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도 8˚] 그때 너는 영원히 사는 걸 배웠다.

2014년 8월 10일, 외할아버지와 함께 본 용문사 은행나무

by 고민조

이야기 속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억을 회상할 때 대개 한 장면만 보여준다. 그러나 너는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무수하게 자랑할 수 있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는 너를 데리고 여주 도자기 축제에 갔다는 이야기, 버터링이나 사브레를 사서 찬장에 두었다가 너 오는 날 꺼내주신 다정함, 여름밤 슈퍼에 가서 고른 간식, 장미 담배를 피우던 손, 열한 살 때까지 데리고 다녔던 사람들의 결혼식, 자전거 뒷자리에 너를 앉히고 약수터로 향한 등, 예쁜 돌을 다 가져가라며 쥐어준 마음, 자고 가라며 거실에 깔아준 솜이불, 노란 얼굴과 치료실 침대 헤드를 잡고 버티던 팔, 이외에도 모든 기억이 너에게 있다.


외할아버지는 너가 스무 살이 되던 겨울에 세상을 떠났다.


수능을 마치고 한참 뒤, 너는 외할아버지를 보러 양평에 갔다. 그런데 그날따라 외할아버지의 기운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엄마는 황달이 뜬 외할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월요일이 되면 당장 병원에 가보자고 말했다. 웬만하면 병원에 가지 않던 외할아버지도 그날만큼은 그러겠다고 했다. 그리고 병원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외할아버지는 간암 말기였다. 아픔은 감추면 잘 안 보인다. 외할아버지는 버티기의 고수였으나 그 시간이 독이 된다는 걸 몰랐던 게 분명했다.


입원한 외할아버지를 보러 병원에 간 날, 면회 시간이 맞지 않아 너는 아빠와 단둘이 병원 식당에서 칼국수를 먹었다. 면발을 삼키는 동안 아빠는 외할아버지가 3개월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너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속이 타거나 슬프지 않았다. 아빠의 말 자체가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에게는 늘 강한 외할아버지가 있었다. 너를 언제든 약수터로 데려갈 외할아버지가. 너는 의사의 예견과 무관하게 외할아버지는 회복해 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외할아버지는 새로 구매를 결정한 병원 침대가 도착하기도 전에 급성 쇼크로 돌아가셨다.


너는 임종을 지켰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사람이 죽는다고 곧바로 바이탈이 떨어지지 않았다. 천천히 떨어지는 숫자를 봤다. 삐- 하는 소리도 없었다. 외할아버지의 귀를 만졌다. 따뜻했다. 사망 선고 후에도 체온이 바로 식지 않는 게 더 슬펐다.


시간이 흘러서 너는 임종을 지킬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난 후 알게 된 것이었다.


가끔 너는 지금 외할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건강한 외할아버지가 있었다면 너는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한 사람이 나무처럼 서 있는 건 대단한 일이니까. 그 그늘이 얼마나 사람을 잘 키워내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무를 벤다고 그 뿌리를 뽑을 수 없는 것처럼, 너의 기억엔 늘 외할아버지가 있다. 두터운 뿌리를 내리고 슬픈 시간마다 너를 지키는 마음이 있다. 외할아버지는 너 안에서 영원히 산다. 영원히 사는 건 사랑하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약속이다. 때때로 힘들 때, 그 사랑의 순간을 떠올리면 일어설 수밖에 없다.


KakaoTalk_Photo_2025-07-09-19-55-38.jpeg 2014년 8월 10일, 외할아버지와 함께 본 용문사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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