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훌쩍 떠났던 부산-창백한 푸른 점

셸 위 댄스-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66화




박주가리 (꽃말: 먼 여행)



훌쩍 떠났던 부산 -창백한 푸른 점


98년 5월, 5월 1일 근로자의 날이 금요일이라 집에 있었다. 집은 아직 어수선했다. 토요일 오전 출근길 집을 나서는데 마음이 홀가분했다. 오전만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왔다. 무거워진 분위기를 견디는 게 힘들었다. 엄마에게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밤늦은 시간에 영등포로 향했다. 부산으로 가는 마지막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몇 개월 만에 가차를 타는 것이었다. 20살 때부터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한동안 자주 부산을 다녔었다. 96년에는 주 6일 근무였고 토요일은 일이 오전에 끝났다.

처음 부산을 갔을 때도 그냥 그렇게 훌쩍 떠났었다. 이후 반복해서 자주 부산에 갔었다. 여행을 가려고 한 날은 토요일 아침에 출근 준비하면서 몇 가지 준비물을 가방에 넣고 집을 나왔다. 밤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고 10시가 넘어서 퇴근하며 전철을 타고 영등포역으로 갔다. 무궁화호 막차 티켓을 끊었다. 막차인데도 부산행 토요일 밤기차엔 늘 사람이 적지 않았다. 기차가 오면 좌석을 둘러보고 창가 쪽에 빈 좌석이 있으면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앉아서 이어폰을 끼고 책을 보다가 자다가를 반복했다. 더러는 기차에서 파는 삶은 계란을 사 먹기도 했다. 삶은 계란과 사이다를 함께 먹으면 늘 옳은 궁합이었다. 편하게 숙면은 못했어도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면 부산역에 새벽 5시가 조금 넘으면 도착했다.


20살 때부터 3년 동안 혼자서 부산에 다녀온 게 벌써 몇 번째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한동안 못 갔다. 장례식 이후에는 매주 시간이 되면 산을 갔었다. 바다를 보는 것과 산을 타는 것은 다른 경험이었다. 한동안 열심히 산에 다니며 위로를 받았었다. 자연스럽게 부산 여행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나 산은 혼자 갈 수가 없었다. 동호회 내에 일정이 정해져 있는 산에 참석을 하며 산을 다녔다. 그런데 마음이 답답해서인지 부산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무작정 떠날 곳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밤새 달린 기차는 부산역에 5시 반쯤 도착했다. 나는 가방을 챙겨 기차역 게이트를 나왔다. 늘 해왔던 대로 익숙하게 부산역 화장실로 갔다. 눈곱도 확인하고 세수와 양치도 했다. 조금만 더 시간을 기다리면 곧 첫 버스가 다닌다. 그럼 제일 먼저 버스를 타고 태종대에 간다. 태종대 입구에 있는 작은 슈퍼에서 맥주 한 캔을 산다. 그리고 태종대 길을 걷는다. 30분 정도 걷다 보면 아래로 내려가는 안내 표지판이 있다. 자살바위 표지판을 지나치고 더 가다 보면 신선대 방향 표지판이 보인다. 늘 태종대에 가면 똑같이 복기하듯이 같은 길을 걸었다.


신선대 방향으로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본다. 입구쯤에 좁다란 통로 같은 곳으로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뒤로는 층층이 다른 절벽이 병풍처럼 우뚝 서고 전방은 바다가 펼쳐져 있다. 오랜만에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든다. 신선대를 빙 둘러 휘~이~ 얼굴을 돌리며 시선을 따라가 본다.


"보고 싶었어, 잘 있었어?"


신선대가 사람인 양 마음속으로 반갑게 인사한다. 벽을 둘러보며 층층마다 다른 색을 하고 있는 돌벽 색깔에 한동안 눈길을 빼앗긴다. 서서 보다가 사람이 없는 방향으로 발을 옮긴다. 앉을 만한 자리에 걸치고 있던 셔츠를 펼쳐놓고 바닥에 앉는다. 셔츠가 없을 때는 손수건이라도 꺼낸다. 그리고 멀리 바다를 향해 눈을 돌린다. 익숙하게 음악을 선곡하고 볼륨을 알맞게 맞춘다. 바다를 응시하다가 눈을 감아 보기도 한다. 다시 눈을 떠서 바다 넘어 저곳으로 눈길을 낸다. 바다와 이어진 하늘을 보다 머리를 뒤로 젖혀본다. 그러다가 그대로 누워서 하늘을 바라본다. 바다랑 이어진 하늘은 서로의 색을 아름답게 변화시킨다. 날씨나 구름, 햇빛의 세기에 따라 바다 빛과 하늘빛이 변한다.


