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도 6˚] 그때 너는 정동진 해수욕장에 갔다

1999년 혹은 2000년, 어느 날의 사진

by 고민조

집에 대한 너의 첫 번째 기억은 외할아버지 댁과 붙어 있는 반지하 집에서 시작된다. 반지하 치고 햇빛이 잘 들어 아침이면 스르르 눈을 뜨게 되었다.


어느 새벽, 엄마와 아빠가 너와 동생을 깨웠다. 샤워를 하고 나면 엉덩이에 베이비파우더를 바를 만큼 어릴 때였다. 파우더 냄새가 코끝에서 은은하게 흘렀고 커튼을 친 창문 사이로 푸른빛이 새어들었다. 너는 조금 더 잠에 들고 싶었으나 엄마는 옷을 갈아입히고 차에 태웠다. 푸른 하늘이 조금씩 환하게 밝아왔다. 사촌 형제들과 같이 정동진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정동진에는 할머니의 언니와 동생들이 살고 있었다. 여름이 되면 종종 사촌 형제들은 해수욕장에 가서 휴가를 보냈다. 하지만 바쁜 엄마 아빠 때문에 너와 동생은 그 모임에 자주 끼지 못했다. 너는 바다에 가지 못하는 것보다 경험을 나눌 수 없다는 사실에 속상하곤 했다. 그런데 이른 새벽부터 정동진에 가게 되다니. 너는 그날 무척 설렜을 것이다.


동해 바다는 색이 푸르고 파도가 거칠었다. 수영을 하지 못하는 데다가 키가 작은 어린이였던 너에게 바다는 자유로운 놀이터가 아니었다. 그에 반해 수영을 일찍 배운 사촌 형제들은 파도에 부딪히며 신나게 놀았다. 그 모습을 보고 몇 번 바다에 뛰어들려고 했지만, 너는 어른의 품이 없으면 깊은 곳에 갈 수 없었다. 그건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이 동생과 함께 모래사장 주변에 걸터앉아 부서지는 파도를 맞아야 했다. 양팔을 벌리고 납작 엎드려 있으면 크기를 줄인 파도가 시원하게 몸을 감쌌다. 마치 수영을 하는 것 같았다. 너는 동생과 팔을 휘적이며 우리도 수영을 한다며 웃었다.


동생을 생각하면 쥐어박고 싸운 일이 떠오르다가도, 그렇게 덩그러니 남겨져 있던 순간이 기억을 앞지르고 달려온다.


너와 동생만 정동진에 자주 가지 못했고,

너와 동생만 모래사장에 누워 있었고,

너와 동생만 양평을 떠나 춘천으로 이사했고,

너와 동생만 외로웠던 순간들이.


너는 동생과 같은 집에서 살았다. 함께 파도를 맞았다. 그 작은 기억들이 묶여 자꾸 애틋함을 만든다.


07A8AA3B-9A44-4751-874A-E158246FF189_1_105_c.jpeg 1999년 혹은 2000년, 어느 날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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