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마지막 이야기 #1

by 이각형



오징어게임을 그저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잔혹한지를 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소홀한 태도가 아닐까? 최종화를 보고 나서 다른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어떻게 봤는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면서 갖게 된 질문이었다.



물론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드러낸 것이긴 하지만 이 드라마의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고 하기엔 너무 빈약한 말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드라마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데 그 이유가 바로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때마다 그 해석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관점주의에서 볼 때 이상적인 세계는 각자의 관점이 모두 합쳐져 하나의 세계를 이룰 때라고 했다. 조각상을 여러 각도에서 볼 때 각 각도에서 바라본 모습들을 하나로 합쳐야만 조각상의 온전한 모습을 이루는 것처럼 그때 바로 이상적인 세계가 도래하는 것이다.



글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영감을 주는 작품을 환영하기 마련이다. 비록 그 작가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일지라도 작품 속에 내재된 이야기거리가 풍성할 때가 많다. 그만큼 훌륭한 작품인 것이다.



오징어게임을 한 사람이 회사에 들어가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하나의 비유로 바라볼 수도 있다. 처음에는 수백 명의 입사 동기가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지만 서로를 무찌르고 이겨야만 승진할 수 있는 직장의 가장 잔인한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시즌 3의 최종 게임에서 딱 9명이 남았고 그들의 복장이 체육복에서 정장으로 바뀐 대목이 정확히 임원 승진과 맞물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 임원들 사이에서도 최종 승자만이 대표이사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것도 똑같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자본가와 그 자본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일로 먹고사는 노동자가 있다.




그리고 노동자 계급에서 자본가의 간택을 받은 중간관리자가 있다. 중간관리자란 바로 자본가 대신에 자본의 운용과 이익실현을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을 말한다.




자본가 입장에서 보면 대리인이면서 하수인이고,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관리자이자 자본가의 상급 노예이다. 그리고 자본가는 자신이 임명한 관리자가 제대로 일을 수행하고 있는지 평가하기 위해 최소 1년에 한 차례 주주총회라는 형식으로 정기 점검에 나선다.




오징어게임 마지막 게임에서 9명의 참가자들이 운명을 가르는 승부를 벌이고 있을 때 멀리서 검은색 유리창을 통해 관찰하고 있던 VIP들의 얼굴을 가린 모습이 바로 그런 주주총회장에 앉아 있는 대주주들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기 위해 줄거리를 말하지 않고 내게 남겨진 인상만을 붙잡고 이야기를 풀어나갈 생각을 하니 사실 쉽지가 않다. 그렇지만 최대한 노력해 보겠다.




성기훈 씨(이정재 분)의 마지막 선택은 최종화를 보기 전이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선택을 바라보면서 시청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이 갖는 의미를 역선택과 비교해 봄으로써 더 두드러지게 만들어 놓는다면 이 사회를 보다 풍요롭게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2가지를 사용한다. 하나는 얼마나 가졌는가, 또 다른 하나는 무엇을 할 줄 아는가이다.




무엇을 할 줄 아는가는 실용주의적 관점을 반영한 평가요소이다. 다시 말해 이 두 가지 평가요소에는 안타깝게도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것이 하나도 없다.




성기훈 씨의 선택이 무엇이 옳은 일인가에 있지 않고, 실용주의적 관점에 있었다면 과연 오징어게임의 이야기는 어떻게 끝나고 말았을까?




아, 우리 인간은 도덕적인 면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도 잔혹하고 이기적이고 썩어빠진 존재라는 자괴감에 빠질 만한 결말로 이어졌을 것이다. 타락으로 시작해 타락으로 몰락하고 마는 인간 세계의 모습을 그려낸 아주 기분 나쁜 이야기로 남았을 것이다.




만일 그저 인간의 본성을 고발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면, 오징어게임의 주제가 그저 인간의 본성을 그려내는 데에만 있었다면 성기훈 씨의 선택은 달랐을 것이다. 냉혹한 현실을 그려내기만 했어도 충분히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리고 만일 그렇게 끝났다면 우리에게는 더 안 좋은 추억만 남았을 것이다. 자신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거울을 증오하듯이, 추악한 모습으로 오징어게임이 끝났다면 이 드라마의 제작진은 힐난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람들은 진실을 원한다고 말하곤 하지만 실상 그들에게 그들의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면 화를 내고 욕을 하기 마련이다. 그만큼 우리는 다른 모습을 믿고 살아간다.




그래서 인생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오징어게임의 잔인한 장면을 그나마 별다른 반응 없이 앉아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우리는 적어도 그런 사람들은 아니라는 자신만의 믿음이 굳건한 덕분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내면에는 선이라는 씨앗이 있다. 우리에게는 돈을 얻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지도 않을 선한 마음이 있으며,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지도 않다.




그러한 선한 마음과 선량한 마음인 양심이 있기 때문에 성기훈 씨의 최종 선택에 동의할 수 있었고 대단원의 막을 내린 오징어게임의 마지막 장면에 또 다른 호기심을 갖고 여운을 간직할 수 있었다.




비록 선한 사마리아인들이 소수에 불과할지라도 456명이 목숨을 바쳐 잔혹한 게임에 참가하게 만든 불의의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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