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첫 멕시코 콜라 시음기
미국에서 멕시코 공항에 도착하고, 보이는 것보다 내 뇌의 회로를 건드렸던 건 다름 아닌 바로 냄새였다.
냄새를 맡고 고개를 돌려 본 곳은 프렌차이즈 멕시칸 음식점이었지만 뭔가 다른 향기였다.
이곳에만 존재하는 냄새.
과연 뭘까?
내가 비싸게 주고 먹었던 한국에서 만든 타코의 향과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찌릿한 향이었는데
한국에서는 절대 나올 수가 없는 향이었다.
멕시코라는 나라 자체가, 고수 (실란트로), 라임, 시나몬, 강황 (터머릭) 등 향신료를 자주 쓰는 나라이기도 하고
몰레라는 음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매우 많은 가짓수의 칠리(말린고추)와 카카오, 여러 향신료를
섞은 음식이 전통음식으로 즐겨 먹기 때문에 그 향 역시 엄청나게 복잡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인지
내 눈이 번쩍였고, 동그랗게 커졌다.
두부는 내게 이런 말을 자주 뱉곤 했다.
"오빠는 음식 이야기만 하면 눈이 반짝반짝해"
나는 음식 말고는 관심 있는 게 딱히 없기 때문에 줄곧 여행지에선
먹고 싶은 음식 하나를 정해놓거나, 잠깐이라도 주방일을 해볼 생각 말고는 별생각이 없었다.
멕시코에서도 마찬가지였었는데
이곳에서는 왠지 확실한 목적지는 정해 놔야 할 거 같았다.
내가 점찍어 놓은 목적지는 '타코'였다.
"내 언젠간 타코를 꼭 배우리라!"
불과 5년 전만 해도 나는 맨땅에 헤딩하듯 같이 가는 행인의 관심을 끌며
그렇게 만든 인연으로 가정집에서 음식을 배우거나,
해당 나라 주변 레스토랑을 배회하면서
떠돌이처럼 "음식을 배워보고 싶어요!!" 라고 온몸으로 티 내면서 배웠었다.
그런 똘끼 때문인지 인도에선 커리를 배웠고, 몽골에선 호텔에서 몽골 음식을 배울 수 있었다.
"이렇게 굉장히 어렵게 배우던 음식을 쉽게 배울 수 있다고?"
나의 아내인 두부 덕의 에어비앤비라는 시스템을 처음 알고, 나는 굉장히 놀랬다.
에어비앤비 호스트 소개 칸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하보 : 요리와 맛있는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왠지 그 호스트와 이야기하면 멕시코 음식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멕시코 공항에 도착하고 택시로 숙소 장소에 도착했다.
숙소 앞에 도착하고 어떻게 들어가는지 휴대전화를 키려는 순간
'하보'라는 호스트가 날 맞이했는데 나의 인생 첫 멕시코 친구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호기심을 못 이기고 연이어 속사포로 말을 뱉어냈다.
고맙게도 그 친구는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었고,
심지어 내가 직업이 요리사여서 멕시코 음식을 체험하고 배우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
자기의 사촌이 셰프인데 흔쾌히 물어봐 주겠다며 우리를 반짝이는 눈으로 환대했었다.
하보라는 그 청년은 덩치가 있었고,
뭔가 항상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바빠 보였는데 굉장히 친절했다.
"여기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뭐야?"
나는 하보가 집에 가려길래 이 기회를 놓칠세라 허겁지겁 물어봤고,
그는 칠라킬레스라는 음식을 추천해 주었다.
"너 내일 아침에 칠라킬레스(chilaquiles) 꼭 먹어봐. 정말 맛있어" , "여기 전통음식이야."
내일을 기약하며 시차 적응을 무시한 채 곤히 잠이 들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타코를 배우고 싶기 때문에 멕시코를 신혼여행지에 넣었었다.
잠이 깨자마자 한국 저편 넘어 반대편에 도착했다는 사실부터 내 가슴을 뛰게 했고
매일 아침 내 눈을 뜨게 하는 건 '설렘'이란 알람이었다.
"어떤 거부터 하지?"
문득 어제저녁 하보가 추천해 준 가게가 가서 칠라킬레스(chilaquiles)를 먹고 싶어졌다.
