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3 아이덴티티

by 이각형


23 아이덴티티, 제목 그대로 다중인격자에 관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장르는 공포로 분류되어 있습니다만 호러물까지는 아닙니다.


공포라는 장르로 구분된 것은 귀신이 나온다거나 험악한 장면이 나와서라기보다는 심리적으로 약간의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오히려 스릴러 물에 가까운 이야기여서 공포 장르를 극도로 싫어하시는 분들도 관심 있게 보실 만한 영화입니다.


또한 지루하지 않도록 스토리 구성을 집약적으로 한 덕분에 몰입감이 상당합니다. 23개의 다중인격을 가진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보니, 23개의 인격을 모두 다 보여줄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랬다간 시청자들이 모두 지루함을 느끼고선 영화의 결말까지 기다리진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감독은 연출에 특별히 신경을 쓴 모양입니다.


연출의 특징을 꼽자면 이야기의 개연성에 관해 아무런 설명이나 암시 없이 곧바로 사건이 발생하기 시작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세 명의 여학생들과 세 아이를 집으로 데려다주려고 하는 아버지가 어느 식당에서 평범한 오후의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세 명의 학생 중 한 명이 감정적으로 흔들리면서 혼자 집으로 갈 거라고 했더니 한 아이의 아빠가 그러면 안 된다면서 자신이 그 아이의 집 앞까지 차로 데려다줄 거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혼자 집으로 가려던 학생도 친구 아버지의 권유에 동의했고 그렇게 네 사람은 주차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이 두 명의 여학생은 뒷자리에 그리고 혼자 가려던 여학생은 조수석에 먼저 앉았습니다.


친구 아버지는 트렁크에 짐을 넣고 있었는데요. 이때 카메라 앵글이 운전석 사이드미러로 좁혀집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친구 아버지가 괴한에게 습격을 받아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지는 실루엣을 살짝 보입니다. 그 괴한은 친구 아버지를 쓰러뜨리고선 바로 운전석에 올라탔습니다.


뒷자리에 있던 여학생 중에서 친딸인 학생이 괴한에게 "아저씨 차 잘못 탔어요. 이건 아저씨 차가 아니에요."라고 말하면서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 찾기 시작합니다. 괴한은 그 학생의 말에는 굳게 입을 닫고선 어떤 약품을 뿌려서 두 여학생을 기절시키고 맙니다.


그동안 조수석에 앉아 있던 학생도 아주 천천히 손을 움직여서 안전벨트를 풀고 문을 열고 뛰쳐나갈 준비를 합니다. 그러나 딸각 소리와 함께 안전벨트가 풀리자마자 안전벨트 경고음이 흘러나오면서 괴한은 조수석에 앉은 학생에게 모든 시선을 쏟아붓습니다.




결국 그 괴한은 여학생 세 명을 한꺼번에 납치하는 데에 성공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제임스 맥어보이의 물오른 신들린 듯한 연기력이 영화의 백미를 장식합니다.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과 더불어 제임스 맥어보이의 미친 연기가 이 영화를 꼭 봐야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제임스 맥어보이는 할리우드에서 작은 키가 유일한 단점으로 꼽힐 정도로 연기력이 아주 뛰어난 배우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출연했던 작품으로는 안젤리나 졸리와 같이 출연해 현란한 권총 액션을 보여준 원티드, 키이라 나이틀리와 함께 애틋하고 안타까운 서정적 멜로디를 그려낸 어톤먼트, 찰스 자비에르 교수 역할을 맡았던 엑스맨 시리즈 등이 있습니다. 엑스맨 시리즈에서 물오른 연기력이 정점을 찍었다는 평을 들었던 배우였습니다.


그런데 그건 너무 섣부른 평가였던 것 같습니다. 23 아이덴티티에서 보여준 제임스 맥어보이의 연기는 그야말로 이 영화는 오로지 그의 연기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냐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23개의 인격 중에서 영화에서는 케빈, 베리, 헤드위그, 데니스, 페트리시아 그리고 비스트, 6개의 인격을 혼자서 연출했습니다. 물론 짧은 비디오 클립으로 제이드와 오웰이라는 인격도 포함한다면 8개의 인격을 소화해 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 8개의 인격이 등장할 때마다 과연 한 사람이 연기한 게 맞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너무 각각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미국 정신의학협회에서 정의한 다중인격이라는 정신질환은 단순히 여러 가지의 성격을 갖춘 정체성 혼란을 뜻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나이와 성별을 가진 인격이 혼재되어 있는 정체성 질환을 두고 다중인격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패트리시아라는 여성 인격, 8살짜리 헤드위그라는 아주 독특한 인격에 대한 연기까지 모두 소화하는 모습을 볼 때 영화의 스토리에 대한 관심마저 사라져 버릴 정도로 그의 연기에 몰입하게 됩니다.


