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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각형 Jun 17. 2023

범죄도시 3편 후기

광고의 충격과 농담의 유쾌함


마동석의 기획으로 시작해 마동석이라는 배우로 끝나는 영화, 범죄도시 3편.


불이 환하게 켜진 상영관 내부로 들어가는 일은 좀처럼 겪기 어려운 일이지만, 미리 들어가 앉아 있는 게 그다지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아닌 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의례 10여 분 동안 자본주의의 하숫물이 커다란 스크린을 장악했다. 광고를 보는 동안 나는 내가 아주 심각한 상태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직시했다.


광고가 흘러나오는 동안 화면 속에서 아는 얼굴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나는 갑자기 21세기를 살아가는 원시인이 되어버린 듯했던 것이었다. 순식간에 등줄기에 소름이 끼쳤다.


언제부턴가 직원들이 드라마나 연예계 소식을 얘기하고 있으면 주변인을 넘어서서 이방인으로 둔갑해버리곤 했다. 하지만 언제나 뉴스에 관해서 최대한의 거리를 두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저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자신에 대해 자책감 따위는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즐겨왔던 오락물 중의 하나인 영화관 안에서 광고를 보는 동안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에 상당한 충격을 받고 말았다. 30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광고를 10분만 보더라도 시류의 방향을 파악하는 일에 재미를 찾곤 했었다.


특히 9시 뉴스가 시작히기 전 10분 동안 이어지는 광고를 보고 있으면 시대의 큰 흐름을 이해하는 데 단서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만큼 보는 재미가 있었던 광고가 이제는 젊은 세대들의 언어적 습관을 이해하기는커녕 수용하기도 어렵다는 사실에 맞닥뜨렸을 때 나는 하나의 커다란 파도가 나를 덮쳐오는 것만 같았다.


마치 18세기의 인간이 21세기의 검은 유리를 쳐다볼 때 느낄 만한 생경함에 버금갈 정도의 충격이었다. 18세기를 체로 탈탈 털으면 소설이 남을 거라고 했다. 21세기를 체로 탈탈 털으면 영상이 남을 것이다.


이제는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이 광고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미개인으로 전락할 법도 한데, 더 큰 충격은 이어진 광고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하고선 더 한번 큰 충격에 빠지게 되었다. 나는 그런 광고들이 과연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체로서의 광고로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을 포함해서 도무지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정보의 전달이라는 점은 그저 public relation and announcement의 기능에 국한해서 본다면, 시끌벅적한 영상들의 향연으로 그쳤어도 광고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었다고 두어 번 양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무지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점은 불가항력적이었다.


오르테가는 사회의 주류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기를 거부할 때 그 사람의 생명력이 소멸하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대중문화에 다시 발을 들여놓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자 살짝 조바심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과연 범죄도시 3편도 나를 밀어내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마음속에서 작은 파문을 일으키며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이토록 긴장감에 빠지게 된 것은 마블의 End war 이후로 처음이었다. 마블의 End war는 그나마 영웅들의 비장한 각오와 함께 시작해야 한다는 관람객으로서의 일종의 사명감이 빚어진 긴장감이었다. 하지만 이날의 긴장감은 문화의 큰 흐름에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자신을 내몰았기 때문에 정체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기우에도 불구하고 범죄도시 3편은 너무도 재미있었다. 아쉬운 점으로는 1편과 2편에서 착한 빌런으로 등장한 배우들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점이었는데 후속작에서는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슴에 품고 영화관을 나올 수 있었다.


범죄도시 3편의 플롯은 클리셰와 같은 그토록 뻔하디 뻔한 권선징악의 공고한 구조 위에 그려졌다. 클리셰인만큼 굳이 권선징악에 관해 세세한 언급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너무도 뻔한 스토리의 전개는 너무도 뻔한 만큼 다른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관객의 가슴에 통쾌와 유쾌의 씨앗을 심어놓았다.


특히 주목할 만한 건 유머의 도입이었다. 범죄도시 전편들과는 달리 3편에서는 유머를 적극적으로 구사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특히 이 유머의 코드가 나와 너무도 잘 맞아떨어졌다.


비록 남들이 읽지 않는 복잡한 문장과 두꺼운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내고, 남들이 선택하지 않은 어려운 관문들을 몇 차례나 통과한 결과 밥벌이를 버젓이 하고 있지만, 나는 오락적 요소로 선택할 때 "단순함"을 가장 결정적으로 활용한다.


그중에서도 유머에 대해선 아주 간결한 터치를 최고의 수준으로 여기곤 하는데, 간결함으로 말하자면 "뻔뻔함"이라든가 "어처구니가 없음"에 뿌리를 둔 것들을 특히 좋아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말들과 뻔뻔한 말들이 농담조로 건네질 때의 통쾌함은 실로 인생에 대한 기대가 없는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던지는 도전장과도 같다. 실생활에서는, 다시 말해 사회적 인간관계에서는 도저히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친목을 향한 인간관계에선 버젓이 말해질 수 있는 것이야말로 긴장감의 해소로 이어지는 박장대소의 기폭제와 마찬가지였다.


농담에 대해 이런 형식적 구조를 최우선 가치로 상정하며 지향하는 나로서는 오늘 아침 최은영 작가가 "그동안 소설 쓰는 게 너무 신난다"라고 농담을 해왔다는 문장에서 동심원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덕분에 짤막하게 영화에 대한 후기를 남기게 되었다.


한국인다운 한국적 영화, 그만큼 단순하고 그만큼 유쾌한 영화 범죄도시 3편을 기획과 주연을 맡은 마동석 씨에게 감사를 표하며...


마동석 씨 덕분에 광고를 보며 어깨를 짓누르던 긴장감에서 해방될 수 있어, 그 점에 대해 특별히 더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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