기분에 따라 DJ가 선곡을 하듯이 심사숙고하며 노래를 골라본다. 한참을 앉아 있다가 가방에 넣어둔 맥주를 딴다. 술은 잘 못 마시지만 맥주 한잔 정도는 괜찮다. 나만의 의식을 치르듯이 신선대에서는 늘 이렇게 맥주를 땄다. 부산은 나처럼 겁 많은 여자가 혼자 여행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었다. 밤기차를 타면 다음날 새벽에 도착했다. 잠은 기차에서 자면 되고 집에 돌아올 때도 똑같이 밤기차로 오면 된다. 그러면 무박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하루 동안 온전히 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여러 곳을 돌 수 있었다. 월요일 새벽에 영등포역에 도착하면 집에 들르지 않고 바로 회사로 출근했다. 부산에 올 때마다 늘 비슷한 코스로 다녔다. 태종대에서의 움직임도 늘 비슷했다. 그날은 맥주가 목을 넘어가는데 전혀 쓰지 않았다. 급하게 마시지 않고 천천히 맛과 향을 느끼며 먹었다. 음악을 중간에 바꾸기도 했다. 다시 신선대로 눈을 돌려 천천히 돌의 변화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무수한 세월 속에 켜켜이 변했을 돌이 왠지 대단해 보였다. 돌들과 대화하듯 상상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맥주 한 캔을 다 마시면 열이 살짝 오르고 얼굴이 붉어졌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서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올라가서 나머지 태종대를 마저 돌면서 밖으로 나갔다.


다시 버스를 타고 자갈치 시장 방향으로 갔다. 그곳에 가면 삶의 터전 그 모습 그대로 날것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시대의 어른들은 자갈치 시장에서 참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듯 보였다. 자갈치시장에서 나는 그들을 보는 관찰자가 되었다. 그들은 활기차고 절실해 보였다. 그들의 하루는 이른 새벽부터 시작됐다. 손짓하며 손님을 부르는 그들을 보는 게 좋았다. 빽빽하게 들어선 시장에서 그들은 바쁘게 움직였고 간절하게 손짓했다. 그런 그들은 아름다웠다. '열심히 산다는 건 저런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배를 볼 수 있었다. 때로는 배에서 바로 생선을 잔뜩 내리기도 했다.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서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들의 열기가 나에게도 전달되면서 가슴이 뜨거워지곤 했다. 그렇다. 이게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들을 보려고 부산을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길을 옮겨 남포동 거리로 향했다. 96년부터 부산에서는 국제영화제가 열렸었다. 영화제가 열리는 시기에도 부산을 찾았었다. 영화제 때 부산에 와서 영화제 출품작인 영화를 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날은 영화는 보지 않았다. 붐비는 남포동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남포동 거리 골목마다 길거리 음식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부산에만 있는 씨앗호떡을 하나 샀다. 호떡을 먹으며 돌아다녔다. 혼자 여행하는 건 여러 가지 장점이 있었다. 우선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함께 하는 사람이 없으니 조율할 것도 없다. 내가 시간이 되고 여비만 있으면 언제든지 나설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단점이 있다. 혼자 식사를 할 만한 게 별로 없다는 거다. 그래서 여행할 때 식사는 주로 군것질거리로 대신하곤 했다. 요즘은 혼자서 식당에 가는 게 아무렇지 않다. 그래서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이젠 더 이상 음식은 포기할 대상이 아니다.


오후 2시가 넘어가면 광안리 쪽으로 갔다. 고즈넉한 바다를 멍하니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는 게 혼자 여행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었다. 멍 때리다가 생각하다가 혼자만의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여행에 본전 생각은 없다. '멀리 떠나왔으니 무엇 하나는 가져가겠다?' 그런 결심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늘 여행은 무언가를 얻게 해 주었다. 그때 부산에서 나는 나에게 집중하려고 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구분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오롯이 나뿐이었다. 그럼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좋은 삶을 산다는 건 어떻게 사는 것인가? 영화 <굿 윌 헌팅>과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 올라왔다. 주체적으로 내 삶을 살려면 어떤 선택이 필요할까? 생각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오래 이어졌다.


