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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각형 Jul 31. 2023

어톤먼트, 이언 매큐언



Atonement by Ian Russell McEwan


이언 매큐언의 속죄라는 작품을 읽고 단 한 마디로 이 책의 서평을 남기자면 나는 리쾨르가 작가에 관해 남긴 말이 떠오른다.


리쾨르에 따르면, (어쩌면) 작가란 기억과 글쓰기의 움직임에 따라 과거에 경험한 단편적이고 이질적인 자아를 재구성하고 그리하여 고양된 주체가 아닌 모욕받은 주체를 극복하기 위해 글을 쓰는 자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사실 소설이라는 문학장르는 레판토의 외팔이의 업적에 힘입어 탄생한 뒤로 모든 소설은 리쾨르의 작가론에 대한 증명이나 마찬가지이다.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소설이라는 장르에 굵직한 구분선을 만들어낸 장본인이기도 했다.


따라서 리쾨르의 작가론은 어떤 소설에 접목시키더라도 틀리는 법이 없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이언 매큐언의 "속죄"에 대한 한줄평으로 리쾨르를 떠올린 이유로 작품 속에 밝혀진 브리오니의 자백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책 기준으로 556페이지나 된다. 이 작품은 브라이오니의 독백으로 시작하는데, 긴 분량에서 마지막 네 페이지에 이르기 전까지 독자들은 남녀심리에 대한 작가의 섬세한 묘사에 취한 채 우여곡절이 넘치는 주인공의 인생 여정을 마치 내 얘기인 것처럼 빠져들게 된다.


남녀 주인공의 가슴 아픈 사랑에 붙들린 채 애간장이 타들어간 독자들은 쓸어 담았던 가슴속에 한줄기 들이치는 햇빛의 자상한 인도를 받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찰나에 마지막 네 페이지를 남겨두고서 눈이 휘둥그레진다. 브라이오니의 마지막 고백은 그야말로 충격적이기 때문이었다.


그 내용을 이곳에 밝힌다면 아직 이 작품을 접하지 못한 이들을 위한 지적 희열을 앗아가는 행위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일일이 밝힐 순 없다. 그저 리쾨르의 작가론이 떠올랐다는 말밖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현대소설가 중 이언 매큐언을 한 손가락 안에 꼽는 이유가 있는데 바로 그의 뛰어난 상상력과 예술적 영감이 그러하다. 작가는 이 작품을 집필하게 된 동기를 한 인터뷰에서 밝혔는데 그 얘기를 듣고 나서 나는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그는 전쟁 사진 2장을 보고서 소설 속죄를 구상했다고 한다. 물론 그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진실을 말할 용기에 관한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작품의 주제와 지금 나의 글이 지향하는 관점은 서로 다르다. 이는 독자를 향한 작가의 시선, 작가의 예술적 정신이 발효되는 관념이라는 창고를 발견하고자 하는 독자 나름대로의 시선이라는 차이에서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다만 두 개의 시선은 미덕을 이 세상에 구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두 사람의 한결같은 마음 위에서 교차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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