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의 실패와 범죄 사이
발란이 파산했다.
2022년 기업가치 3,200억 원. 누적 투자 885억 원.
한때 '마트발'로 불리며 온라인 명품 시장을 이끌던 플랫폼이,
판매자 130억 원을 정산하지 못한 채 법원의 파산 선고를 받았다.
최형록 대표는 지금 20건이 넘는 고소의 피고소인이 되었다.
사기, 횡령, 배임.
그런데 잠깐 — 이게 범죄일까, 실패일까.
티메프의 구영배는
나스닥 상장을 위해 계열사에 정산 대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발란은 다르다.
예수금을 운영자금처럼 썼다는 정황은 있지만,
정산 보류 엿새 만에 회생을 신청했다.
도망친 게 아니라, 버티다 쓰러진 것에 가깝다.
문제는 그 구분을 지금 우리나라의 법, 제도, 시장이 잘 못 한다는 데 있다.
대법원도 "손해가 발생했다는 결과만으로" 배임죄를 물을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배임 혐의의 불기소율은 70%를 넘고, 기소된 사건의 무죄율도 일반 범죄의 두 배에 달한다. 그 경계가 이렇게 흐릿한데도, 살리려다 실패한 사람에게 고의로 빼돌린 사람 못지않은 고소·고발장이 날아든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고객 결제금과 판매자 정산금을 플랫폼이 운영자금처럼 굴릴 수 있는 구조 — 이건 발란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살아있는 수많은 플랫폼이 같은 구조 위에 서 있다. 제도가 방치한 사이, 위험은 고스란히 판매자와 창업가에게 남겨졌다.
다행히, 티메프 사태로
전자금융거래법이 개정되어 PG사(전자지급결제대행업자)의 정산금(미정산자금)에 대한 100% 분리 관리가 단계적으로 의무화되었다. 개정된 법은 2026년 12월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발란의 경우는 25년 3월 25일 지급불능사태가 발생한 터라 법 개정 전에 발생한 사안에 해당하니 전금법 위반으로 형사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도전하라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런데 넘어진 다음에야 패가망신의 처참함을 온몸으로 겪게 된다.
실패한 창업가에게 필요한 건 재기 강연 무대가 아니다.
선의의 경영 판단을 범죄로 만들지 않는 제도적 보호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