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걸을 때면 보폭을 신경쓰곤 했어요. 꼭 그쪽과 나의 미묘한 키 차이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린 걸음이 다르고 길이 다르고 생각이 달라서 틀어지곤 했으니까요. 내 위치는 늘 한 계단 아래였고 그러면 가끔 눈높이가 맞곤 했어요. 같은 곳을 보고 있단 건 좋았지만 때로는 뒤를 살펴줬으면 했어요. 남의 뒤통수만 들여다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서요.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생김새를 통째로 외워버리고 싶었어요. 부질 없는 일이었어요. 볼 때마다 달라졌기에.
우리의 접점은 길지 않아서 가는 길이 틀어져도 이따금씩 만나자던 나의 부탁은 무심한 그 쪽에게 짐으로 느껴졌는지 무참히 거절당했고 일말의 미련도 아쉬움도 없어보여서 다시 연락하기까지는 꽤 많은 용기가 필요했어요. 혼자 일 년 반을 끙끙 앓으면서도 내색할 사람 하나 없었고 이따금 꿈에 나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어요. 꿈에서 깨면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어요.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는 안개가 껴서 도통 맑아질 줄을 몰랐어요. 하던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내가 무얼 하고 있었는지도 명료하지 않았어요. 오래 된 영수증처럼.
내가 혼자 낯선 땅에 정착해서 방황하기를 멈췄을 때, 오랫만에 돌아간 고향 땅에서 혼자 방황하고 있던 그 쪽을 다시 만났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게 되었어요. 머릿 속 뉴런들이 전에 없던 속도로 신호를 주고받는 동안 기억은 희미해졌고 흑색과 백색들은 회색이 되었으며 바닥을 쳐다봐도 발끝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우리는 다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뿐이었고 나는 슬퍼서 울 것 같았지만 왜 슬픈지 몰랐어요. 화나서 뭐라도 부시고 싶었지만 왜 화가 나는지 몰랐어요. 끙끙 삼 일을 앓으면서도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았고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나는 삶에서 내가 가장 중요했고 나를 위해 살았지만 이제는 모르겠어요. 우리는 왜 살아가는 걸까요. 우리는 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요.
우리는 결국 모두 이방인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