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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JANE May 29. 2020

싸구려 블라우스를 소비하지 않을 권리

미니멀 라이프와 당근 마켓

내 손이 닿지 못하는 저 먼 프랑스의 방구석에 여전히 택이 대롱대롱 달린 새 옷들이 한 무더기다. 나에게 무소유는 한날 먼 얘기다. 이미 쌓인 것들에 무게를 더 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어쨌거나 인생에서 가진 것이 많은 편이 여러모로 좀 낫지 않나, 하는 거다.  


코로나로 유난히 공기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지는 적막한 나날들이 지속되는 요즘. 좁은 집을 돌아볼 시간이 생긴다. 비행기를 수없이 타고 짐을 싸고 풀었다 싸고. 그 한편에 여전히 꽁꽁 싸매져 있는 것들이 눈에 쓱 들어온다. 캐나다에서 떠나오면서 가장 중요한 것들로만 짐을 꾸려 캐리어 하나만 챙겨 한국으로 왔다. 매번 짐을 싸고 비행기를 탈 때마다 1 킬로그램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우며 가방을 들었다 내렸다 반복하는 일이 이젠 꽤나 지치기도 하고. 30인치의 캐리어 속에 빈틈없이 꽉꽉 차 있는 이 모든 것들이 정말 모두 내 필요에 의한 것들일까. 혹시 쓸지 몰라, 혹시나 입고 싶을지 몰라, 변명을 갖다 붙이며 포기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점점 거추장스러워지는 것도 사실.


그래서 소소하게 미니멀 라이프를 행동해 보기로 했다. 스카이프를 켜놓고 다미앙은 방 정리를 시작했고 웹사이트에 내가 입지 않는 옷들을 팔기 위해 사진을 찍어 올렸다. 한 번도 입혀지지 않은 나의 하얀 블라우스의 가격이 프랑스의 어플에서 단 돈 7유로로 매겨졌다. 잘 가. 누군가에게 꼭 쓰이기 위한 역할을 하러 떠나렴.


그와 동시에, 지구 반대편의 나는 휴대폰에 당근 마켓을 다운받았다. 로고가 예뻐 전시용으로 모셔져만 있던 스타벅스 텀블러를 만원에 팔고, 두 개가 한 세트라 놀고 있던 나머지 한 짝의 운동매트를 옆동네 주민에게 만원을 받고 건네주었다. 어플 속에서는 웃돈을 얹고 얹힌 광적인 마스크 사재기 현장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료로 받아둔 채 쓰지도 않던 공적 마스크 몇 개를 추려 어플에 올렸다. 1분 만에 연락이 왔다.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에 판매를 했으니 구매자는 몇 번이고 감사하다고 말하며 마스크를 받아갔다. 소소한 선행을 베푼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여전히 뚜껑 한번 열어보지 않은 값비싼 브랜드 색조 화장품도 한 무더기다. 새 컬렉션이 나올 때마다 제일 먼저 매장에 달려가 립스틱과 색조 화장품들을 모으는 것은 꽤나 큰 기쁨을 주는 취미 중 하나였다. 그것마저 점점 화장할 일이 줄어들어 먼지만 쌓여가고 있지만. 택이 고스란히 달려있는 옷장 속의 옷들도 족히 열 벌은 넘는다. 작년 여름 자라에서 사 둔 몇 벌의 바지는 두어 번 정도 입혀지고 다시 별 감흥 없이 버려졌다. 싸구려라는 이유로 쉽게 손에 들어온 것들이 다시 싸구려라서 버려지는 일이다. 이 버려진 싸구려는 기부되었다가, 다시 또 아무도 사용할 이 없이 높게 쌓인 싸구려 티셔츠산이 되어 아프리카 어디에서 태워지면서 환경오염을 만든다. 빠르게 만들어지고 다시 또 빠르게 태워지는 것들.


파리 시내의 백화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새빨간 색의 가죽 클러치는 질 좋은 이탈리아의 브랜드라는 아주 합당한 이유로 그 가격이 지불되었다. 그러나 벌써 1년이 다되어가도록 가방은 여전히 상자 속에 고이 모셔져 있다. 매일 손에 들고 다니며 가죽에 길을 들여,  나의 손 때 묻은 멋지고 폼나는 가죽 결을 가져야지. 상상을 했지만 가방은 여전히 생 가죽 냄새를 그득 품고 있다. 무의미한 소비가 계속되었다. 나름의 취미라는 이유로 꾸준히 영위되던 일이다. 단 한 번도 들려지지 못한 가죽의 결을 천천히 쓸어본다. 이 많은 것들이 정말 제자리에서 쓰임을 다하고 있는 건가? 나 스스로를 많은 것을 가진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이 모든 소비들 앞에 나는 궁금한 것이 많아진다.


이제부터 질 좋은 티셔츠와 청바지를 하나 사 두고 몇 년을 부지런하게 입어 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러나 여전히 입지도 않을 예쁜 원피스 앞에서 그저 소유욕을 충족하고 싶다는 변명을 끄집어내고 싶어 마음이 울렁 댈 것이다. 그럼에도 꽤 강하게 깨닫게 된 점이 있지않나. 값비싸고 멋진 이탈리아 가죽의 클러치 백 따위가 들려질 새도 없이, 외출할 수 있는 자유조차 박탈되는 날이 아주 갑자기, 오기도 한다는 걸.



나는 가까운 미래에 부모가 될 것이고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지를 종종 생각한다. 가장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 하나는 행동하지 않는 부끄러운 부모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 바다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플라스틱을 계속해서 소비하고 산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패스트 패션을 계속해서 사들이는. 수십만의 아이들이 섬유 공장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지만 반대로 단 하나의 아이에게 수십만 원짜리의 새 전동차가 단지 몇 번의 놀이를 위한 장난감으로 소비되는. 나의 반려견을 사랑하지만 다른 동물들이 도살되는 권리는 너무나 당연한.  


누군가의 고통이 나의 유희로 계속해서 소비되고 있는 쳇바퀴 같은 이 삶의 순환을. 황량해져 가는 자연 앞에 이기적이지 않은 인간으로 자라나야 할 의무가 나의 아이에게 있지 않나.


게으른 우리의 노력은 여전히 미약하겠지만 사실 삶이란 건 어느 부분에서나 모두 그렇다. 천천히, 빠르지 않으며 소소하다. 비건이 되고 싶지만 여전히 음식이 주는 행복을 포기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내가 그런 작고 소소한 인간이다. 큰 힘을 들이지 않으면서 노력하고 싶은 이기심이 여전하다. 그래도 부끄럽게 살지 않으려는 노력은 지속 가능한 것으로 치부되었으면 좋겠다. 포기 가능한 것들을 계속해서 포기해가는 긴 여정. 삶은 일회용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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