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여름, 바위 위에서 수박을 깨며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와 할머니는 계곡이 붙어 있는 펜션에서 일했다. 큰아빠가 관리를 하셨던 건지, 아니면 큰아빠 친구의 일이었던 건지 정확히는 모른다.
할머니는 주방에서 닭볶음탕이나 삼계탕처럼 계곡에서 흔히 주문해 먹는 음식을 만들었다. 엄마는 주방 건너편에서 펜션과 평상 사이에 간이 천막을 쳐 치킨과 감자튀김을 튀겼다. 예전에 BBQ를 운영했던 엄마는 그 경력을 살려 아주 맛있는 치킨을 만들었고, 뜨거운 냄비가 넘치던 계곡에서 바삭한 치킨은 인기가 좋았다. 성수기가 끝날 때까지 엄마는 너와 동생을 데리고 홍천을 오갔다.
너는 그곳의 냄새를 아직도 기억한다. 오래된 펜션 특유의 모기향, 기름이 튀던 천막과 엄마에게 나던 튀김 냄새, 이른 아침 물안개 섞인 계곡의 냄새, 눅눅한 풀 냄새까지. 그 여름을 추억으로 안고 있지만 사실 너는 그때 친구들이 있는 학교 운동장에 남고 싶었다. 할 일이 마땅치 않던 계곡에서 여름 방학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잠자리도 거슬렸다. 습기에 꿉꿉한 이불, 밤새 꺼지지 않는 물소리. 캄캄한 산장에 있으면 무엇이든 소리가 두 배는 크게 들렸다. 콸콸 쏟아지는 물소리에 계곡이 매일 불어나는 것 같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물이 범람하는 상상을 하다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아주 지루하고 긴 밤이었다.
반면 동생은 거의 매일 계곡에 뛰어들었다. 수영을 하고 다슬기를 잡는 동생은 걱정 근심이 없어 보였다. 물줄기가 뚝뚝 떨어지는 옷을 입고 자신의 물놀이 실력을 자랑하는 동생을 보고 있으면 좁은 방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는 것보다 차라리 물속에 들어가는 편이 더 나아 보였다.
가끔은 너도 동생을 따라 맥주를 사면 덤으로 주던 비치볼을 껴안고 물속에 들어갔다. 수영을 잘하는 동생이 멀리까지 헤엄쳐서 너가 있는 곳을 보며 웃었다. 동생과 몇 시간 물에서 놀다 보면 다리가 투명하게 보였다. 햇빛 아래선 타기 마련인데, 물속에 잠긴 다리는 참 희구나. 그런 생각에 빠질 때면 어느새 해가 졌다. 물에서 나오면 너를 그곳에 머물게 한 치킨과 감자튀김도 유난히 맛있어졌다. 너는 그렇게 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여름이 되면 여섯 명의 친구들과 함께 계곡으로 떠났다. 인원이 많아 택시를 탈 수는 없었고, 시내버스를 타야 했다. 차로 20분 걸리는 거리도, 버스를 타고 40분을 달려야 했는데 그래도 신이 났다. 힘이 드는 것도 모르고 수박은 꼭 먹어야 한다며 동네 슈퍼에서 수박 한 통과 칠성사이다를 사서 움직이곤 했다.
낑낑거리며 움직이는 동안 늘어나던 검정 비닐봉지.
이름이 박힌 체육복 바지와 통 넓은 티셔츠.
빽빽한 앞머리를 빗으로 쓸며 부르던 아이돌의 노래.
계곡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평평하고 넓은 돌 위를 찾아 그곳에 돗자리를 깔았다. 그리고는 수박과 사이다를 물속에 두고 돌을 쌓아 흘러가지 않게 막았다.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땐 까마득히 몰랐다. 너와 친구들은 그저 가위바위보에서 진 친구에게 물을 뿌리거나, 계곡 바닥을 짚고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했다. 아주 명랑했다.
여름이 오고, 물 앞에 서면 계곡을 사이에 두고 지루함을 느끼던 너와 신이 나던 너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아마 앞으로도 너는 계속 물을 좋아할 것이다. 그건 너가 기억을 좋아하는 방법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