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타인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되는 그것
여기 어깨 좀 주물러 봐.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의 담임선생님은 내가 학교에 등교를 늦게 한다는 이유로 지각비를 걷는 것도 모자라 새로운 벌까지 추가하셨다.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호출에 당황한 나는 교무실에 문을 열고 들어가 잠시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상황에서 내가 정말 어깨를 주물러야 하는 건가 싶었다. 벌을 가장하여 본인의 편안함을 누리려는 지극히 이기적인 처사라고 생각했다. 그때 교무실 안에 있는 누군가가 이건 좀 아니지 않냐며 반박해 주길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유난히도 더웠던 한여름날의 오후, 교무실 안은 높은 습도만큼이나 숨 막히는 정적으로 가득했다. 유일하게 자리에서 고개를 들어 나를 안쓰럽게 바라본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표정이 떠오른다. '안됐네.'라는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쭉 내밀고 어깨를 한번 들썩였다. 그뿐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때의 허탈함이란.
1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은 대개 다정하고 온화한 성품을 가진 분이셨다.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눈치 보이게 만드는 다른 선생님들과는 다르게 그분에게는 의지하고 싶은 따뜻한 면이 있었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았을 때 좋은 이미지로 기억에 남아있는 스승이 존재한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어찌 되었건 그만큼 믿고 의지했던 어른이 갑작스레 낯설다고 느껴진 불행이라는 감정들은 내게 강력한 확신 하나를 만들었다.
온전히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주변에 신뢰할 만한 어른이 거의 없으며,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는 그 누구도 아무것도 신뢰하지 못한다.'
어디선가 읽었던 글귀 하나가 유독 와닿았다. 짧은 문장이지만 감정이입되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만한 글이었다. 개인의 성공에 있어서는 내면적인 심리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나 양육 환경 등 여러 가지의 조건도 고려를 해야 된다는 내용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세상과 타인에 대한 신뢰감이 어느 정도 쌓이게 되는데 그것에 대해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때 타인에 대한 의심은 계속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게 된다. 누군가를 완전히 믿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도.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일은 분노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다음에 또 누군가를 만났을 때 쉽게 신뢰감이 들기가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속에 있는 그런 솔직한 생각들을 공공연히 떠벌리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약간의 거리감을 두게 될 테니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생각보다 사람들은 나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깨달음과 가정환경, 그리고 과거에 분노했던 몇몇 경험들이 더해져서 자연스럽게 자립심이라는 게 생겨났다. 뭐가 되었든 내 힘으로 하려는 행동들을 누군가 보면서 '너는 참 생활력이 강한 아이야'라고 칭찬을 해주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그런 칭찬은 자신감을 얻게도 해주었지만, 가끔은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것에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마치 나를 둘러싸고 있는 단단한 껍데기에 약간에 금이 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양면성이 존재한다. 부모와 같이 지내다가 잠시 떨어져 있게 된 어린아이조차도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아이가 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모습처럼 말이다. 이것을 '일시적 퇴행'이라고도 하는데,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잘 살아왔다고 자부하면서도 가끔 어린아이처럼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누군가에게 의지하려 하는 게 그 사람에게 짐이 되는 일은 아닐까.'라는 일종의 배려와 같은 조심스러움이 생기게 마련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게 아닐까. 다른 누군가에게 내 걱정을 같이 하게 하지 않으려는 그런 마음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