저녁시간쯤 돼서 해운대 바닷가를 갔다. 주말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해운대에 나와 있었다. 날씨가 좋아서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행과 함께였다. 혼자 다니는 사람은 내가 유일한 것 같았다. 모래사장에 앉아서 사람들을 보게 됐다. 그러다가 한 가족이 무언가를 하는 게 보였다. 바다낚시를 하는 건지 도구를 이용해서 뭔가를 잡고 있었다. 낚시 방법이 좀 특이해 보였다. 양파망처럼 뽀글뽀글하게 생긴 무언가를 먼 바닷가로 던지고 그걸 걷어 올리고를 반복했다. 도구가 좋은 건지 무언가 계속 잡히는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도구에 매달려 올라오는 건 게였다. 한참 일정 거리를 두고 바라보다가 곁으로 가 보았다. 게가 꽤 많이 잡혀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그걸 바로 팬에 굽기 시작했다. 나는 신기해서 시선이 고정됐다.

그때 가족 중 여자분과 눈이 딱, 마주쳤다. 민망해서 나는 웃어 보였다. 그랬더니 나에게 손짓을 했다. 나는 쭈뼛쭈뼛 곁으로 갔다. "앗. 너무 신기해서 보고 있었어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혼자 왔어요?" "네. 혼자 왔어요." "서울에서 왔어요?" 말투를 보고 그렇게 물었다. "네. 경기도 부천에서 왔어요."라고 말했다. 몇 마디가 더 이어졌다. 그리고 이내 게가 다 익었다. 나는 자리를 떠나려고 일어섰다. 그런데 가족분들이 앉아서 같이 먹자며 나를 잡았다. 나는 어쩔 줄 몰라서 어정쩡한 자세로 그대로 있게 되었다. 게를 하나 주셔서 받아버리고 말았다. 먹는 방법을 알려주셔서 그대로 해봤다. 세상에나 너무 맛있었다. 게가 그렇게 맛있었나 싶을 정도로 보드랍고 달달했다. 잠시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발길을 옮겼다. 바다를 향해 아쉬운 인사를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다음에 또 보자"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바다를 뒤로하며 버스역으로 갔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부산역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밤 9시쯤부터 기차 막차시간 전까지는 늘 부산역에서 기다렸다. 겁이 많아서 너무 늦은 밤에 돌아다니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부산역에서 그날의 여행을 생각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복기했다. 떠오르는 장면마다 미소가 지어졌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가면 일상을 또 시작할 것이다. 일상 속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갈 뿐이다. 앞으로도 많은 일들이 생길 것이다. 그럴 땐 잠시 현실을 벗어나도 좋을 것 같았다. 내 삶에서 잠시 벗어 나오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일상을 살다가 문득 여행했던 마음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여행은 일상과 거리를 띄어놓음으로 나의 모습을 평면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해 준다. 때로는 막막한 길을 여행의 경험이 안내할지도 모른다. 영등포로 향하는 막차가 오면 기차는 나를 나의 터전으로 데려가 줄 것이다.


고등학생 때 읽었던 만화책에 내 머릿속에 새겨진 대사가 있다. <인생은 예측 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라는 책이었고 작가님은 신일숙 작가님이다. 만화를 읽으면서 인물들이 우여곡절을 겪을 때마다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온 말이다. 내 인생에도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불쑥 앞을 막아설 때가 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생이 그렇다면 내가 할 것은 하나뿐일지도 모른다. 신나게, 즐겨주는 것이다. 최고의 순간이든 최악의 순간이든 모든 순간은 또 지나갈 것이다. 색은 색일 뿐 어두운 색이라고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니다. 어둠과 밝음은 둘 다 존재해야 비로소 변별력이 생긴다.