실제로 저도 영화를 보면서 그가 처음으로 여성과 8살짜리 아이로 분한 모습을 볼 때 소름이 돌 정도로 깜짝 놀랐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눈빛과 표정이 다르게 할 수 있는지부터 해서 그렇게 달라진 눈빛과 표정을 통해 다른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는지를 제임스 맥어보이를 통해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제임스 맥어보이의 연기력만으로도 충분히 볼 만한 영화입니다만, 그렇다고 또 그저 그의 연기력만 감상할 정도인 영화는 아닙니다. 스토리도 상당히 탄탄합니다.


줄거리에 대한 얘기는 이 자리에서 너무 장황하게 풀어낼 수도 없고, 그렇게 할 경우 스포일러가 되어 금기를 깨트리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즐거운 영화 감상을 위해서라도 줄거리는 탄탄하다 정도로 언급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한 탄탄한 줄거리 말고도 이 영화를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하나의 교훈이 있습니다. 바로 줄거리를 통해서입니다.


23개의 인격이 그저 정신적으로만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23개의 인격 중 어느 한 인격이 빛을 받아 의식의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면 유독 그 인격에게서만 당뇨병 증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그저 영화의 설정인 줄로만 알았는데요. 놀랍게도 이 영화는 실제 사례를 기반으로 한 영화입니다.


물론 실제 사례에서 한 인격이 활성화될 때 그 인격에 따라 당뇨병이 나타난 실제 사례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례는 학계에서 실제로 관찰되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인격에서는 라텍스 알레르기가 있었지만 다른 인격에서는 아무런 증상이 없었고, 인격에 따라 혈압, 심박수, 시력, 청력, 손글씨 그리고 통증에 대한 민감도가 달랐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피부 병변이 특정 인격에서만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했답니다.


그런 사례에서 착안하여 영화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우리 자신이야."


그 대사를 정확히 옮긴 것은 아니고, 의미만을 살려 본 것입니다. 이 한 줄 대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지 정말 잘 와닿지 않으십니까.


샤르트르는 외부이라는 글에서 한 인간의 정체성은 시화에서 결정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에서 볼 때 자신의 정체성은 자신의 믿음에 따라 결정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얼마나 건강한 자화상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진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연구는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말콤 글래드웰은 자신의 책 다윗과 골리앗에서 한 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가 어떻게 해서 30대에 파멸하게 되었는지를 우리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바로 건강한 자화상이 미치는 영향에 관한 얘기였습니다.


물론 반대의 사례도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일 때까지 난독증이었던 아들을 정상인이라고 믿고 정성스럽게 키운 한 어머니의 믿음이 결국 꽃을 피워 골드만삭스의 회장이 되기까지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다루기도 했습니다.


물론 한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 주는 영향력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절대 무시할 수 있는 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불우한 환경,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얼마든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건강한 자화상이고, 건강한 자화상은 결국 얼마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관점으로 자신과 이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지에 따라 갈리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영화, 23개를 넘어서 24개의 다중인격을 지닌 한 인간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면 볼수록 더욱 그러한 점이 부각되곤 합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믿고 있는 그 믿음에 따라 눈빛, 목소리 그리고 표정이 달라집니다.


어떤 인격은 예술가적 운명을 스스로 발현하고 있었고, 어떤 인격은 굉장히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모습을 굳은 표정으로 강인하게 보여주곤 했으며, 또 어떤 인격은 해맑은 웃음을 지을 줄 아는 순박한 어린이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관점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타인이 우리를 어떤 모습이나 의미로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우리는 스스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빈 페이지에 숙명적으로 펼쳐질 다양한 인생의 굴곡 앞에서 우리는 자신을 향해 어떤 목소리로 응원하고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를 암시하고 있는 이 영화, 23 아이덴티티를 이번 주말에 따듯한 집에서 감상하시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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