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

by 이각형


2025년은 내게 도스토옙스키의 해라고 기억될 것만 같다. 이는 어느 정도 우연이 맺어준 인연이었다.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헤르만 헤세의 글을 통해 위로를 받고 있었다. 헤르만 헤세가 타인의 작품에 대해 상당한 분량의 글을 남겨 놓았던 것이 계기였다.



헤르만 헤세와 같은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작가조차도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에 대해 감탄사를 늘어놓고 있었다는 점에 굉장히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백치를 시작으로 카르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연거푸 두 번 읽고 나서 죄와 벌을 무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그리고 도스토옙스키의 5대 걸작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 악령이라는 소설을 집어 들게 되었고 배송 문제로 인해 중간 과정으로 그의 처녀작인 가난한 사람들을 읽고 있다.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가난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첫 페이지를 넘기기 전 이 책에 관한 선입견을 갖고 시작했다. 아무래도 제목이 주는 뉘앙스가 작품 전반에 걸친 어떤 인상이나 선입견을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한없이 우울할 것만 같은 음울한 분위기로 점철된 작품이지 않을까 라는 편견은 더욱 내 마음을 조여만 갔다. 그토록 먹먹한 마음으로 시작한 이 책은 놀랍게도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게까지 침울하지 않다는 데에 작가의 예리한 문체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빈자들의 삶이란 정말 고통의 연속이다.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앞에서 깊은 고민에 빠져야 하는 그들의 삶은 과연 얼마나 비참하고 꽉 막혀 있을지 가히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그들 사이에서는 인간적인 무언가가 숨어 있었다. 그들도 똑같은 사람들이었고, 빈자들 중에서도 인격적인 면모를 갖추고 그것을 잃어버릴까 노심초사하며 매 순간 자신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존재들이 조용히 우리 곁을 지키고 있었다.



아직 책을 다 읽지 못했지만 조용히 숨 죽여가며 읽어가면서 자신에 대한 검토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과 다르게 모자란 것 없이 살아가는 나는 얼마나 큰 축복을 받은 것이란 말인가.



그들에게 놓인 험난한 운명을 헤쳐나가는 그들의 의지와 강인한 심성 앞에서 나 같은 유약한 인간은 고개를 떨구고 만다. 지금이야 모자란 것 없이 살아가니 겉으로나마 고결한 척 살아가고 있지만, 만일 내가 그들과 같은 자유롭지 못하고 피지배자의 환경에 놓여 있었다면 과연 나는 이 지긋지긋한 삶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었을지 가늠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 작품은 도스토옙스키라는 문학계의 숨겨진 거장을 세상에 알린 처녀작이다. 당시 비평가로 활동하던 벨린스키는 그의 재능을 단숨에 알아보고 그의 저작활동을 돕기도 했다고 한다.



자신의 생활상을 반영한 가난한 사람들을 주제로 한 편의 훌륭한 작품을 뽑아낼 수 있는 작가의 문학적 재능도 재능이지만, 보잘것없어 보이는 민초의 삶에서 예술적 가치를 발견하는 작가의 시선이 정말 부러웠다.



헤르만 헤세가 말했듯이 모든 진실된 작품은 작가의 경험에서 한 발자국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이것은 곧 개개인의 삶은 곧 하나의 예술이자 작품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도스토옙스키의 시선으로 나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나에게 선물과 같이 주어진 하루를 채우면 가슴 한 켠이 조금이라도 따듯해지지 않을까 실낱 같은 희망을 꿈꾸며 붓을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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