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리업 장단 Feb 06. 2019

15살 우리 딸은
'참 좋은 사람' 입니다

딸의 성장일기

하루하루 쑥쑥 자라는 딸의 모습을 지켜보며, 

오늘 내 맘 속에 자리잡고 있는 기억이 사라지는 게 아쉬워 엄마 눈에 비친 15살 딸아이의 모습을 적어본다.


1. 우리 딸은 참 좋은 사람입니다

고백하건대, 난 욕심도 많고, 조급하고, 이기적인 아이였다. 학교 다닐 적에는 1등을 놓치면 큰 일 날 것 같은 조바심을 달고 살았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부잣집 모범생 예서와 달리 부모님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었던 나는 스스로에 대한 성장욕구가 나의 성장을 이끌어 주었다. 선생님들은 그런 나의 승부욕을 자극해 1등 자리를 유지하도록 부추기셨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엉덩이 붙이고 공부한 덕분에 좋은 대학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증까지 얻게 되었으니 나름 성공적인 인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변호사가 되어 세상에 나와보니, 진짜 세상이 보였다. 리얼월드 속 사람들은 (학교 성적과는 무관하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제 역할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성적과 시험의 눈으로 세상을 보던 나는 다시 출발선에 서게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같은 현실세계에 대한 인식이 나에게 3년여의 변호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창업을 선택하도록 했다.

오이씨랩을 창업한 후 수많은 청소년, 청년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 중 단단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나답게 살아가는 친구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독립된 생활인으로 살아갈 준비를 하는 10대 시절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고, '스스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찾아 다양한 경험을 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딸에게 항상 강조한다. '스스로 행복할 줄 아는 사람'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면 좋겠다고. 그 덕에 우리 딸은 10대 시절을 재미나게 보내며 성장하고 있다. 우리 집은 '예지네 방과 후 교실'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딸아이 친구들에게 아지트 역할을 하고 있다. 항상 친구들에 둘러싸여 지내는 딸은 친구들의 상황을 세심하게 살필 줄 아는 사람이다. 

어느 날, 밥상머리에서 나누었던 딸아이와의 대화 한 토막을 소개해 본다.

딸 : 엄마, 친구 OOO네 집이 어려워져서 체험학습비를 못 낸대.
맘 : 우리가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 엄마가 내주면 될까?
딸 : 그러면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으니까, 과천시청이랑, 정부기관 사이트 뒤져서 OOO네가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맘 : 그래!(속으로) 엄마에게 놀아달라 보채던 애가 어느새 이렇게 컸을까...


딸아이의 섬세한 마음 씀씀이는 엄마인 내게도 푸근한 감동을 안겨주곤 한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어느 날, 나는 딸에게 건넸다
맘: “몇 시야? 오늘 일찍 일어났네?”
딸: “ 8시 20 분야”
맘: “헉, 엄마 왜 안 깨웠어?”
딸: “ 피곤한 것 같아서 일부러 안 깨웠어. 요즘 일도 많고, 저녁 약속도 많았잖아”
맘: “아침밥은?”
딸: “학교 가면서 먹으려고 컵 피자 돌리고 있어”
맘: 울컥...

이사하느라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정신없이 바빴던 날, 이삿짐을 얼추 추슬렀지만 저녁식사를 준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저녁은 라면으로 해결하기로 하고, 딸이 마트에 라면을 사러 갔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바빴던 엄마를 지켜봤던 딸은 엄마가 좋아하는 맥주를 한 병 사주고 싶었단다. 마트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맥주를 골라 계산대에 올려놨지만..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구입 실패. 저간의 사정을 전해 듣고 보니, 파김치가 된 엄마에게 나름의 위로를 전하고 싶었던 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행복이 밀려왔다. 


딸은 이렇게 항상 타인의 마음을 살피고, 그 마음을 보살필 줄 아는 사람이다. 

내 딸이지만, 딸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혼자 중얼거리곤 한다. '우리 딸은 참 좋은 사람'이라고. 


2. 스스로 해내는 아이

딸은 엄마가 일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어렸을 떼부터 엄마가 자신을 챙겨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딸은 학교 준비물을 스스로 챙기고, 집안 생필품까지 챙기곤 했다. 

엄마가 싸주는 소풍 도시락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그 시작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딸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자신의 도시락을 스스로 준비했다. 평소에는 늦잠이 일상이라 지각 시간에 임박해 허둥대며 학교로 향하던 딸은 이상하게도 소풍날이면 새벽부터 일어나 식재료를 다듬고 도시락을 준비했다. 나는 앞으로도 이제껏처럼 딸아이가 스스로 해내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응원할 것이다. 


