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 그 사이에서 보이기 시작한 것들
회사에 들어와서 한동안은 내가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잘 알 수 없었다.
개발팀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영 쪽도 아니었다. 어떤 회의에서는 엔지니어 옆에 앉아 있었고, 다른 회의에서는 임원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회사 안에서도 늘 중간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그게 어색했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것 같았고, 내 자리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 이야기를 하면 깊이 끼어들기 어려웠고, 경영 이야기를 할 때도 쉽게 말을 얹기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이 ‘중간에 서는 역할’은 회사 안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라는 걸.
회사 밖으로 나가면 그 위치는 더 분명해졌다.
전담기관과 이야기할 때는 개발팀의 상황을 설명해야 했고, 고객이나 외부 파트너와 이야기할 때는 회사의 입장을 정리해서 전달해야 했다. 내부에서는 중간자였지만, 외부에서는 자연스럽게 회사를 대표하는 위치에 서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 알게 됐다.
이 역할은 내부와 외부, 두 방향 모두에서 중간에 서야 하는 자리라는 걸.
기술 이야기가 오갈 때면
“이게 실제로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정리해 말해야 했고,
경영 이야기가 나올 때면
“지금 조건에서 현실적인 범위는 어디까지인지”를 설명해야 했다.
그 사이에 서 있다 보니, 시야가 조금씩 넓어졌다.
한쪽에만 서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중간에 서 있으니 동시에 보이기 시작했다. 기술만 볼 때는 놓치기 쉬운 일정과 비용의 문제, 경영만 볼 때는 간과되기 쉬운 기술적 제약들이 함께 보였다.
물론 깊이는 각자의 몫이다.
기술을 얼마나 깊게 이해할지는 개인의 노력에 달려 있고, 경영을 얼마나 날카롭게 볼 수 있는지도 마찬가지다. 중간에 서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모든 게 보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중간에 서 있으면 얇고 넓게라도 양쪽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점이다.
기술 회의에서는 흐름을 따라가며 질문을 던질 수 있고, 경영 회의에서는 같은 이야기를 다른 언어로 다시 풀어낼 수 있다. 완벽하게 알지는 못해도, 대화에서 완전히 빠지지는 않게 된다.
이 참여가 쌓이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한쪽 이야기만 듣고 판단하지 않게 된다.
기술의 말과 경영의 말을 함께 놓고, 그 사이에서 지금 가능한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사실 이 역할이 문과생에게만 중요한 건 아니라는 걸.
사업관리나 과제기획 업무를 맡게 되면, 전공이 문과든 이과든 비슷한 위치에 서게 된다.
기술을 직접 개발하지는 않지만, 그 기술이 사업과 과제로 이어지는 전 과정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과 출신이라고 해서 항상 기술 쪽에만 서는 것도 아니고, 문과 출신이라고 해서 경영 쪽에만 머무는 것도 아니다. 이 직무를 맡는 순간, 누구든 개발과 경영 사이, 내부와 외부 사이에 서게 된다.
중요한 건 전공이 아니라 역할이다.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를 듣고, 일정과 예산, 제도와 계약 조건을 함께 놓고 판단해야 하는 역할.
그 자리에 서게 되면, 얇고 넓게라도 양쪽 대화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한쪽 말만 듣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게 된다.
그래서 이 ‘중간에 서는 감각’은
문과생의 강점이기 이전에, 사업관리와 과제기획 업무를 맡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기본 역량에 가깝다.
중간에 서 있다는 건 애매함이 아니다.
판단을 미루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판단이 가능해지도록 조건을 정리하는 자리다.
회사 안에서는 개발과 경영을 잇고, 회사 밖에서는 회사와 외부를 잇는다.
완벽한 답을 내리지는 못하더라도, 지금 상황을 왜곡 없이 바라보게 만드는 역할.
문과생으로 시작했지만,
이 일을 하면서 점점 더 확신하게 됐다.
이 자리는 특정 전공의 자리가 아니라, 이 역할을 맡은 사람이 책임져야 할 자리라는 걸.
그리고 그 중간의 자리에 오래 서 있을수록, 보이는 것들은 분명히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