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기고/ 한국일보 2018.4.18.]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각 정당은 온라인 여론이 표심에 직결된다는 다소 거친 전제 아래 포털을 휘어잡기 위해 안달이 났다. 정부도 방송통신위원회 등을 통해 ‘가짜 뉴스’에 대한 자율규제를 촉구하고 있다. 여기에 발맞춘 것일까.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포털들은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협의를 통해 ‘가짜 뉴스’에 대한 규제 기준을 담은 가이드라인 제정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가짜 뉴스’를 자칫 잘못 정의하다가는 권위주의로의 퇴행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자신에 대한 의혹제기는 무조건 ‘가짜 뉴스’로 치부하는 트럼프가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는 이유는 ‘가짜’를 판단하는 주체가 바로 정치인 본인이 아닌 유권자, 언론, 그리고 사법부이기 때문이다. 정당이나 후보자에 관한 루머의 일부는 시간이 흐르면서 사실로 밝혀지기도 하고 일부는 전혀 허무맹랑한 것으로 나타난다. 다만 선거기간에 거짓 루머에 희생되는 것은 후보자와 정당, 그리고 투표자 모두이기에 선거일이라는 제한된 기한 내에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정보는 가려져야 하는 것이 또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번에 포털들이 ‘가짜 뉴스’를 어떻게 정의했는지 궁금하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언론사 명의나 언론인 직책 등을 사칭하거나 도용한 기사 형태의 허위 게시물을 가짜 뉴스로 정의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짜 뉴스’ 게시물이 유통되는 것을 확인하면 포털은 그것을 삭제하거나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게 자율규제의 내용이라고 한다. ‘가짜 뉴스’의 정의를 비교적 좁게 설정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이 정의가 조금이라도 더 확장된다면, 자유로운 정보의 유통이라는 명제를 침해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정파적 이해에 불리한 정보를 무조건 가짜로 몰아붙이는 일도 우려된다.
그렇다면 온라인 여론이 곧 표심에 직결되는 것은 사실일까? 필자가 최근 진행 중인 연구에 의하면 페이스북에서 ‘좋아요’와 ‘댓글(코멘트)’은 소수의 게시물(뉴스 포함)에 집중되어 있다. 사람들은 이미 ‘좋아요’나 ‘댓글’이 많이 달린 게시물에 선별적으로 주목하며, 그러한 게시물은 점점 더 세를 불려 페이스북 여론을 점령한다. 이렇듯 온라인 공간은 쏠림 현상(밴드웨건 효과)에 취약한 공간이다. 이런 약점을 파고든 것이 지난 정권의 ‘댓글 공작’이며, 많은 기업들이 신제품 출시 즈음에 강한 유혹을 느끼는 댓글 조작도 비슷한 논리에서 움직인다. 포털 뉴스의 댓글이란 역시 특정 지지층이나 소수 견해가 다수인 것처럼 착시를 일으킬 수 있는 공간임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항상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그럴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온라인 여론이 곧 전체 시민의 여론을 대표하는 것처럼 지나친 의미부여를 하다가는 전체 민의를 찾아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온라인상에서 주류 견해를 잘못 인식한 유권자는 어떤 행동을 보일까? 매스미디어 이론 중 ‘침묵의 나선이론’ 이나 ‘문화계발 이론’에서는 각각 자신의 의견이 소수일까 두려워서 침묵하게 되는 성향을 지니거나 주류 의견으로 인식되는 미디어상 의견에 점점 동화되어 가는 대중을 다룬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서 절대적 우위를 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이 도널드 트럼프에게 참패한 사례에서 보듯이 전통적 여론조사나 온라인상에서 드러나는 주류 여론은 모두 한계를 가지고 있다. 각 나라의 상황에 따른 민심의 흐름은 여론조사나 온라인상에 드러나지 않고 있다가, 투표장에서 갑자기 무시무시한 힘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짜 뉴스’를 사전에 척결하거나 온라인 댓글을 점령하려는 낮은 수준의 테크닉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초(超)다매체 시대를 살아가는 미디어 수용자이자 유튜브와 같은 1인 미디어의 창작자로서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미디어 프로슈머(창작자이자 소비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