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계, 그리고 전세자금 대출

by 장하늘

첫 계, 그리고 전세자금 대출

글라리오사 (꽃말: 광영, 영광)




<500만 원!!!> 처음에 들어온 말은 그것 하나였다. 500만 원이면 월세 방을 구할 수 있는 돈이었다. 그의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집을 알아보러 다닐 때 알아둔 일이었다. 부동산에 문의했을 때 월세 집을 구하더라도 보증금이 최소 3백만 원에서 5백만 원은 필요하다고 했다. 수중에 돈 한 푼도 없었던 나는 그걸 남자친구에게 물어봤었다. 그런데 그도 가진 돈이 전혀 없다고 했었다.


배는 불러오고 출산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를 낳기 위해 함께 있을 장소로 선택된 것이 그의 집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의 집에서 3주 동안 있으면서 <서서히 질식>되는 것을 경험했다. 그곳에서 나는 먹는 것, 말 한마다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공기 속에 만연하게 깔려있는 '불편'이란 입자들이 숨 쉬기 힘들게 만들었다. 질식할 것 같았던 공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된 건 시간이 한참 지나서였다. 어릴 때부터 막내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발달된 눈치로 몸이 먼저 알았을 수 있다. 인간의 몸을 머물게 하는 집, 공간이 얼마나 큰 가치인지 절실하게 느낀 때였다.


500만 원의 희망을 찾아 큰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500만 원짜리 계 두 개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큰언니가 이야기해 주었다. 보통 계는 확실한 사람들끼리만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한 번도 계에 참여한 사람이 아니라서 큰언니가 알아봐 준다고 했다. 큰언니에게 내가 첫 계를 받을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큰언니가 연락을 주었다. 중간에 받는 경우나 끝에 받는 건 괜찮지만 첫 계를 받으려면 큰언니의 보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큰언니가 나의 형편을 고려해서 보증을 서주기로 했다. 곧 첫 계로 500만 원이 생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곗돈을 받는 날짜를 확인하고 바로 그 길로 부동산을 찾아갔다. 부동산 사장님이 월세 방을 이곳저곳 보여주셨다. 월세는 최소 30만 원이 넘었다. 계산기를 돌려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의 소득과 한 달 지출이 맞지 않았다. 지출이 많아서 계속 집을 더 알아봤다. 괜찮은 집을 알아보려고 하면 월세가 터무니없이 올라가곤 했다. 그러다가 <전세, 전세자금 대출>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전셋집은 매달 나가는 돈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부동산 사장님이 전세자금 대출을 못 받을 상황인지 물어봐서 그게 무엇인지 설명 듣게 되었다. 전세는 매달 나가는 월세대금이 없는 대신 더 많은 보증금이 필요했다.


부동산 사장님께 설명을 듣고 그날은 집으로 돌아왔다. 인터넷을 조회하고 더 자세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무주택자는 전세보증금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대출한도는 보증금의 70%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500만 원이 있으니 전세보증금 1500만 원의 전셋집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다음날 부동산에 미리 전화를 하고 전셋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임신으로 몸이 무거웠지만 불평을 할 처지가 못 됐다. 앞으로도 그의 방에 있을 생각을 하면 그만한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졌다.

아이를 낳고 키우려면 엄마네 집 근처가 좋을 것 같아서 동네만 알아봤다. 알아볼수록 부천은 집값이 꽤 비싼 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도 장소를 벗어나는 건 고려 대상에서 제외했다. 아이를 낳고 직장 생활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엄마의 손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 같았다. 돈에 맞춘 집 상태를 보면서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는 건 쉽지 않겠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살고 싶은 집이 아니라 <마음 편안하게 숨 쉬고 살 수만 있는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돈에 맞는 집을 구하기 위해 며칠 동안 발품을 팔아야 했다. 많은 집을 봤는데 그나마 딱 한집이 화장실이 포함된 집이었다. 다세대 단칸방에 쪽방이었지만 화장실을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집이었다. 제일 중요한 건 그 집은 전세자금 대출도 가능한 집이었다. 드디어 살 수 있는 집을 찾았다.

집을 정하고 계약금은 100만 원만 넣고 계약을 진행했다. 계약서를 가지고 은행으로 가서 전세자금 대출 신청서를 접수했다. 잔금 일에 맞춰서 이사를 나올 수 있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오롯이 혼자 다녔다. 당시 작은언니가 둘째를 낳았는데 아기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가족들 누구도 나와 함께해 줄 수 없는 상황이라서 혼자 다녔다. 그의 집에 한 달반 정도 있었는데 그 시간이 마치 몇 년을 보낸 듯 길게 느껴졌다. 짧은 기간 동안 느낀 고단함 치고는 지리하고 무거운 느낌이었다. 그곳을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모든 것이 괜찮은 기분이었다.


첫 계가 시작됐고 500만 원을 받는 첫 달에 25만 원을 제외하고 475만 원이 나왔다. 그 돈 중 450만 원이 1500만 원의 30%였다. 나머지는 잔금 일에 대출금이 은행에서 나왔다. 얼마의 선취수수료 등을 공제하고 대출이 나와서 돈이 조금 부족했다. 다행히 마지막 달 회사를 다닌 월급은 엄마에게 안 드리고 내가 가지고 있었다. 부족한 돈을 채우면서 잔금을 치렀다. 그리고 부동산 수수료 등 별도로 나가는 돈을 지불했다. 이런저런 돈이 우습게 추가되는 걸 경험했다. 그래도 가지고 있던 돈으로 해결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드디어 그의 방에서 나의 전셋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와 함께 아이를 낳고 키울 장소가 마련되었다. 그와 나의 이사는 이사 차도 없이 봇짐을 싸서 옮기는 것으로 간단하게 진행됐다. 내 보금자리라서 단칸방이었지만 너무 좋았다. 나의 첫 집은 다세대 2층 집이었다. 원래 주인세대가 사용하던 방에 끝 방 하나를 문을 막고 세를 준 방이었다. 그래서 단칸방인데 문이 두 개였다. 주인세대와 연결된 문은 살림을 들여놓으면서 장롱으로 막아야 했다. 부엌과 화장실은 건물이 최초 지어질 때 지어놓은 게 아니었다.


다행히 내가 이사한 건 겨울이 지난, 2001년 4월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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