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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Jun 29. 2020

두려움의 종류에 대하여

그래서 그녀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영어는 한국 사람들을 면전에 두고 해야 하는 영어다.  면접관들은 세상 무뚝뚝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눈을 내리깔고, 면접자의 발음과 문법을 시시각각 비교하며 평가한다. 발음은 좀 좋은 것 같은데? 저 앞에 관사 붙여야 되는 거 아니야? 이래 가면서. 그런 차가운 시선들 앞에 그녀의 입과 혀는 점점 얼어붙고 머릿속은 하얘진다. 아.. 또 이불 킥 각이다. 젠장. 젠장할.


그녀는 외국계 기업을 다니는 13년 차 직장인이다. 계속 미국계 기업에서 일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대학 전공은 중어중문학이었다. 단 한 번도 영어를 모국어로 삼는 나라에서 유학한 적이 없었던 그녀에게 영어는 처음부터 크나큰 두려움이자 실패를 예고하는 징크스였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그녀의 첫 회사, 그녀의 첫 상사는 캐나다인이었다. 그것도 교포 2세. 그 흔한 영어권 국가 여행도, 어학연수도, 교환학생도 전혀 해보지 않았던 그녀가 처음 들어간 외국계 기업에서 쓴 영문 이메일이 얼마나 그 상사에게는 가당치도  않았을까. Message(메시지)에 오타를 massage(마사지)라고 적은 이메일에, “이걸 지금 나더러 읽으라고 보낸 겁니까?”라는 말을  상사에게서 들었던 어느 날, 그녀는 화장실에서 소리 죽여 엉엉 울었다.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왜 중국어 전공을 해놓고선 하필 들어가도 미국계 회사를 굳이 굳이 들어와서 이렇게 수치심을 느껴가며 일해야 하는지. 왜 그녀는 그렇게 본인의 인생을 힘들게 만드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건 그녀에게 굴욕적이고 두려운 시작이었다. 


그 시절은 길게 가지도 않았다. 2년 반 후, 그녀가 다니던 회사가 다른 회사와 합병되면서 그녀가 일하던 부서는 정리되었다. 우직하고 미련하게 버티던 그녀를, 상사는 그래도 불쌍하게 여겼는지 괜찮다고 여겼는지, 어딘가 이직하기 위해 추천서가 필요하면 편하게 말하라고 말해주었다. 소위 말하는 정리해고를 27살에 겪으면서 그녀는  그녀가 책임질 가족은 아직 없고, 반대로 그녀가 부모님과 함께 살 때이런 일이 생긴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의도치 않았던 첫 취직의 빠른 결말을 덤덤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미련스럽게 버틴 2년 반의 경력도 경력은 경력이어서, 그녀의 이력서는 주로 외국계 기업 문턱만 넘었고 빽빽하게 쓴 영어 면접 대본이 닳고 닳을 때까지 수차례 면접을 보아야만 했다. 똑같은 피부색의 똑같은 머리색을 가지고 똑같이 무뚝뚝한 표정의 면접관을 앞에 두고 영어 면접을 하노라면, 그녀는 그게 그렇게 어색하고 긴장될 수 없었다.  마치 본인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표정으로 면접관이 그녀에게 한국말로 질문을 하고 나서, 반드시 영어역량을 검증해야 해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 대답은 영어로 부탁드릴게요”라고 말하며 씩 웃으면, 그녀는 이유모를 배신감에 잠시 멈칫하고는 “ 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라고 눈을 굴리는 것이다.  ‘젠장, 망했어, 망했다고.’를 속으로 되뇌며..


이쯤 되면 혹자는 ‘그래도 결국 외국계 13년 차라는데 10년이나 넘게 버텼으면 그다음에는 성공스토리겠지. 그래서 지금은 영어도 업무도 정말 잘한다는 거 아니야?’를 상상했다면 미안하게 되었다. 사실 그녀의 그 두려움과 실패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니까.


‘헐, 그럼 10년 넘게 아직도 빌빌대며 명색이 외국계 회사에서 언어도 못한단 말이야? 월급 루팡이구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기대에도 부응해주기 힘들겠다. 작년 겨울, 그녀는 그 부서에서 유일하게 중국어를 그래도 할 수 있는 직원이라는 이유로, 지난 13년간 영어에 치여 저 구석에 썩고 썩은 그녀의 대학 전공이 중국어라는 이유로, 중국 지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중국에 가기로 한 그 결정이, 누군가의 강요와 압박이 아닌 그녀의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그녀가 직면한 두려움은 비단 언어에 대한 두려움뿐만이 아니었다. 잘 기억 안나는 중국어도 중국어지만, 지난 10년간 잘 지내왔던 동료들을 뒤로하고 새로운 나라로 새로운 사람들과 외국어로 일을 해야 하는 환경, 그리고 남편, 아이와 함께 인생의 터전을 옮긴다는 건 아주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총체적인 난국이자 두려움이었다. 잠이 안 오고 머리가 빠지고 다크서클이 내려오고 스트레스로 피부 트러블이 일어났다.

