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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을 보는 인간의 시선

[21.5.12 세계일보 사이언스프리즘/내 글]

오류 가능성 인정하는 겸손
인간·AI 모두에 필수 덕목
불완전한 두 존재 협업 통해
의사결정의 질 더 높여가야


요즘 인공지능, 알고리즘이란 단어를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는 경향이 눈에 띈다. 수만장의 CT(컴퓨터단층촬영)나 MRI(자기공명영상장치)를 학습하고도 질병 예측에 있어서 100% 정확한 인공지능은 아직 없다. 다만, 맥락에 따라 숙련된 전문의가 판정하는 것보다 더 정확한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이 판정하는 것을 고민 없이 그대로 수용해서 질병이 없는 거로 판정했다가 나중에 틀렸다고 밝혀진다면? 환자는 적당한 치료 시기를 놓치고 심지어 생명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있는 질병을 없다고 판정하는 ‘오류음성(False Negative)’의 결과는 사람의 목숨을 좌우할 정도로 치명적일 수 있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도출한 결과를 인간이 재평가하고 오류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렇게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겸손이야말로 인간과 기계 모두가 갖춰야 할 덕목이 되었다. ‘안녕, 인간’이라는 헤나 프라이의 책을 보면 연방공무원의 실수 하나로 무려 10여년간 미국에 입국하지 못한 ‘라히나 이브라힘’이라는 건축가의 사례가 나온다. 네 아이의 엄마인 그녀가 자신의 삶의 터전인 미국에 들어가지 못한 오류는 사람이 저지른 오류이기도 하지만, 비슷한 이름을 가진 단체를 혼동해 입국금지 대상으로 판정한 컴퓨터 시스템의 오류까지 겹쳤기에 가능했다. 인간과 컴퓨터가 협업해서 한 사람의 인생에 지대한 타격을 준 것이다.


알고리즘에 대한 흔한 오인은 바로 ‘알고리즘은 공정하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의 설계가 특정한 규칙에 따른 1+1=2처럼 되어 있는 경우는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요즘 사용되는 기법에서는 ‘레이어’라 불리는 잠재변수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어서 인과관계를 명확히 도출하기는 어렵고, 연구자들은 어느 알고리즘이 도출한 답이 얼마나 더 효율적인 해결책을 제공하느냐를 비교평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게다가 알고리즘을 훈련시키는 데이터세트가 얼마나 심각하게 편중되어 있고 극단적 샘플들로 구성되어 있느냐를 주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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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이 내뱉는 온라인커뮤니티의 악성 댓글을 주로 학습한 알고리즘은 온갖 증오와 편견을 분류치, 예측치로 제시하게 된다. 물론 악성 댓글을 판별하는 알고리즘이라면 이런 부분이 유용할 수 있다. 따라서 ‘알고리즘은 공정하다’는 말이 의미를 갖는 경우는 그것이 대단히 신중하게 채집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고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항목을 반영한 경우로 제한된다. 이래서 떠오르는 분야가 인간과 인공지능의 협업과 소통을 강조하는 휴먼-AI인터랙션이다. 서로의 약점을 이해하는 인간과 AI가 서로의 문제점을 들여다보고 오류의 가능성을 지적해서 점점 더 의사결정의 질을 높여가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알고리즘 자체보다 그것을 감싸고 있는 인터페이스, 그러니까 검색창의 모양과 색깔, 챗봇의 공손함, 웹사이트의 구조, 중요도의 표식 등에 더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 알고리즘은 인간사회의 가치관이 반영된 단어의 실질적 차이를 알지 못하므로 단어의 상대적 위치(벡터)를 바탕으로 의미를 추론하는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완벽하지 않은 두 존재가 서로를 검토하고 검증하고 조언하고 향상시킨다면,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도 배려하고 의사결정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는 최적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알고리즘은 공정하다’는 명제가 참이 되려면 인공지능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대체로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러한 결과가 도출되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설명가능한 인공지능(Explainable AI)’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딥러닝 등 갈수록 복잡해지는 인공지능을 직관적으로 사람에게 이해시키는 일이 알고리즘 자체를 개발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워 보인다. 우리는 새로운 알고리즘과 기술을 공부하고, 인공지능은 인간을 더욱 깊숙이 이해해야 할 때가 왔다. 사람이 만든 피조물에 불과한 알고리즘과 협업을 해야 한다는 게 우스꽝스럽게 들릴 수 있지만 우리는 이미 주방에서 칼, 도마, 주전자, 전자레인지, 그리고 오븐과 협업해 왔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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