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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하늘 Feb 18. 2024

10)  보이스 피싱 후 다시 가족

빚과 가족의 상관관계

10) 보이스 피싱 후 다시 가족


예측불허의 인생을 흔히 롤러코스터에 비유하곤 한다. 당신의 인생은 어떠한가? 평온하고 잔잔하게 일렁이고 심심하다 싶을 만큼 안전한 일상인가? 만약 그렇다면 어쩌면 당신은 인간이 아니라 AI일수도 있다. 물론 과장이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사는 사람들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낼지도 모른다. 고쳐 말한다. 존경한다. 축하하고, 응원한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고 인생은 늘 예상을 벗어나는 사건사고의 연속이다. 인간은 삶을 살면서 희로애락 각기 다른 감정들이 휘몰아치고 일렁이고 머물렀다가 격변한다. 그러니 인생은 상대적인 롤러코스터가 아니라 개인에게 절대적인 롤러코스터의 삶이 된다.


롤러코스터를 처음 탄 건 중학생 때 놀이공원으로 소풍을 갔을 때다. 당시 놀이기구의 최고봉은 단연 롤러코스터였다. 소풍시즌이라서 많은 학교에서 놀이공원으로 소풍을 온 것인지 평일인데도 긴 줄을 서며 한참 기다린 후 그 실체를 영접했다. 열차에 타니 안전요원들이 돌아다니며 안전띠를 확실히 했는지 확인한다. 서서히 열차가 출발한다. 어느새 평지를 지나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경사로 인해 몸이 뒤로 기울어진다. 철커덩 철커덩 차가운 기계소리가 좌석에 앉아도 선명하게 들린다. 꼭대기를 향해 가면서 속도는 줄어들고 철커덩 소리는 더 또렷하게 들린다. 정점에 닿는 순간 잠깐의 멈춤. 그리고 욱~  떨어진다. 심장은 아직 허공 언저리에 있는지 급격한 하강에 심장이 제자리를 찾듯이 헤매다가 쿵! 내려앉는다. 안전벨트를 했으니 망정이지 관성의 법칙으로 몸이 부양하듯 붕~뜬다. 어깨허리를 고정시켜 주는 안전띠로 몸이 기계에서 이탈되지 않고 열차와 같이 추락한다. 마냥 밑으로만 떨어지는 것 같던 열차는 방향을 바꾸고 열차에 의탁한 몸이 흔들리며 휘청거린다. 열차는 다시 움직이며 두 번째 정점으로 길을 나선다. 더 높은 곳을 향하며 철커덩 소리를 낸다. 심장이 철렁이며 어지럽고 격동적인 움직임이 순식간에 끝난다. 이후 잔 물결을 치듯 출렁거리고 이내 종착지에 다다른다.


나의 인생도 여타 인생과 같이 오르막 길이 있고 내리막길도 있다. 올라갈 때 짜릿함이 있었고 내리막길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빠른 속도와 방향전환으로 인해 휘청거리기도 했다. 앞으로의 인생도 그럴 수 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에 롤러코스터를 경험한다. 40대에 얻은 귀중한 경험으로 스펙터클 하게 움직이는 롤러코스터 같은 시기는 놀이기구를 타는 시간만큼 짧은 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사건사고들은 임팩트가 강하다. 하여 한 인간에게 주홍글씨로 새겨진다. 짧은 순간이 마치 긴 여정 같다는 착각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분명히 롤러코스터 같은 스릴이 느껴지는 일들은 정말이지 '순간'에 불과하다.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은 평온하다.


나는 나를 죽이고 다시 태어났다. 새로운 인생길을 내며 나아가겠다고 결심했다. 이전에 과오를 반복할 순 없다. 과거의 실수는 괜찮다. 그러나 어제의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된다. 나의 지난 삶은 어떤 것이 잘못되었을까? 무엇으로 인해 지금의 결과를 낳은 것일까?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건 과거의 내가 잘못한 것이다. 열심히 살았다거나 최선을 다했다고 잘못이 없는 게 아니다. 분명히 잘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일과 사람, 연애에 대한 생각이 재배치되었다. 결혼은 왜 하는가? 연애는 왜 하는가? 일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돈을 벌고 쓸 것인가?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이어갈 것인가?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나를 지키는 것을 나는 최우선하는가?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걱정하는 건 이타적인 것인가 멍청한 것인가?


