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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Fly Apr 09. 2019

4. 달랑 하루 와서 일한다고요?

- 오해를 풀고 싶습니다

통역사는 하루 와서 일하고 꽤 많은 돈을 받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속사정을 모르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 남의 돈을 받기가 쉬운가. 통역사들도 길게는 한 달 전, 짧게는 일주일 전부터 행사의 주제를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여기에서는 지난 10년간의 개인적인 경험과 동료들의 경험을 토대로 일반적인 상황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통역사는 지정되는 순간부터 일을 시작한다


먼저 주최자가 행사의 일정을 정해 에이전시에 통역사를 의뢰하면, 에이전시는 보유하고 있는 통역사 풀에서 선택하거나 통역사를 소개받는다. 그렇게 택해진 통역사는 그때부터 온 신경이 서 있다. 처음부터 주최자가 자료를 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거의 없다. 통역사는 이 행사가 어떤 주제로 진행되는지만 파악한 후 해당 주제에 대해 인터넷 서치를 통해 개괄적으로 공부하면서 개념을 익힌다. 연사 명단이 주어진다면 그 연사의 과거 자료들을 살펴보기도 한다. 시간이 좀 지나면 주최자가 소개한 연사들의 원고가 전달된다. 안타깝게도이 원고가 완벽하게 공부할 수 있을 만큼 빨리 도착하지는 않는다. 에이전시가 주최 측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전달해주면 (웹하드에 올려놓으면 다운로드), 통역사는 해당 자료로 더 구체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다.


이때 공부해야 할 양은 방대하다.  이 분야를 모르기 때문에 기초부터 시작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기초부터 한국어와 영어로 된 자료를 모두 봐야 하니 시간이 더 걸리는 것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공부를 하면 한국어와 영어로 모두 전문용어를 정리해둘 수 있고, 기초적인 개념과 최근의 이슈 등을 파악할 수 있다. 그 시간 동안 통역사는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매우 집중해서 공부한다. 아마도 그러한 이유로 통역사들이 자료를 찾는 스킬이 좀 더 나은 걸 수도 있겠다. 이렇게 공부하는 시간은 통역사가 아니면 잘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루 달랑 나와서 일하고 돈 받아 간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전문 통역사가 필요한 이유는 급박한 순간 때문이다

가끔 주최 측이 전문 통역사를 찾는 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타이트한 일정에서 해당 분야를 알고 있으면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전문 통역사와 그보다 덜 전문화된 (?) 통역사가 부스에 들어가면 어려운 부분이나 용어를 도와줄 수 있어서 좋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보험 전문 통역사는 현업 관계자만큼은 아니지만 보험 용어들과 개념들에 대해서 보험을 아예 모르는 통역사보다는 더 잘 이해하고 있다. 동시통역에서는 전문용어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 게 생명인데 유지율과 정착률의 개념과 용어를 외우고 있지 않으면 한 번에 나오기 힘들거나 잘못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쉬운 말을 어렵게 하는 연사의 경우, 전문 통역사는 연사의 포인트를 확실히 짚어줄 수 있기에 유리하다.


하지만, 공부하는 양과 이해력만 따진다면 특수 분야의 전문통역사가 아니더라도 크게 무리는 없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래도 불안하다면 전문 분야보다는 통역 경력을 따지는 게 더 낫다. 경력이 쌓일 수록 그러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더 높기때문이다.


생동시 (통역)는 김성주가 와도 힘들다

연예인은 아니지만 자료가 없는 생동시 통역은 긴장감으로만 따지자면 생방송과 맞먹는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동시통역이라도 자료를 쥐고 있으면 통역사는 좀 더 안정되고 정확하게 통역할 수 있다. 자료를 바탕으로 연사가 자료에 없는 이야기를 할 때와, 저 멀리 연단에 있는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신경 쓰며 -가끔 잘 보이지도 않는다- 연사가 하는 말도 동시에 신경 쓰면서 하는 통역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때문에, 양국 정상 회의 등 자료가 거의 나오지 않는 생방송 동시통역을 잘하는 통역사는 피가 마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주최자이시여. 에이전시나 통역사들이 자료가 없냐고 자꾸 물어봐도 신경질 내지 말아 주세요.


