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오 차장이 장그래 사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장팀장님, 이번엔 철학하지 마세요."
이 말이 서로에게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철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이다.
그렇다면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자, 그렇다면 철학은 무엇인가에 관해서 얘기를 할 시점이다.
정말로 철학은 무엇일까? 왜 그토록 어렵게만 느껴지는 이 단어, "철학"은 무엇이길래 우리는 고개를 내젓고 마는 것일까?
현대인들은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이 태동했다고 동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동의는 무엇을 근거로 하는 것일까?
고대 그리스인 중에서 최초의 철학자로 인정받은 사람이 제기한 문제의식을 검토한 결과 우리는 이 질문 앞에 서 있게 된다.
우리는 늙고 병들어 삶을 마감하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인가라는 것에 관한 질문이었다.
따라서 철학자들은 필멸의 운명에도 불구하고 불멸의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왜냐하면 불멸의 무언가가 없다면 필멸의 존재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자신의 한계를 직감하는 동시에 그 한계를 뛰어넘는 어떤 존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할당된 시간에 대해서 최선을 다했었다. 그래서 그들은 미래의 인류를 향해 의미 있는 문제의식을 던져 놓았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일정한 방향이 있다.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방향성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강물과 바닷물이 흘러가는 흐름에 따라 너펄거리는 해초와 같이 인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게 되어 있다.
만일 시간의 방향이 임의적이고 우연의 일치였다면 우리네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방증이 된다. 따라서 의미를 추구하는 인간은 반드시 이 우주를 운용하는 지적인 존재를 상정할 수밖에 없다.
독일인들은 이런 이미지를 갖고 있다. 독일인 약사는 알약을 가루약으로 곱게 빻는 동안에도 이 우주의 섭리에 대한 의미를 곱씹어 보는 사람들이라고.
시간의 방향은 앞으로 일직선으로 향해 있기 때문에 방향이 일정하다. 다만 미래를 알지 못하는 인간의 관점에서 분명해지는 것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함정이다.
따라서 인간의 삶이 순간순간의 선택으로 점철된다는 것은 결국 매 순간마다 방향설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결국 철학은 우리가 어디를 향해야만 하는지에 관한 방향설정인 것이다. 비록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네 숙명이다.
결과적으로 철학은 방향설정이다. 또한 이것은 우리가 어디로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솔직한 참회이자 자기 고백과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을 할 때, 다시 말해 어떤 일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동안에 우리의 계획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하거나 아니면 전제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과연 옳다고 믿어야 한다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내일 일을 예측하지 못한다. 심지어 우리는 10초, 아니 1초 뒤에 벌어질 일도 알 수 없다.
이뿐만 아니라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동시간대에 벌어지는 것도 알지 못한다. 필멸의 숙명과 더불어 알지 못하는 것이 또 하나 추가되었다.
이런 존재가 과연 오만해질 수 있는 자격을 갖췄을까? 모르긴 해도 적어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할 때에는 빈드시 철학을 해야 한다
모든 순간마다 엔간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철학이다.
그리고 실상은 이러하다.
철학이 질문하고 신학이 답변한다. 그러나 신학은 질문을 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