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글
참고 노력하는 것을 그만두면서
참는 건 그것 자체로 고통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개인에게 참아야 하는 것을 알게 모르게 강조하고 강요한다.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회적 동물에게 순종적인 인간을 만드는 건 다스리는 자들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가치였을 것이다. 틀에 가둔 세뇌적인 교육은 질서차원에서 어느 정도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상호작용하며 살아가야 하는 인간사는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은 법칙들이 존재한다. 플러스 마이너스가 조화를 이뤄야 세상에 균형을 이루기 때문일까? 조화, 관성의 법칙은 강력한 힘이 있다. 그 힘은 균형을 찾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인간은 왜 참고 노력하는가? 잘 살기 위해서? 행복하기 위해서? 성공하기 위해서? 참으면 잘살게 되는 걸까? 자본주의 세상은 불평등을 용인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게 된다. 우리가 사는 현시대에 갑과 을은 확실하게 존재한다. 갑은 늘 갑질을 일삼고 을은 억울해도 참아야 한다. 누군가가 마음대로 행동하는 만큼 누군가는 반드시 참아야 하는 걸까? 왜 사람들은 참으며 사는 걸까? 부당함, 억울함, 불평등함을 참아야 하는 걸까? 도대체 참는 건 누구를 위해 하는 행동일까? 모두를 위해서 한 사람이 희생하는 것은 당연할까? 그 모두는 누구일까?
나는 젊은 시절 참는 걸 잘했다. 몇 해 전 그릿이란 책을 읽으며 내 인생에 많은 그릿이 떠올랐다. 그릿을 해석하면 <끈기, 투지>등으로 불릴 수 있다. 그릿은 성공으로 가는 길에 동무처럼 함께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그릿이 곧 성공으로 가는 길의 길동무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성공한 모든 사람들에게 그릿이 필요했을까? 타고나기를 금수저로 태어나고, 재능이 있고, 똑똑한 두뇌가 있고, 사회가 받쳐주는 사회고, 특출 난 외모를 가진 사람들 등은 모든 것이 노력과 끈기만으로 가능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참음>으로 인해 <빡침>을 경험한 때가 많다. 착한 사람콤플렉스에 걸린 지극히 환자 같은 경향을 보인 때도 있다. 착한 것도 내가 선택해야지 타자가 나에게 선함을 강조하고 양보를 조장한다면 그건 착한 걸까? 이용당하는 호구 일까?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받으며 나는 고민했다.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 그것에 대한 해답을 당신과 함께 찾아가고 싶다.
당신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 댓글로 참여해 주면 영광일 것이다.
다행인 것은 나의 빡침 경험은 결과적로 약이 되었다. 마흔이 넘은 어느 날 나는 빡침으로 깨닫고 참는 것과 이별을 고하기로 했다. 사람이 싫어지면 안 보고 살면 편해진다. 좋은 면도 있고 싫은 부분도 있는 사람도 그럴진대 빡침을 곁에 두는 건 아니다 싶다. 이후 나는 한 가지를 결심했다. 나를 최대한 존중하기로 했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최우선해서 나를 존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중요한 건 세상 그 어떤 존재, 가족, 친구보다도 나 자신이 최우선이란 점이다. 이후 어떤 일이 생기면 스스로에게 묻는다.
괜찮아? 좋아? 좋은 만큼 하는 거야?
스스로 물음에 답변을 한 후 실행한다. 내가 스스로 허용할 수 있는 것들을 허용한다. 물론 허용한다는 게 법을 어긴다는 건 아니다. 나는 준법정신이 투철하고 법을 지키는 게 심리적으로 평안하다. 법에 저촉되지 않고 타인에게 민폐가 되지 않고 타인을 해치거나 손해 입히거나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면 허용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게 무엇이든 하고 싶지 않다면, 즉 즐겁거나 기분이 좋지 않다면 계속하기를 멈춘다.
나는 참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실생활에서 이야기하기에 앞서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갈 생각이다. 극 중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들이 참은 사례를 풀고 어떻게 하는 게 좋았을지, 다른 방법은 어떤 게 있을지 써나갈 생각이다. 글을 읽는 분들도 참여해서 댓글을 남겨주신다면 귀중한 자료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