠났다. 할아버지는 웃으며 덧붙였다. 사실 그 혼례식에서 신부의 절을 도와주던 옆의 여성이 더 마음에 들었었다고.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리고 이후 세대에게 이런 삶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처음 보는 사람과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 그것도 만나는 순간 다른 사람이 더 마음에 들었음에도 변함없이 한 사람과 인생을 이어간다는 것은 무엇이 가능하게 했을까.

놀라는 사람들에게 할아버지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때는 그렇게 결혼을 많이 했어요.”

그 시대에는 부모가 정해준 사람과 결혼해, 서로 맞든 맞지 않든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것이 하나의 ‘당연함’이었다. 그 당연함, 즉 사회적 통념이 사람들에게 적응하는 힘이자 견뎌내는 힘이 되었다.

그 힘은 얼마나 강력하기에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지탱할 수 있었을까.

이러한 사회적 통념은 시대를 거치며 변화한다. 장남이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통념은 장남에게 무게감을 부여했고, 엄마가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통념은 능력 있는 여성에게 경력 단절을 강요하기도 했다.

이 통념에 반하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의지 이상의 힘이 필요하다. 기존의 힘을 넘어서는 또 다른 힘, 그것은 결국 ‘용기’라는 이름으로 애써 발휘해야 한다. 결혼 하나를 결정하는 데에도 개인의 결심뿐 아니라 사회적 통념을 넘어서는 용기가 요구되었다.

이처럼 사회와 문화의 힘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채 내면에 자리 잡아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을 거슬러야 할 때 더 큰 에너지를 요구하기도 한다.

시대가 변하며 중매결혼은 연애결혼으로, 장남 중심의 책임은 자녀 모두의 역할로 점차 변화해 왔다. 이런 사회적 통념의 변화와 더불어 금기와 미신들은 여전히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작은 통념들로 작용해 왔다.

누군가는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누군가는 거리를 둔다. 그러나 그 힘은 여전히 작동한다. 때로는 경제적 가치로까지 이어진다. ‘손 없는 날’에 이사를 하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들은, 그 선택을 통해 앞으로의 삶이 더 잘 풀리기를 바라는 희망을 산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날을 선택할 때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과 두려움이 따라붙는다. 현대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근거가 불분명한 두려움에 가치를 부여하고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

국가마다 다양한 미신과 금기가 존재한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키지 않을 경우 불쾌감이나 불안을 유발하는 것들이다. 한국에 오는 외국인들을 교육하며 강조하는 금기 중 하나는 ‘이름을 빨간색으로 쓰지 말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 나 역시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엄마가 빨리 돌아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쓰지 않았다. ‘엄마’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은 나에게 더 큰 두려움으로 작용했다.

이처럼 미신은 ‘잘 될 것이라는 희망’과 ‘불운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라는 양면적 감정을 만들어낸다. 감정은 행동으로 이어지고, 집단적으로 공유된 금기는 결국 문화가 된다.

숫자 4는 한자문화권인 중국, 일본, 한국에서 ‘죽음’과 연결된다. 그래서 많은 건물에서 4층을 ‘F’로 표시하거나 아예 생략하기도 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중국 육상 선수 리우상이 첫 번째 허들을 넘지 못하고 넘어졌을 때, 일부 사람들은 그가 4번 레인에 배정된 것을 불운으로 해석했다. 실제 원인은 부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미신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서 힘을 얻는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과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비합리적인 해석과 정당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규범, 통념, 그리고 미신은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지닌다. 그것들은 때로 삶을 지탱하는 질서가 되고 때로는 개인의 선택을 제한하는 보이지 않는 벽이 된다.

과거에는 ‘당연함’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은 ‘선택’이라는 형태로 우리의 판단과 감정을 흔든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믿음을 받아들이고, 어디까지 영향을 받으며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 인식하는 일이다. 사회적 통념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미신 역시 다양한 모습으로 남아 있지만 그 사이에서 선택하는 주체는 결국 개인, 나 자신이다.

우리는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희망을 사고,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규칙들을 따른다. 그러나 그 힘에 영향을 받을지 아니면 그 힘을 넘어설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김지혜 (Jane Jihye Kim)

글로벌 역량 강화/문화간 이해/외국인 한국 사회,비즈니스 문화 이해(영어진행)

퍼실리테이터/DEI trainer /영어 통역사/다양성과 포용성을 위한 문화 토크 커뮤니티 운영자

janekim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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