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MBA에 진학하여 2024년 졸업을 하였다. MBA 과정 중간에 아이가 태어나 조리원에서 원격으로 수업을 듣기도 했다. 매주 토요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업을 들었다. 2년간 방학도 거의 없이 토요일은 수업을 들었고 시험기간엔 공부를 해야하니 와이프에게 정말 많은 신세도 졌다. 시간 뿐 아니라 비용도 많이 들었다.
서울 지역의 MBA는 2년 과정에 학비가 보통 5천만원 정도든다. 나는 운이 좋게 일정 금액은 회사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국가장학금을 이용하면 당장 현금은 나가진 않지만 갚아야할 큰 빚을 지고 있다. 직장인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봤을 수도 있는 MBA는 그만한 시간과 비용의 가치가 있는가?
MBA를 진학하게 된 계기는 사실 방황 때문이었다. 회사에 입사 후 회사에 만족하지 못했고 꽤 오랜 시간 방황했다. 채용 공고와 달리 내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직무가 아니었고 회사의 네임밸류나 커리어 측면에서의 전망은 그리 좋지 못했다. 하지만 복지나 급여, 워라밸, 직업 안정상 등이 크게 나쁘지 않았고 회사에 완전히 몰입하지 못하고 방황은 했지만 그렇다고 나가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만 계속 되었다.
그러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친척형이 '데이터'를 배워볼 것을 제안했다. 당시 빅데이터라는 개념이 화두가 되고 있었고 미국에선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라고 했다. 마침 회사에서도 데이터 관련 부서가 만들어지고 우리 팀에도 데이터를 활용한 비즈니스를 접할 기회가 생겼다. 그러다가 다른 이유로 파이썬을 접하게 되었는데 정말 재밌었다. 엑셀이나 분석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었고 진득히 앉아서 무언가를 분석하는 걸 좋아하는 나의 성향과도 잘 맞았다. 당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과 함께 AI, 빅데이터, 메타버스, 블록체인, IoT가 크게 대두되었고 관련 사업과 비즈니스가 막 생겨났다. 그러나 나는 다른 건 모르겠고 AI와 빅데이터가 앞으로 주류가 되어 기회가 많을 것이라 생각했고 데이터를 다루는 것도 좋아하니 관련 커리어를 만들어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내가 졸업한 학교에서 데이터 관련 MBA 모집공고를 보게 되었고 해당 과정은 100% 영어로 진행되었는데 내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글로벌이라는 컨셉과도 잘 맞았다. 내가 좋아하고 추구하는 '데이터' 그리고 '글로벌'이라는 역량을 동시에 만족시켜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방황하는 나를 지켜봐온 와이프가 적극적으로 이 과정의 MBA에 진학하는 것을 지지해주었다.
※ 당시 출산 전이었기에 지지 해주었지 출산 후 였다면 꿈도 꾸지도 못했을 것이다 ^^;;;
그렇게 대학원에 합격하고 2년간 정말 재밌게 다녔다. 코딩, 데이터베이스, 수학 등 예전엔 내가 싫어하던 과목조차 재밌었다. 마지막 졸업 프로젝트의 리더가 되기도 했고 성적 우수자로 졸업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래서 MBA가 연봉을 올려주거나 승진을 시켜주거나 이직을 통해 몸값을 올려 돈값을 하였나? 아직도 놀림을 당하지만 금전적으로 5천만원 상당의 보상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로 돌아가 다시 MBA에 진학할 것이냐고? 그렇다. 난 과거로 돌아가도 이 MBA를 택했을 것이다.
1. 원하는 분야로의 진입과 방황의 끝
MBA를 마친 후 커리어에 있어서 오랜 방황이 끝났다. 졸업 프로젝트로 AI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했는데 신세계였다. AI 분야로 어떻게든 발 담궈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회사에 AI 관련 부서가 있었다. 기술/연구부서 였지만 일단 인사팀과 해당 부서에 가고 싶다고 했다. 물론 보수적인 회사 특성과 인사이동 시기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 당했다.
하지만 사장님이 새로 오시고 조직개편을 하면서 희망부서 조사를 했다. 다시 한번 지원했다. 그동안 한번의 어필만 한 것은 아니고 데이터 관련 공모전에도 참가하고 Data Science/AI 관련 교육 수강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회사에 어필할 기회가 있으면 계속 나섰다. 한마디로 좀 나댄 것이다. 결국 AI 관련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부서로 이동하게 되었다. AI 기술개발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조직은 아니지만 AI 관련 업무에 어떻게든 발 담구겠다는 나의 목표는 달성하게 된 것이다.
