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그리고 쿵푸펜더4

북한산을 오르며

by 이각형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산을 오를 때마다 쉽지 않았다. 무더위를 조금이라도 누그럴 뜨릴 일환으로 문명의 이기를 취해 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지난주에 손바닥만 한 손선풍기를 들고 북한산 입구에 서게 되었다. 그런데 습관이 무섭기도 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선풍기가 있었지만 습관대로 그저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기만 했다. 그러다가 햇빛이 뒤통수를 강렬하게 내리쬐고 등허리가 뜨거운 열기로 달궈져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가는 순간, 뭔가가 번뜩였다.


그래, 맞아. 선풍기가 있었지.


그리하여 나는 끝도 없을 것 같은 가파른 산길에서 선풍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작은 바람일지라도 한 가닥의 햇살 같은 희망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등산할 때 손선풍기가 주는 위안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이 자그마한 것이 그럴 리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평일 점심시간 덕수궁 돌담길에서였다.


하지만 그건 모르고서 하는 소리다.


그래도 개운치 않았는지 다시 또 빈틈을 파고들었다. 등산이란 어차피 땀을 흘리러 가는 일인데 왜 선풍기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 역시 덕수궁 돌담길에서였다.


그리고 그 역시 모르고서 하는 소리다.


38도, 35도, 30도의 무더위에 산을 오르는 희열은 경험해 보지 못하면 알 수 없다.


인고를 거치지 않는 안락은 없다. 그리고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고통을 통해서 행복을 느낀다.


미생, 완생의 반대말. 바둑에서 집을 이루지 못한 상황을 일컫는 말.


이는 마치 인생이 완생을 향해야만 한다는 목표를 부여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틀렸다.


인생은 선택의 누적 값이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맞지 않다.


마치 선택을 통해 자신의 계획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만들기에 하나의 이론일 뿐 명제로선 근거가 부족하다.


인생은 완생도 아닐뿐더러 그저 과정일 뿐이다. 그 과정을 채우는 하나의 요소로서 선택 그리고 자유의지가 부여되었던 것뿐이다.



완생이라고 쾌재를 부른 순간, 그 결과가 고작 죽음뿐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인생이 완생의 의미를 갖게 된다면 그것은 단 하나의 그림을 그려내기 위해서다.


안생은 자신의 본연의 모습으로 회귀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일 것이다.


그리하여 숙적들일지라도 자신의 본연으로 모습을 되찾은 그들은 자신을 본래의 모습으로 환원시킨 펜더를 영웅으로 추대한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가르침인 황금률의 결과다.


이러한 숨겨진 비밀을, 삶의 시작과 끝이 같은 모습이 저 멀리서 은유로 조용히 속삭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조용히 숨죽인 채 자신의 본성을 추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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