창백한 푸른 점

생각해 보면 예측불허인 삶은 그 모든 순간이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힘들었던 여행은 단지 조금 더 기억에 남는 여행일 뿐이다. 살다가 막막한 벽을 만난다면 혼자서 훌쩍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익숙한 곳으로 돌아왔을 때의 편안함과 감사함도 떠나봐야 알 수 있다. 훌쩍 떠난 부산 여행으로 인생 자체가 여행임을 깨닫는다. 낯선 곳에 간 것도 여행, 지금은 익숙해진 나의 터전도 결국 여행이다. 나의 인생이란 '장하늘'이라는 인간으로 지구라는 창백한 푸른 점(칼 세이건의 보이저 1호로 찍은 지구)에서 경험하는 즐겁고 생경한 여행이다. 저토록 광활한 우주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하다. 지금은 46년 동안의 여행길에 대한 여행 일지를 쓰고 있다.


인생이라는 예측불허의 날들에 오롯이 내가 할 수 있는 것, 오늘이라는 선물을 신나게, 기쁘게, 격하게 즐기자~♡







별별챌린지 2기 66일. 끝인사.(♡. ♡)


이 글은 별별챌린지 2기, 66일 차의 마지막 글이다. 나는 별별챌린지를 통해 처음으로 이렇게 꾸준하게 매일매일 글 쓰는 것에 도전했다. 시작할 때 목표는 66일 완주, 한 가지였다. 첫날 시작 글에는 글의 완성도를 떠나서 오타가 가득했다. 여건상 핸드폰으로 활자를 치다 보니 오타가 더 넘쳤다. 그래도 그냥 썼다. 미천한 내 실력을 알기에 잘 쓰려는 마음은 처음부터 내려놨다. 문맥이 이상하고 서툰 표현이더라도 눈을 감고 그냥 올렸다. 잘 쓴 글을 올리려고 했다면 단 한편도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시작할 때 대략 목차를 만들었다. 7일 차가 넘어가면서 목차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이후 목차는 매일 글을 쓰며 더 상세하게 나뉘면서 추가됐다. 지금은 새롭게 목표가 생겼다. <목차가 생긴 모든 글을 다 쓰겠다>는 것이다. 다음 순서는 그 후에 하려고 한다. 현재까지의 목차로 보면 2기 마감일인 오늘 글이 총 분량 글의 20% 정도에 해당한다. 앞으로 80%가 남았다. ㅎㅎㅎ 별별챌린지 2가 마감됐으니 며칠을 쉬게 될지 쉬지 않고 계속 올리게 될지 그건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이 글을 목차대로 완주하겠다는 결심은 했다. 모두 별별챌린지에 참여한 덕분이다.

20일 차 정도 됐을 때부터 열심히 블로그에서 서로 이웃을 맺었다. 혼자만의 결심으로 쓰기에는 원동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서로 이웃이 되어준 분들이 '좋아요'를 눌러주면 그것이 곧 응원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내 글에 자주 댓글을 남겨주시는 분들도 생겼다. 나로서는 대단히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었다. 가족사, 내 과거사를 쓰다 보니 글을 쓸 때도 힘든 순간들이 있었다. 글을 쓰고 올려놓고 종종 위축되거나 후회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를 토닥여주는 댓글에 큰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2기를 완주하며 고마운 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별별챌린지 2기 글쓰기에 참여하도록 권유를 해준 연은미작가님께 감사합니다. 팩트체크를 위해 자주 읽어달라는 나의 요청에 기꺼이 읽어주고 정정할 부분들도 알려주는 작은언니♡ 무지무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별별챌린지를 이끌어주시는 최리나 작가님, 김필영 작가님 하루키 조의 조장님이신 박성주 작가님, 각조 조장님들, 글로성장연구소 운영진분들, 우리 독서모임 멤버인 박경림 작가님, 김수경 작가님 그리고 함께 별별챌린지 2기를 함께 달려온 동기 작가님들께 모두 모두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2기 마감이었던 5월 31일은 제 생일날이었습니다. 별별챌린지 2기 66일 동안 진행된 매일 글쓰기 완주는 저에게 귀중한 선물이 됐습니다.~♡


별별챌린지 2기를 완주한 힘으로 이후에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꾸준하게 쓴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브런치 작가에 응모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감사하게 지금은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다. 브런치에서 라이킷을 눌러주고 구독을 해주시는 한 분 한 분께 엄청난 응원을 받는다.


브런치 구독해 주시는 분들, 그리고 서로 이웃인 분들과 블로그에 방문해 주시는 모든 분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머리 숙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