또한 여러 산업과 회사에 종사하는 동료들을 보며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괜찮은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대한 감사와 만족도도 크게 증가했다. 이는 아이가 생기고 좀 더 보수적으로 변한 나의 상황 탓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MBA 이후 나의 방황은 현재로서 사라졌고 회사에 더 감사하고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2. 넓어진 시야와 퍼스널 브랜딩
경력직 채용을 잘하지 않고 보수적이며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도 많지 않은 회사 특성상 바깥 세상이나 회사들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몰랐다. MBA는 의도적으로 다양한 산업군의 학생들을 뽑는다. 자연스럽게 여러 산업계나 회사의 특성들을 알게 되었고 정말 나는 우물 속에서만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부러라도 이렇게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점점 시야가 굳어지고 바보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인간의 사고와 습성은 환경에 의해 형성된다고 생각하는데 MBA를 통해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편협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MBA 학위 자체가 실력이나 역량을 보장하진 않지만 하나의 퍼스널 브랜딩의 수단이 되었다. MBA를 했다는 그 자체가 타인들이 보기엔 노력하는 사람이란 인식을 심어주었다. MBA 학위자는 많고 돈만주면 할 수 있는거 아니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개인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좋게 봐주는 사람도 많았다. 외부 파트너나 고객사를 만날 때도 명함에 MBA를 기재해두면 한마디라도 더 할 수 있게 되었다. 상대방이 MBA를 한 분이거나 경영학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랬다. 겉치레를 꾸미는 데에만 치중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여전히 인간은 외적이고 단편적인 정보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3. 동료에게 배운 태도와 리더쉽
MBA에서 가장 값어치 있었던 것은 그 무엇보다도 동료들로부터의 배움이다. MBA에 오는 분들이라면 나름 회사에서 인정 받고 개인의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실력자'들이 많았다. 함께 팀 프로젝트나 과제를 수행하며 동료들의 일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었고 특히 임원/고직급 동료들로부터는 리더쉽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가장 크게 배웠던 동료가 있다. 함께 프로젝트를 하며 배웠던 그의 리더쉽 뿐 아니라 그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서 정말 감명깊게 배웠고 그의 태도와 마인드는 내 삶의 지침이 되었다. 그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것도 아닌데 졸업 후 개발자가 되기 위해 별도로 학위를 따고 개발자로 오랫동안 일했다. 보통 영어로 100% 진행하는 MBA라면 어느 정도 영어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 지원하는데 이 동료는 영어도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 MBA를 가야겠다는 생각에 예상 질문 리스트를 뽑고 영어로 스크립트를 달달 외웠다고 한다. 그리고 외운 스크립트를 조합하여 면접에 참가했고 결국 합격했다. 그 뿐 아니라 그는 졸업 후 외국으로 박사과정을 가야겠다고 다짐한다. 해당 박사과정을 위해서는 현지인의 추천이 필요했고 관련 전공자여야 했다. 보통 이런 허들이 있으면 지레 포기하고 마는데 그는 방법을 찾았다. MBA엔 외국인 교수님들이 계셨는데 관련 네트워크가 있는지 물어가며 도움을 구했고 결국 현지에 있는 교수님의 추천장을 받아냈다. 친한 사이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또한 관련 전공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지원한 여러 학교로부터 거절 당했는데 이 또한 불굴의 의지로 방법을 찾아 결국 받아준 학교를 찾아내었다.
이 동료로부터 배운 것은 장애나 한계에 굴하지 않는 마인드와 태도이다. 나는 안될 이유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지레 포기하곤 했는데 이 동료로부터 앞으로 내가 원하는 바가 있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면 된다는 태도를 배웠다. 내가 정말 보수적인 이 회사에서 기술자도 아닌데 AI 관련 부서로 보내달라고 하고 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동료로부터 배운 '불굴의 정신'이라는 태도 덕분이다.
아직 5천만원의 학비를 회수하진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MBA로부터 5천만원의 이상의 것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기회의 확장, 넓어진 시야 그리고 동료들로부터 배운 태도와 리더쉽이다. 지금 당장 금전적인 보상을 얻진 못했지만 2년간의 MBA 과정은 내가 앞으로 살아갈 모습을 완전히 바꾸었다고 자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