그렇게 준비를 한 통역사는 행사 30분-1시간 전에 통역 부스에 도착한다. 미리 행사장을 둘러보고 주최 측과 인사도 나누고, 장비 책임자들과도 인사를 나눈 후  -제일 자주 보는 사이이고 도움이 즉각적으로 필요한 파트너이다- 리시버와 마이크 테스트를 한다. 또한, 파트너 통역사와 미리 조율해놓은 통역 순서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중간에 자료가 수정이 되는 경우에는 행사장에서 받기도 한다. 이 모든 게 완전히 준비되어 있으면 그만큼 덜 긴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첫마디를 떼면서 행사가 끝날 때까지 청중이 느슨하게 앉아 듣는 동안 통역사는 초초 긴장 상태에서 일을 한다.



왜 두 명이 해야 되냐고?

순차통역을 해도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국제회의에는 무조건 동시 통역사가 두 명이 파트너로 들어간다. 도대체 왜 두 명이어서 돈을 두 배로 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훈련받은 통역사가 한 번에 최고조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20-30분이다. 물론, 경력에 따라 40분-1시간까지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후 피로도는 엄청나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6시까지의 행사에서 연사는 보통 여덟 명에서 많게는 열 명까지이다. 또, 모든 발표가 끝난 후에 질의 시간까지 가지면 통역해야 할 양은 더 많아진다. 따라서 원활한 동시통역을 위해서는 두 명의 통역사가 순서를 바꿔가면서 하는 게 최선인 것이다.


통역을 하지 않는 통역사도 놀지 않는다

통역을 하지 않는 통역사는 돌발상황을 대비해 항상 대기상태로 있어야 한다. 어떤 돌발상황이 있을까?  갑자기 통역 부스 앞을 가리는 사람이 있으면 부스 밖으로 나가 정중하게 비켜달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엄청나게 집중해야 하는 경우에는 그런 여유도 없다. 부스 안에서 서 있는 사람이 있는 쪽의 유리를 콩콩 때려 비켜달라고 손짓을 할 때도 있다. 또 갑자기 소리가 안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바로 뛰쳐나가 장비 담당자의 지시를 받아 통역 중인 통역사에게 알려, 그 통역사가 청중들에게 안내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이마저도 안 되는 경우에는 부스 밖으로 나가 스피커로 나오는 말을 적어 통역사에게 전달해주기도 하며, 행사가 잘 정리되지 있지 않은 경우에는 갑자기 나가서 순차통역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청중은 모르겠지만 통역 부스 안에는 버튼이 많이 달려있는 통역 장비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한국어와 영어가 나가거나 들어오는 버튼이 각각 따로이다. 그런데 한국어와 영어를 마구마구 번갈아 해야 하는 경우에는 (질의응답 시간 등), 하면서도 버튼을 잘못 누르기도 한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청중은 통역을 들을 수 없게 되어 뒤를 돌아보게 되고, 통역 중인 통역사는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나 하면서 계속 통역을 한다. 이때 파트너 통역사가 재빨리 언어 버튼을 확인하고 수정해준다.


또, 앞서 말했듯이 연사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그 사람의 발음이 이상할 때도 있고, 일부러 돌아 돌아가면서 핵심을 건드리지 않고 말할 때도 있으며 익숙하지 않은 패턴으로 말할 때도 있다. 신기하게도 통역 중인 당사자는 핵심이 파악이 안 되는데 옆에 있는 통역사는 엄청 잘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대기 중인 통역사는 얼른 메모지에 '알아볼 수 있는' 글자로 써줘야 한다. 그러면, 그 키워드를 가지고 조금씩 연결해나갈 수 있다.




지금까지 하루 달랑 나와 그 큰돈을 받아 간다고 오해하는 이들을 위해 썰을 풀어봤다.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그 행사를 위해 통역사도 최선을 다하는 행사 구성원 중의 하나이다. 통역사 때문에 행사가 잘 진행되었다고 하는 사람보다는 실패했을 때 화살 돌리기에 통역사만 한 사람이 없다. 바로 외부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역사도 자신에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으며, 그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프리랜서이다. 통역에 대한 컴플레인이 없었다 하더라도 그 날 자신이 실수한 게 많다고 생각되는 날에는 음주나 음식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책상이 없는 직장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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