결정할 때는 분명 더 큰 기회와 도전이라 생각하고 호기롭게 결정했는데, 그 뒤에 두려움과 실패의 그림자는 딱 붙어서 비실비실 그녀를 비웃으며 걱정의 냄새를 징그럽게도 끊임없이 풍겼다.
‘중국에 가서 잘 적응을 못해 실패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웃음거리가 되면 어떡하지? 중국에 있는 회사 동료들이 그녀가 나고 자란 나라와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잘 못해서 그녀를 따돌리면 어떡하지? 말도 느린 그녀의 아이가 한국말도 아직 잘 못하는데 거기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못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면 어떡하지? 그녀를 믿고 일까지 정리한 남편이 육아에 지치고 힘들어 더 이상 못하겠다고 하면? 졸지에 남편 경력단절까지 시킨 마누라가 되는 건가’라는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밤 새 그녀의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2020년, 그렇게 많은 걱정과 예상 시나리오를 절대 맞춰주지 않겠다는 듯이 세상은 코로나 19에 송두리째 휘말려버렸고 한국과 중국 두 나라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녀는 중국 국경이 닫힌 이유로 들어가서 일을 할 수 없었고 집에서 재택근무를 해야만 했다. 직접 가서 근무해도 어려울 판에 재택근무라니, 중국을 왜 가겠다고 했을까. 그냥 하던 일이나 했으면 중간은 갔을 텐데.라고 그녀는 입술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인생의 최대 실패라며, 이렇게 중국에도 못 들어가고 언어도 유창하지 않은 그녀가, 심지어 재택근무를 하면서 회사 동료들과도 떨어진 채 얼마나 버틸 수 있겠냐고 또 스스로 깊게 깊게 생채기를 냈다.


그래서 그런 그녀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냐고? 그녀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여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하기로 결심했다.  남편의 일자리도 정리했겠다. 아이의 어린이집도 나왔겠다. 본인은 재택근무를 하니 오히려 팔다리가 자유로워졌던 것이다. 그리고는 한 달을 더 연장해서 총 두 달 동안 그녀의 남편과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왜 갑자기 해피엔딩이냐고? 사실 웃기긴 했다. 일순간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쌍함에서 부러움으로 바뀐 것은. 그러나 그건 그녀의 처지가 바뀌어서가 아니었다. 그 상황에서 할 수 있었던 그녀의 최선의 선택이, 그녀로 하여금 그녀가 가진 것과 오늘에 더 집중하게 했고. 그 선택이 그녀 스스로를 최대한 편안하게 할 곳으로 그녀를 이끈 것일 뿐. 사실 그 상황보다 두려움과 걱정, 불안한 미래에 대한 생각이 더 힘들 뿐이라는 것을, 그런 상황에서도 충분히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그녀는 믿기로 했다.


그녀는 아직도 한국에서 재택근무를 하며 중국 각지의 동료들과 함께 중국 오피스 일을 하고 있다. 원격 근무를 통해 일을 하고 영어나 중국어, 둘 중 하나로 일을 해야만 한다. 그녀는 지금도 종종 생각처럼 언어가 되지 않아 이불 킥을 찰만한 일들을 하고, 새로운 일에 직면할 때마다 두려움과 걱정과 불안에 떤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오타 하나에 화장실에 가서 울지 않고, 상사의 호통에도 마냥 움츠러들진 않는다. 그리고 항상 그녀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불안과 두려움에도 종류가 있다는 걸 그녀는 이제 조금 알  되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그대도 본인 내면의 두려움을 잘 살펴보기를. 그대를 끊임없이 움츠러들게 하고 그대를 갉아먹는 두려움이라면 과감하게 내려놓을 수 있기를. 그리고 도전과 그림자처럼 맞닿아있는 그런 종류의 두려움이라면 부디 포기하지 말고 그 불안의 터널을 지나 성장의 선순환으로 그대를 이끌 수 있기를.


 그녀와 그대의 인생에 파이팅을 날린다. 파이팅!


제주에서의 그녀, 가족과 즐거운 한 때
제주 한달살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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