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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첨단 기술의 만남

[21.8.25. 세계일보 사이언스프리즘/내 글]

게임·드라마·음악 등 문화상품
증강현실·메타버스 등 신기술 접목
이용자들, 소비자 넘어 참여자로
새 매체 등장과 변화 모습에 기대


게임, 드라마, 음악과 같은 ‘문화상품’은 세계관을 담고 있다. 요즘 게임에 푹 빠진 이용자들은 그래픽의 정교함 못지않게 어떤 세계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게임인지에 관심을 갖는다. 웹툰은 세계관을 바탕으로 영화, 드라마 등의 원작으로 활용되는 대표적인 문화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주호민 작가의 웹툰을 바탕으로 대성공을 거둔 ‘신과 함께’ 시리즈, 강풀 작가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26년’ 등의 영화는 웹툰이 갖는 세계관이 어떻게 다른 장르로 전환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만화가 웹툰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그 자체가 문화콘텐츠와 기술의 만남을 잘 보여준다. 1990년대 등장한 웹이라는 새로운 기술은 종이 만화가 갖는 지면의 제약을 탈피할 수 있게 해주었고, 언제 어디서나 만화를 즐길 수 있는 편의성을 제공했다. 또한 만화가로 데뷔하기 위해서는 유명 만화가의 문하생으로 출발해야 했던 이전과 달리, 어느 누구라도 독자의 심금을 울릴 수 있다면 웹툰을 통해 자신을 알리고 유명해질 수 있게 됐다.


            

문화와 첨단 기술의 만남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라디오가 등장하자 소리로 전달되는 매체라는 특성을 활용해 다양한 음향효과가 발전했고, 그것을 드라마와 접목해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내는 라디오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가 생겨났다. 1938년, 미국에서는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다는 라디오 드라마가 주는 몰입감 때문에 사람들이 극중 내용을 실제와 혼동해 여러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텔레비전의 등장은 여기에 화려한 영상이라는 새로운 자극을 추가하게 된다. 텔레비전 드라마, 뮤직비디오 등 문화와 기술의 접목은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설립자는 대중음악 시장을 기술과 접목해온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가수 활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면서 새로운 문화 트렌드에 눈을 떴다. MTV의 등장과 보이그룹의 전세계적 열풍을 보면서, 대중음악 시장의 구조 자체가 변화함을 느꼈다. 이수만의 ‘문화기술’ 개념은 인재 발탁에서 데뷔, 상업화의 전 과정을 캐스팅·트레이닝-프로듀싱-매니지먼트-마케팅으로 나누어 각 과정을 고도로 전문화하는 프로세스 측면의 혁신과 증강현실(AR), 메타버스 등의 신기술을 끊임없이 접목하는 디지털화라는 혁신을 담고 있다. 이러한 혁신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끌 수 있는 세계관과 접목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는데, 2020년 데뷔한 걸그룹 에스파(aespa)는 4인의 오프라인 멤버와 그들의 아바타까지 포함한 8인의 멤버가 활동한다는 독특한 콘셉트를 갖고 있다. 그들이 발표하는 노래 한 곡 한 곡은 온·오프라인의 멤버들이 공동의 적을 물리치며 서로의 유대를 확인하고,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세계관을 담고 있다. 마치 게임의 시나리오를 연상케 하는 이러한 접근은 이제 소비자들이 스토리도, 맥락도 없는 문화상품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트렌드 때문이기도 하다.



SM의 문화기술 도입은 단지 세계관을 담는 데 그치지 않고 있다. 온라인 전용 공연 플랫폼을 만들어 AR, 가상현실(VR)을 접목하고 이용자와의 실시간 소통을 가능케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 공연이 어려워지자 온라인 무료공연을 통해 전세계 186개국에서 3500만명 이상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홀로그램을 이용한 뮤지컬 공연과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한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는 초기에는 얼마나 실제 세계와 닮도록 만들 것인가를 고민한다. 가상공간을 마치 실제 세계처럼 경험하는 것을 ‘사회적 실재감’이라고 한다. 기술이 콘텐츠와 만나 성숙할수록 이용자는 단순한 콘텐츠의 소비자가 아니라 참여자로 역할이 바뀌게 되며, 아티스트와 이용자는 하나의 공동 경험을 만들어가는 공동창작자가 된다. ‘실재감’에 ‘사회적’이라는 표현이 붙는 것도 이러한 공동경험의 측면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온·오프라인이 접목되면서 물리적 실재보다 경험이 중시되는 흐름으로 전환된다고 볼 때, 새로운 세계관과 첨단 기술이 만나 열어갈 변화의 모습에 큰 기대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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