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비 내리는 오후 초등학생의 너를 생각하면서
너의 기억 속에는 연분홍색 우산이 있다. 커피가 스며든 것인지 얼룩이 있던 접이식 우산. 열 살 무렵, 너는 그 우산을 챙겨 다녔다. 아이가 쓰기에는 조금 크기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우산은 엄마의 것이었으니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핸드폰을 쓰는 아이들은 많지 않았다. 집에 연락을 해야 하는 때면, 학교 복도에 설치된 공중전화를 사용했다. 그러나 매번 전화 연결이 잘 되지는 않았으니, 아이들은 사물함에 색연필이나 리코더 같은 준비물을 비롯해 접이식 우산을 넣어두곤 했다. 사물함은 일종의 예비책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비가 올 때면 당황하지 않고 사물함에서 우산을 챙겼다. 물론 그러다 가끔 깜빡하고 우산을 다시 챙겨 오지 않는 경우가 생겼다.
하교 시간에 맞춰 갑작스럽게 소나기가 쏟아진 날이었다. 너의 사물함에는 우산이 없었다. 집에 전화를 걸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방향이 같은 친구에게 같이 우산을 쓰자는 말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비를 맞는 게 더 편했던 너는 실내화 가방을 머리 위에 뒤집어썼다. 빗줄기는 멀리서 보면 얇았기 때문에 많이 젖지 않을 것 같았다.
교문 앞에는 아이들을 데리러 온 엄마들이 서 있었다. 혼자 비를 맞으며 가는 너에게 어떤 어른은 집에 데려다줄 테니 함께 가자고도 했지만, 너는 사양하며 집으로 전력질주했다. 둥근 카라의 블라우스 위에 보라색 니트 조끼와 청치마를 입은 날이었다. 빗줄기는 생각보다 아주 촘촘했다. 반스타킹이 축축하게 젖었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와 아빠가 함께 있었다. 홀딱 젖은 너를 보고 두 사람이 놀랐다. 엄마는 커다란 수건을 가져와 너를 감싸고 따뜻한 물로 씻겨 주었다. 미안한 기색과 함께 느껴지는 온기, 샤워를 마친 후 포근한 이불에서 누워 있던 순간까지. 너는 그날 처음으로 비를 맞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소나기가 내렸다. 그날은 너의 가방에 우산이 있었다. 그러나 너는 우산을 펼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우산을 반쯤 걸친 채로 어깨의 절반은 비를 맞으며 걸어갔다. 집에 도착했을 때, 너를 따뜻하게 맞이해 줄 품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날 너는 크게 혼이 났다. 젖어 있으면 엄마가 따뜻한 품으로 다정하게 안아줄 줄 알았는데.
그날 너는 왜 우산을 똑바로 쓰지 않았는지 말하지 않았다. 왜인지 부끄러웠다. 그렇게 너는 비가 올 때 우산을 잘 챙겨 쓰는 아이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을 가르치는 지금, 너는 아이들의 생각이 가끔 투명하게 보이는 순간을 마주한다. 아마 그날, 엄마는 너의 마음을 단숨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나 감기에 걸린 채로 아이를 키울 수는 없는 일. 아이의 마음은 아주 가끔 훤히 보이지만,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다.
모른 척이 아이를 강하게 만들 거라 생각하면서.
비에 젖는 걸 좋아하는 아이가, 그럼에도 비에 젖지 않고 그 순간을 기억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