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오늘'이란 하루에도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는 사소하고 중차대한 일들이 넘쳐난다. 출근길에 자가용을 탈지 대중교통을 탈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대중교통을 선택했다면, 전철, 버스, 택시 중 좋은 것을 선택하기도 한다. 아니면 매일 똑같은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점심시간 메뉴를 고민하고, 오늘의 점심으로 선택된 음식이 우리 몸속으로 흡수된다.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가지각색인 모습인 건 어쩌면 당연하다. 똑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각자 태생부터 주어진 조건의 차이와 태어난 이후 한 인간이 선택하는 사소한 일들이 나비효과를 일으키며 인생의 모습이 다양해진다. 각 개인의 인생은 그들의 선택으로 유일무이한 하나의 예술품이 된다.
인생의 모습이 완성되는 시기는 언제일까? 죽음 후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음 후에도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답인지는 살아있는 동안 선택하며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
20살 이후 인생의 그림을 그리면서 나도 선택을 해나갔다. 그 선택들은 결과적으로 현재의 나라는 사람을 만든 재료로 모주 <정답>이 됐다. 매일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를 응원하기 위해 어린 시절 내 선택에 대한 기록을 공유하려고 한다.
영화, 위대한 유산 그리고...
고무나무 꽃(꽃말:변함없는 사랑, 영원한 행복)
원작, 찰스 디카스의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로 만들면서 시대가 달라졌고 내용도 일부 각색됐다. 찰스 디킨스는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하급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빚을 지고 감옥에 간 아버지 때문에 어려서부터 공장 노동을 하기도 했고 어려운 유년을 보냈다. 영화 <찰스 디킨스의 비밀서재>를 보면 작가의 불우한 어린 시절이 잘 드러난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올리버 트위스트>에도 하층민 인생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데 작가의 어린 시절과 닮아있는 부분이 있다.
영화, 위대한 유산이 방영된 건 1998년도이다. 개봉당시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영화 속 주인공 핍은 위대한 유산을 받았다. 1998년, 20살에 나도 핍처럼 위대한 유산을 받았다.
핍은 러스티그에게 유산을 받았다. 나와 차이는 나에게는 여러 명의 러스티그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핍에게 매형 조가 있었다면 나에게 조와 같은 사람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작은언니다. 조와 같은 사람도 한 명이라고 말할 수 없다. 재밌게도 나에겐 미스 해비셤도 있었고 핍을 때렸던 누나 같은 존재도 있었다. 그리고 에스텔라도 있었다. 어떤 때는 연인으로, 어떤 때는 친구로, 어떤 때는 동료로, 한 명의 에스텔라가 아니라 각기 다른 에스텔라가 있었다.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한 편의 영화에 자신의 인생을 대입해 보면 그 흐름이 비슷한 경우가 종종 있다. 노래도 그렇다. 한 곡의 노래에 삶 전편에 걸친 스토리가 있기도 하다. 전편이 아니더라도 순간으로 생각하면 노래마다 우리들의 찰나가 가사 속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행가 노래 가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고 하지 않던가?
불혹을 넘어 지천명으로 가는 길에 매 순간 '감사'라는 띄어쓰기가 있다. 지천명에서 조금 더 현명해진다면 이순으로 가는 길에는 '감사'가 바탕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에 힘쓰는 이순을 넘어가고 종심을 맞이했을 때는 말하는 것에 부끄럽지 않지 않을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잘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된다. 지금은 불혹을 넘어섰으니 얼굴에 책임을 지려면 정성을 다해야 한다.
40은 미혹되지 않는다 하여 불혹,
50은 하늘의 명을 알았으니 지천명,
60은 남의 말을 들으니 이순,
70은 마음속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해도 법도에 넘어서지 않으니 종심,
20여 년 전 일들을 복기하다 보면 팩트체크가 종종 필요해진다. 가족들에게 이런저런 일을 묻고 기억을 떠올린다. 일종의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기억에는 왜곡이 있어서 팩트체크에 한계가 있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최대한 사실에 근거해서 기록하려고 노력했다. 가족들과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많이 대화하며 웃을 수 있다는 것은 글쓰기를 하면서 받는 귀중한 선물이다.
글을 시작하면서 누구나(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함께 써보자고 권하고 싶다. 역사기록도 잘, 잘못을 판단하지 않고 사실에 근거해서 쓰는 실록이 가장 가치 있다고 하지 않던가? 나의 역사를 기록하는 건 나에게 아주 큰 가치가 있다. 지금 내가 이어가는 기록은 나에게 위대한 유산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삶이 곧 여행이다'라고 기록한 건 4년 전 <새벽을 담은, 새벽을 닮은 그녀들>과 처음 책을 내려고 할 때 썼던 나의 주제글이었다. 그때 그 글은 아쉽게도 판매를 중지했다. 글이 수장되었기 때문에 지금 <셸 위 댄스>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산다는 게 여행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수많은 노래는 우리들 인생이 빚어낸 가락이다. 흥에 겨운 몸짓, 기쁜 환호, 고통에 절규하고, 흐느끼는 몸짓, 하나하나의 움직임은 춤이 된다. 브런치에 쓰는 이 글이 나의 해우소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하고,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브런치가 소통의 장소가 되고, 내 글이 누군가에게 공감이 되고 읽는 사람에게 유익이 되길 바란다.
나의 20살의 선택의 기록을 읽는 당신에게....
셸 위 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