그렇게 멕시코에 와서 처음먹은 음식은 하보의 칠라킬레스가 되었다.
이 음식은 삶아 찢어놓은 닭고기와 나초(토르티야를 4~5등분하여 기름에 튀긴 것),
어떤 맛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 *초록색 살사 소스 가 *Salsa de Verde (초록 고추에 초록 토마토, 양파, 마늘 등을 갈아 만든 초록색 소스)
곁들여진 음식이었다. 맵지 않은 청양고추지만 청양의 향은 남아있는 약간은 시고 달짝지근, 짭짤한 소스에
나초를 푹 담가 꺼내 닭고기를 얹어 먹으니 생전 처음 느껴보는 향과 맛이 느껴져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너무너무 맛있었다.
그리고 과테말라 홈스테이에 머물며 집주인인 로사에게 들은 내용은
중남미 지역의 살사 소스는 치킨 육수 (Pollo agua) 도 넣는다고 했다.
샐러드 소스에 치킨 육수를 넣어 만든다니.. 뭔가가 내 머리를 띵하니 내리쳤다.
"아직 나는 멀었구나.." "10여년 동안 음식을 배워도 한참을 더 배워야 하구나"
순간 겸손해졌다.
프레시한 소스에 치킨 소스를 넣어 갈아 Frio(차갑게) 식혀 먹는다고 하는데
이 때문인지 멕시코의 살사를 먹을 때는 뭔가 항상 기름기가 돌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소스에서 깊은 맛이 나는 이유도 닭기름의 감칠맛 때문인 거 같았다.
소스와 곁들이는 멕시코 음식도 살짝 느끼했다.
그런 음식을 먹다 급 콜라가 당겨 콜라를 주문했다.
(참고로 나는 한국에선 1년에 두 번 정도 콜라 아니 탄산음료를 마신다)
혀에 감기는 기름기가 거슬렸는지 급히 마셨던 콜라 한 모금은 정말 깔끔 그 자체였고
탄산의 세기 또한 내 목 넘김의 안성맞춤이었다.
연이어 멕시코가 라임 종주국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반 잘린 라임즙을 콜라캔 안에 넣고 마셨는데
진짜 시고 단 맛은 날 흥분시켰다
"이게 바로 콜라구나."
그 후로 나는 멕시코 음식에는 무조건 콜라를 곁들이게 되었다.
풀리지 않는 의문에 나는 하보에게 왜 콜라가 맛있는지 물어봤다.
하보는 자신감에 차 있는 눈빛으로 멕시코 콜라에 대한 것들을
내게 자초지종 설명했다.
멕시코 콜라가 맛있는 이유는 바로 사탕수수 때문이라고 한다.
Sugar cane ( 사탕수수 ) 가 콜라의 주원료인데
그 사탕수수는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것이라는 것.
어쩐지 어떤 나라에서 마셨던 코카콜라(Coke) 보다 진짜 뛰어난 끝맛을 가졌었다.
하보는 내게 네가 만약 한국에서 타코 집을 창업하면
콜라를 직접 유통해 준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자부심을 가질 만했다.
이 이야기만 들어도
멕시코 사람들이 콜라에 대해 가지는 애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기름진 맛을 싹 씻어줄 수 있는,
그렇게 톡 쏘는 탄산의 달콤하고 깔끔 한맛을 가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콜라야말로
멕시코 음식과의 환상의 짝꿍, 감히 최고의 페어링이 아닐지 싶다.
음식의 맛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켜줄 수 있는 콜라가
멕시코 음식에 꼭 필요한 음료인 것처럼,
음식을 한층 더 맛있게 만들어 주는 한국의 술인 막걸리가
전에 꼭 필요한 술인 것처럼,
갑자기 나만의 마리아주,
페어링을 만들고 싶어졌다.
콜라가 뭐라고 내게 음식과 음료의 조합, 그 종합적인 요소를 질문하고 하게 했다.
콜라의 탄산은 내 입을 헤집음과 동시에 내 머릿속을 흔들어 놓았고,
나는 곰곰이 한식과 콜라의 조합에 대해 상상해 보았다.
어쩌면 실현할 수 있는 수도 있다는 사실에,
환상의 궁합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한식과 콜라의 페어링이 세계를 제패할 수도 있다는 그런 발칙한 상상에
잠 못 이룬
톡 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