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기를 담은 수필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다 비워냈다. 한 잔을 더 시키자니 속이 쓰린 것 같고, 계속 앉아 있자니 사장님의 눈치가 보인다. 그럴 때면 노트북 아래로 고개를 푹 처박고 골몰한다. 카페인 때문에 인상을 쓴 건지, 창작의 고통 때문인지 타인은 알 수 없다. 어째 연기력이 늘어간다.
여차저차 소설 시놉시스상 기승전결을 쓰고 나니, 마치 소설을 전부 완성한 것 같아서 힘이 빠진다. 계획한 대로만 써진다면 재밌을 텐데.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조앤. K. 롤링이자,(실제로 스펠링도 같다) 한강이자, 양귀자인데.
직장을 다닐 때부터 줄곧 사용한 독거미 키보드를 의미 없이 두드린다. 무소음 피치축인 탓에 키캡에 손톱 부딪히는 소리만 연신 짤짤댄다. 타건감이 좋으면 뭘 하나, 그 좋은 키보드로 종일 딴생각만 적어 내는데. 제대로 발동 걸리기만 하면 되는데 그 한 번 마음먹기가 어렵다.
글을 쓰다 보면 식욕도 엄청나게 비대해진다. 식욕만큼 작문 실력도 늘면 좋을 텐데. 뭐가 그리 급하다고 쓰기만 하면 날림이다. 뼈대를 세우고 추후에 공구리질이다. 이것도 작법이라면 작법이겠지만, 썩 맘에 들진 않는다. 시 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 한 문장 한 문장 공감되고 사무치는. 근데 난 늘 추리소설을 쓴다. 문장은 간결할수록 좋다. 범인이 들고 있는 칼날 같이 시린 문장을 늘어놓는다.
엄마는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난 직후, 나에게 전화를 걸어 임상춘 작가의 작품과 같은 것을 써내기를 요했다. “엄마, 임상춘은 유명한 작가다.”했더니, “응, 그래. 동백꽃 필 무렵도 썼다매.”했다.
엄마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보지 않았다. 그냥 고향 집 근처에 있는 구룡포에서 찍은 작품이라 촬영장을 몇 번 들른 게 다다. 오히려 내가 오랜 서울살이 탓에 향수가 커져서 포항에서 촬영한 동백꽃 필 무렵, 갯마을 차차차, 선의의 경쟁(엔딩 장면)만 여러 번 돌려봤다.
엄마는 극본과 소설은 태생부터 다르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소설이 막히면 극본을 써보라고 했다. 질세라 나는 '내가 쓴 소설이 영상화 돼서 인세를 받는 게 꿈.'이라고 했다. 엄마는 굴하지 않고 훗날 내가 임상춘 작가처럼 될 것이라 확신하는 듯 전화통에 침을 튀기며 말했다. 엄마는 아직 내 소설을 한 번도 보지 않았지만, 가끔 써 보내드리는 토막글에서 반짝이는 걸 발견한 것 같다. 그렇게 내 글을 믿는다.
그러면서 엄마는 아빠가 관식이 같다고 했다. 걸려도 아빠가 관식이 병이 걸려야지, 왜 엄마가 걸렸는지 모르겠다. 아빠는 양관식만큼 다정하긴 하지만, 관식이와는 다르게 생겼다. 내가 박보검을 안 닮았는데. 당연한 소리지만 나는 아이유도 닮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의 성정이 학씨 아저씨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 같아서, 그냥 관식이 닮은 것 같다고 했다. 아빠는 엄마의 말을 몇 차례 부정하다가, 이제는 엄마가 전화를 걸면 “왜, 애순아.” 하고 받는다고 했다.
슬프게도 나는 임상춘이 아니다. 관식이 자식 양금명도, 양은명도 아니다. 그저 오늘도 글 속에서 한 명을 죽일지, 두 명을 죽일지, 불특정 다수를 죽일지를 고민한다. 다행히 나는 현실에서는 대단한 쫄보라 활자 속에서만 살의를 품겠지만, 여하튼 죽인다. 나는 시퍼런 쇳덩이 같은 글을 쓰고 싶다. 내가 그려낼 세계가 '폭싹 속았수다'가 아닌 '폭싹 죽였수다'라 미안하다.
배경 사진 위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