결혼은 연애와 다르다. 결혼은 완벽하게 새롭게 시작되는 새판, 세배로 복잡하게 얽힌 뉴 게임이다. 결혼, 혼인신고로 생판 남이 제1가족이 된다. 적지 않은 세월 동안 결이 다르게 살아온 완벽한 타인이 사회적 약속으로 가족이 되는 것이다. 단 두 사람만 가족이 되는 게 아니다. 가족과 가족이 결합되고, 새로운 가족이 탄생한다. 남녀 각각의 개체가 피로 연결된 결과물로 자식을 만들기도 한다. 결혼이 종착지라는 건 동화 속에만 존재하는 판타지다. 결혼은 수많은 순간들이 현자타임이다.


연애도 쉽지만은 않지만 그나마 즐겁고 좋았다. 그러나 결혼은 고되고 아팠다. 이성과의 만남, 사랑의 달콤한 결실은 결혼으로, 가족을 만들고 절대적인 내편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절대적인 내편이길 바란 남편은 완벽한 타인으로 남의 편이란 걸 깨달았다. 물론 나만 그렇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잘하고 있고, 나만 잘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편만의 잘못도 물론 아니다. 남편이 완벽한 남의 편이었던 것처럼 나조차도 결국은 남남이 되기로 마음먹고 실행했다. 누구를 탓하는 게 아니다. 다만 내 깜냥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힘들었던 결혼경험에 비해 달달한 연애경험이 적었다. 연애. 그 달콤한 경험을 인생에서 없애버릴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연애다운 연애를 못해본 게 아쉬웠다. 남들은 쉽게 하는 아름다운 연애가 하고 싶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을 살고 싶다. 이혼 후 연애를 했다. 첫인상이 순해 보이고 착해 보이는 남자를 만났다. 그의 얼굴이 잘생겼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저런 사람을 누가 만날까 싶었다. 모아놓은 돈도 없고 아들이 둘 있는데 초등학생과 미취학 아동이다. 그의 부모님이 자녀를 돌봐주고 있다. 그러나 사귀면서 알게 되었다. 바람기가 충만한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그는 만나는 모든 여자들과 언제라도 시작할 수 있는 재능이 있었다. 스스로도 자신의 재능을 알고 있었고 십 분 활용했다. 3년이 넘게 사귀면서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여자 친구가 서른 명이 넘는다. 사람이 사람을 못 믿게 되면 서로를 상하게 한다. 마음이 지치고 힘들어졌을 때 그와 이별했다.


그를 만나면서 발전된 부분들이 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하루 두 끼의 도시락을 싸주었다. 주중에 열 가지 이상의 반찬을 만들었다. 손이 늦었는데 빨라졌다. 음식을 여러기지 만드는 게 힘든 일이었는데 나름 선수가 됐다. 눈치가 빨라졌다. 자주 딴짓을 해주는 덕분에 남자친구가 다른 사람이 생기면 귀신같이 알게 되었다. 섹스에 대한 거부반응이 없어졌다. 경험이 많고 노련한 사람이라 신세계를 경험했다. 30대까지는 스킨십은 좋아하지만 섹스는 싫었다. 왜 하는지 모를 정도로 문외한이었다. 그를 만나고 새로운 나를 경험했다. 몸정이 무섭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마음이 힘든 걸 오래 할 수 없었다. 인간관계 중 그게 누구든, 자신이 너무 힘들다면 끊는 게 낫다. 나를 지키고 나를 위하는 게 언제나 최우선이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사를 결심했고, 보이스피싱을 당했다. 그리고 2년 넘게 시달리고 살길을 마련했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다가 부동산을 본격적으로 투자했다. 그리고 파이어족이 되었다. 파이어족이 될 수 있었던 건 부동산 때문만은 아니다. 생활비를 비약적으로 줄였기 때문이다. 매달 500만 원 이상 나가던 지출을 최대한 줄였더니 200만 원 미만이 되었다. 지출이 줄게 되니 일을 그만둬도 되는 상황이 되었다. 아름다운 백조의 생활을 1년 정도 하게 되면서 다시 가족과 자주 왕래했다.


엄마는 작은언니와 살면서 나름 안정을 찾았고 편안해 보였다. 그런데 엄마가 갑자기 고집을 피웠다. 내집 하나 없이 산 세월이 길고 답답한 좁은 집에 사는게 지겹다고, 넓은 집에서 살아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몇 년만 기다려 주면 큰집에서 살 수 있다고 설득했다. 현실적으로 당장 큰집으로 이사 가는 건 불가능한데도 막무가내였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어떻게 몇 년을 기다려?" 늘 하는 말이라 무시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런데 그맘때 엄마 몸무게가 2년 사이 15킬로 가까이 빠질 때였다. 왠지 무서웠다. 나는 다시 엄마와 함께 합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욕심을 줄이고 마음을 내려놓고, 어쩌면 엄마말처럼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시기에 가족들과 모여서 살아보자고 마음먹었다. 나는 안전띠를 매고 다시 가족들과 함께 롤러코스터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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