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문과생의 일은 방향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브레이크를 걸고, 방향을 다시 묻는 역할

by 우주문과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이건 기술적으로 안 됩니다.”


이 말이 나오면 회의는 잠시 멈춘다.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고, 누군가는 다음 안건으로 넘어갈 준비를 한다. 예전의 나도 그랬다. 기술적으로 안 된다고 하니, 더 이상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안 된다’는 말이 항상 같은 의미는 아니라는 걸.


어떤 경우에는 정말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어떤 경우에는 지금 일정 안에서는 어렵다는 뜻이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아직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는 의미에 가까운 말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 셋이 회의 안에서는 종종 같은 말로 쓰인다는 점이었다.


기술적으로 안 된다는 말이 나왔을 때,

그게 지금 당장은 어려운 건지,

조건이 바뀌면 가능한 건지,

아니면 아예 시도할 가치가 없는 건지가 구분되지 않으면, 판단도 함께 멈춰버린다.


그때부터 나는 ‘안 된다’는 답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다.

그 말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부터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과생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술적으로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를 대신 판단하는 게 아니었다.

대신 그 가능성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는 역할이었다.


지금은 안 된다고 하지만,

조건이 바뀌면 가능한 지점은 없는지.

적용 범위를 줄이면 시도해 볼 여지는 없는지.

지금 일정에서는 어렵다면, 다음 단계에서는 검토할 수 있는지.


이 질문들은 기술을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기술을 검토의 대상으로 다시 올려놓는다.


엔지니어가 안 된다고 말하면, 그건 분명 중요한 신호다.

하지만 그 말이 곧 ‘어디에서도 안 된다’는 뜻은 아닐 수도 있다.

우리 회사에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방식이,

다른 회사에서는 다른 접근으로 시도되고 있을 수도 있다.


이걸 인식하는 것도 문과생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기술의 한계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 한계가 절대적인지, 아니면 현재 조건에 따른 것인지를 구분하는 일이다.


그래서 회의에서 내가 던지는 말은 점점 이런 쪽으로 바뀌었다.


“지금 구조에서는 어렵다고 하셨는데, 접근 방식을 바꾸면 가능성은 없을까요?”

“이건 기술적인 한계인지, 아니면 일정 때문에 생긴 문제일까요?”

“우리 기준에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지만, 다른 회사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고 있을까요?”


이 질문들은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회의가 너무 빨리 멈추지 않도록 브레이크를 걸어준다.


문과생의 역할은 엑셀을 더 잘 만들거나,

기술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너무 쉽게 결론이 나버리는 순간에,

“잠깐만, 이게 정말 끝일까?”라고 묻는 사람에 가깝다.


기술은 늘 제약을 먼저 말한다.

안 된다, 어렵다, 시간이 부족하다.

그 제약을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그 제약만으로 방향이 정해져서도 안 된다.


그래서 문과생은 방향을 환기시킨다.

지금의 선택이 유일한 선택인지,

아니면 다른 길을 검토해 볼 여지가 있는지.

지금 멈추는 게 맞는지, 아니면 다음 단계로 넘겨야 하는지.


그 질문들이 쌓이면서,

회의는 ‘된다/안 된다’를 넘어서

‘어디까지 시도할 것인가’를 이야기하게 된다.


문과적 사고는 기술을 이기는 사고가 아니다.

기술의 한계를 인정한 상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 수 있는 방향을 끝까지 묻는 사고다.


그리고 그 역할은,

누군가는 반드시 맡아야 한다.


지금의 나는,

‘안 된다’는 말이 나왔을 때 가장 먼저 고개를 끄덕이기보다는,

그 말이 어디까지를 의미하는지부터 확인하려고 한다.


그게 문과생으로,

기술 산업 한가운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6. 문과생은 모든 걸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