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이면 마음에 드는 것으로
2019년, 이사를 하면서 가구를 비롯하여 이것저것 사야 하는 것이 많았을 때 이 모든 과정이 너무도 성가신 나머지 미니멀에 빠졌을 때가 있었다. 인간이 사는데 왜 이리도 필요한 것이 많은지. 물론 지금도 최소한의 물건으로만 생활하고자 하는 마음은 변치 않지만 당시에는 좀 더 극단적인 미니멀리스트가 되고자 했던 마음이었다. 이때 내가 가장 고민하던 것이 바로 전기포트.
당시엔 밥솥 없이 냄비밥으로 밥을 해 냉동실에 얼려두고 먹었었는데 물 끓이는 일쯤이야 대수일까, 필요할 때마다 냄비로 물을 끓이면 되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전기포트는 쇼핑 리스트에서 사라질 찰나였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전기포트가 1.5L 이상의 용량이었던지라 1인 가구인 내게 너무나도 크고 쓸모가 없어보였다.
하지만, 같이 일하던 직원이 지나가며 흘리듯 ‘전기포트는 하나 있을 것이 좋지 않을까요’ 던지며 자기는 제일 많이 쓰는 가전이 전기포트일 거라며 덧붙이는데, 이에 간신히 재워두었던 소비욕심이 떠올라 기어코 사버렸던 것이 바로 전기포트. 그래도 간신히 작은 용량인 1L짜리를 찾았는데 크기가 작다고 해서 가격이 이에 비례하는 게 아니라는 건 항상 아쉽다. 1L나 1.5L나 가격은 별반 차이가 없지만 보관의 문제 때문에 작은 것을 샀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은 추천해 줬던 사람의 말 그대로 내가 가장 많이 쓰는 가전은 전기포트다. 생각 외로 끓인 물은 여기저기 필요할 때가 많더라. 꼭 마시기 위함이 아니더라도 청소라던가 이래저래.
당시 가장 저렴하던 것이 유리재질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유리는 언제나 깨질까 저어 되어 기피하지만 어쩔 수 없이 유리 전기포트를 살 수밖에 없었고 혹시라도 깨질까 항상 염려되어 조심스럽게 5년을 써왔다. 이쯤 되면 나도 유리 안 깨먹는 훌륭한 어른이 되지 않았는가!라는 생각도 잠시, 2025년을 얼마 두지 않고, 정말 깨졌다. 내가 깨트렸다.
하부장에 넣어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사용하는데 얼마 전 별생각 없이 꺼내다가 상판에 부딪혀 입구가 쨍강.
내가 이래서 유리가 싫어.
지금의 나는 항상 따뜻한 물을 기본으로, 차를 수시로 마시는, 전기포트가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버린 관계로 바로 그 자리에서 주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깨진 부분이 입구인지라 물은 끓일 수 있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그리고 다시 고민.
다시 저렴한 유리 재질을 살 것인가 아니면 튼튼한 재질로 살 것인가. 가격 차이가 거의 3배가 나기에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배송도 유리 재질은 바로 다음 날 받을 수 있는데 튼튼한 재질은 다음 주에 받을 수 있었다. 한동안 불편하게 깨진 입구를 주의하며 써야만 하는가.
5년 전이었다면 조금의 망설임이 있었겠지만 좀 더 저렴하고 배송이 빠른 유리 포트를 주문했을 것이다. 혹은 가격이 크게 차이는 안 나지만 디자인이 예쁘지 않은 튼튼한 재질의 전기포트를 구입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가격이 다소 나가더라도 내 마음에 들고, 내가 봤을 때 흡족하고, 오래 쓸 수 있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지갑의 여유에서 나올 수 있는 마음가짐이다.
그래서 산 새로운 전기포트. 2024년의 마지막 날 도착했다
스테인리스 재질에 용량은 1.5L, 가격은 그나마 연말 세일이 있어서 3배. 껄껄.
이전에는 1L짜리가 없다고 툴툴거렸던 내가, 차를 마시면서 큰 용량을 살 수밖에 없게 된 이 괴리감이 너무도 즐겁다. 이후에 샀던 보온병 용량이 1.2L인지라 매번 두 번씩 물을 끓이기 번거로웠었는데 이제 한 번만 끓이면 되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게다가 스테인리스 재질이라 깨질 염려도 없고 무엇보다 아무것도 없는 저 심플한 디자인이 너무 마음에 든다. 지금은 극단적인 미니멀리스트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미니멀한 마음가짐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 심플하고 아무것도 없는 디자인이 너무 좋더라고. 껄껄
본의 아닌 연말 소비와 함께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지만 새로운 포트와 함께 할 내 차 생활이 너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