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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멸치맛초코 Jun 18. 2020

일상의 미학을 외치는 잔잔함

<패터슨 (Paterson)> (2016)


 <패터슨>은 고요한 연못 같은 영화다. 기존의 영화들이 핵심적인 플롯에 강렬한 사건들을 끊임없이 등장시키며 2시간을 채운다면, <패터슨>은 이와는 정반대의 모습만을 보여준다. 영화는 오롯이 패터슨의 일주일 일과를 보여준다. 다른 영화처럼 인생을 뒤집을 일은 추호도 등장하지 않으며, 그나마 큰일이라곤 운행 도중에 버스가 멈춘 것과 패터슨의 공책이 완전히 찢겨나간 것 정도다.     


 패터슨의 일상은 지극히 평범하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걸어서 출근한다. 버스 운전사인 그는 버스를 몰며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마을을 관찰한다. 퇴근 후에는 아내와 즐겁게 보내고, 밤에는 마빈을 산책시킬 겸 동네 바에 들러 맥주를 마시는 소소한 행복을 누린다. 그리고 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꾸준히 일상을 바라보며 자신의 영감을 시로 풀어낸다.   

  


 패터슨의 일상은 우리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똑같이 출근하고 매일 똑같은 사람들을 보고 똑같이 퇴근하고 똑같이 여가를 보낸다. 달라지는 승객들처럼 가끔 다른 사람을 만나고 소소한 사건들이 한두 가지 더 추가될 뿐이지 일반인의 일상이란 이토록 다를 것이 없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패터슨에게는 시가 해당된다. 무료한 일상에 시는 집중의 노력이고 교감의 산물이며 영감의 완성이다. 그는 자신이 시인으로서 자질이 있는지에 대해 자신과 확신이 없지만, “시로 숨 쉰”다는 일본 시인처럼 패터슨도 어느샌가 매 순간을 시로 숨 쉬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삶에는 그런 시와 같은 것들이 있을까. 누군가에겐 시와 같이 자신을 숨 쉬게 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글을 쓰고, 음악을 들으며, 사람들을 만나고, 술을 마시면서도, 운동하는 등 자신이 알게 모르게 아끼는 삶의 즐거움이 다들 하나씩은 분명히 있다.      



 여기서 짐 자무쉬는 이 영화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모두가 일상을 가지고 산다. 일상의 모습은 모두 다르지만, 모두의 일상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 지루한 반복 사이에는 덜 지루하게 하는 즐거움이 있다. 그 즐거움을 고된 일상 때문에 잘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며, 남들과는 달리 거창한 즐거움이 아니라고 생각해버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불쑥 찾아오는 즐거움은 일상을 공전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일상을 버틸 수 있고, 최선을 다할 수 있다.      


 별다른 것 없는 패터슨의 삶에서 시는 일상을 자양분으로 삼도록 만든다. 힘들거나 지루할 수 있는 일상의 단면들을 영감의 원천으로 규정함으로써 일상을 관찰하고, 시를 완성하여 일상을 평온하게 이어나간다. 패터슨이 공책을 잃고 난 뒤에 겪은 상실과 좌절의 감정은 자신의 재능을 의미 없는 것으로 치부하던 그의 태도와는 너무나도 상반된 반응으로, 그만큼 시가 삶에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짐 자무쉬는 말한다. 자신에게 행복을 주는 즐거움들을 소중히 하고, 하찮게 여기지 말라고. 결국 그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마치 소소한 꿈에도 기대하고 행복해하는 로라처럼.      



 물론 자신만의 즐거움에 반드시 얽매일 필요는 없다. 짐 자무쉬는 이 영화 자체로도 고요한 즐거움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갖 사건 사고가 가득한 일상도 정신없이 계속되면 사람을 지치게 하고 일상이 지겹다고 느낀다. 그 자극적이고 지겨운 일상과 정반대인 패터슨의 삶을 관조하면서 우리는 지루함 대신에 평온함을 느낀다. 우리의 삶도 이렇게 포근할 수 있음을, 잠시나마 잔잔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정말로 우리들의 삶이 그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패터슨과 함께하는 2시간만은 그 어느 순간보다도 안정적이다. 이 아름다운 은유로 가득 찬 시간을 함께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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