3. 스스로 배우는 아이

딸은 다양한 취미활동을 즐기며 성장하고 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포켓몬 카드를 어마어마하게 수집하며 포켓몬 사전을 끼고 사는 어린이였다. 

초등학생이 된 후에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king of prism' 덕후로 생활하며 엄청난 열정과 에너지를 쏟았다.  딸은 주중, 주말 가릴 것 없이 틈만 나면 동대문, 잠실, 반포 등 킹프리 응원 상영관을 돌아다니고, 유튜브 영상을 무한 반복하며 덕질의 세계에 탐닉했다. 킹프리 덕질은 자연스럽게 일본 문화와 일본어를 친숙하게 받아들이게 했고, 모국어를 익히는 것 마냥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익히게 되었다. 작년 겨울 도쿄 가족여행 때는 가족들이 숙소와 아침식사만 공유하며, 저마다의 관심사에 따라( 엄마는 창업, 아빠는 힐링, 딸은 애니메이션) 각자의 일정을 짜서 돌아다니는 따로, 또 같이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애니 덕질과 함께 꾸준히 진화하고 있는 딸의 취미는 '만들기'다. 딸은 유튜브를 통해 배워 쿠키와 케이크, 강아지 간식 등을 뚝딱, 뚝딱 만들어낸다. 무엇이든 쉽게 만들어내니, 딸은 핼러윈이나 친구 생일 때도 직접 만든 쿠키를 선물한다. 재료 준비에 초벌구이, 재벌구이까지 1박 2일로도 이어지는 여정을 끈질기게 해내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노라면, 무엇이 이 아이를 그리도 집중하게 만드나 궁금해지기도 한다. 

요즘은 쿠키와 케이크를 넘어서 공예품을 향해 진화하고 있다. 딸은 동대문에 가서 재료를 구입해 와서 드림캐처를 만들더니, 요즘에는 레진 공예로 넘어갔다. 이번 겨울 방학 때는 자신이 만든 레진 공예제품을 트위터를 통해 모르는 사람에게 팔아보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기능적 취미 외에 중학생이 된 딸에게 새롭게 찾아온 키워드는 '여성'이다. 딸은 '여성'이라는 이름 앞에 부쳐지는 편견과 차별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함께 인천에서 열리는 페미니즘 행사에 찾아다니는가 하면, 책과 미디어를 통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고 있다. 지난해 여름, 엄마는 메이커페어가 열리는 을지로 공구상가를 향하던 날, 딸은 페미니즘 행사가 열리는 시청 앞 광장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4. 함께 하고 싶은 아이

맘: "한나는 네게 병아리를 사주기만 하고 왜 직접 안 키우는 거야?"

딸: "한나는 학교 끝나고 우리 집에 들러 병아리랑 놀면 되거든. 한나가 산 병아리를 내가 키우고, 둘이 함께 놀고. 일종의 공동창업이야!"

어렸을 때부터 준비물을 스스로 챙기고, 마트에서 물건을 구입하던 딸은 또래 친구들에 비해 자립심도, 셈도 빠른 편이다. 자원봉사 점수를 챙기기 위해 시작했던 아름다운가게 봉사는 봉사시간 140시간을 넘겨가며 계속되고 있다. 시작은 봉사점수를 챙기는 목적이었지만, 아름다운가게 자원활동은 딸아이가 세상을 배우며 성장하는 중요한 성장판으로 작용하고 있다. 손재주가 좋은 딸아이는 재활용 소재를 활용한 만들기 클래스 운영이 재밌다고 한다. 일요일이면 12시까지 잠자는 아이가 아름다운가게 봉사가 있는 날이면 8시부터 일어나 준비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딸아이가 '봉사'라는 이름의 활동을 진정으로 '즐긴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5. 창업가 엄마가 딸의 성장을 응원하는 방법

창업가라는 직업은 어렵고 힘든 일이 가득하다. 하지만, 창업가라는 업무환경은 스스로가 삶의 형태와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과 육아를 함께 챙길 수 있는 장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 나는 그런 창업가의 장점을 활용해 초등학생인 딸아이의 아침식사와 저녁식사를 직접 챙기려 노력했다. 식사시간은 엄마와 딸에게 생존을 위한 '먹는 행위'를 넘어서 서로 간에 교감과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딸은 엄마 회사를 놀이터이자 학교 삼아 성장했고, 엄마 회사 동료들을 언니, 오빠 삼아 성장했고, 엄마 회사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갔다. 업의 종류와 특성에 따라 얼마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일터를 함께 경험하며 교감하고, 자라는 것이 아이의 성장판을 건강하게 자극한다고 생각한다. 창업가로 살아가는 엄마들에게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서적 금수저를 아시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