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만나요

by 다반사

달달한 밤을 운영하는 후반에는 많이 아팠다.

십 대 때부터 가지고 있던 신장질환이 악화된 탓이었다. 아니 악화되게 방치한 내 탓이었다.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를 하느라 얼굴이 둥근 보름달처럼 부풀어 올랐고 체중도 15kg가량 불어났다

변해버린 외모 탓인지 자꾸만 나는 안으로 숨었다. 단골손님들의 걱정 어린 시선도 귀찮았고 견뎌내기가 버거웠다. 의사 선생님이 스테로이드치료를 시작하면 일도 쉬고 지인들 만나는 것도 미루라고 했는데 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구나..

다들 괜찮다고 하는데도 나는 괜찮지 않았다.

그렇게 불편하고 괜찮지 않은 이유로 나는 달밤과 석연치 않은 이별을 했다.


그리고 꽤 오래 쉬었던 것 같다. 장사를 하면서 친해진 옆집 사장님 카페에서 오전 알바를 겸해가며 운동도 하고 휴식도 취하면서 치료에 전념했다. 신장병이라는 건 원래부터 완치는 없었다. 그저 내가 받아들이고 앞으로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정해야 하는 인생후반전의 숙제 같은 거였다. 나는 숙제를 받아들이고 잘 풀어나갈 준비를 했다.

2년이 지난 어느 겨울의 끝자락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여느 때처럼 사람들이 없는 시간대를 틈타 동네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곤 어느 문 닫은 중국집에 붙은 임대전단지가 유독 눈에 밟혔다. 번화가는 아니지만 한적한 골목에 자리한 10평 남짓한 공간. 나는 눈가에 손을 갖다 대며 가게 안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유독 어딘가와 닮은 공간이었다.

언니는 언제든 말하라고 했다.

내가 다시 세상에 나올 준비가 된다면.

이제는 제법 체력도 돌아왔고 공황장애약도 많이 줄이고 건강하게 먹고 운동하며 사는 모습으로 돌아왔으니 지금이 그때인 것 같았다.

만약 두 번째 가게를 하게 된다면 주저 없이 카페를 하겠다고 둘은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달밤은 좋았지만 밤이라 힘들었다. 술도 좋았지만 취한 사람들은 싫었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다음에는 제정신인 사람들 상대로 낮에 장사하자'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유리에 스며있는 중국집의 묶은 기름때를 제거해 갔다. 이번가게는 유독 욕심을 냈다. 달밤에서는 정작 우리가 편히 쉴 공간이 없었기에 카페만큼은 우리부터 편안하고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우리 스타일에 맞는 목수인테리어팀과 간판팀을 모시기 위해 세 달을 삼고초려하며 러브콜을 보냈다. 겨울에 계약을 했으나 봄의절정인 5월 어느 날 드디어 두 번째 가게가 완성되었다. 장장 5개월의 대장정이었다.

그동안 언니와 나는 빵도 배우고 커피도 배우고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적한 골목에 사람들을 이끄는 좋고 익숙한 냄새가 풍겨 나왔음 했다. 우리의 공간은 이른 아침부터 골목의 온도를 데웠다

누구든지 부담 없이 좋은 사람들과 만남을 갖기 바라는 마음을 담아 "여기서 만나요"라는 이름을 지었고 금방 나온 퐁신퐁신한 빵을 진열하고 향 좋은 커피를 내려 손님들을 맞이했다. 오랜만에 소식을 전한 부름에 반가이 한걸음에 달려와준 지인들에게도 감사했다. 그렇게 다시 나의 일상을 되찾은 것만 같았다.

장사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을 무렵 카페 게시물을 올리면서 문득 우리 카페에 대한 반응이 궁금해 인스타로 카페이름을 검색해 살펴보았다. 카페를 다녀간 손님들의 게시물에 미소가 번져가며 웃고 있을 즈음 어딘가 묘하게 우리 간판과 똑 닮은 모양새에 이름까지 같은 게시물이 눈에 띄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카페이름부터 간판모양 글씨체까지 똑같은 카페가 타 지역에서 버젓이 운영되고 있었다. 게시물 날짜를 보아하니 우리보다는 한 달가량 뒤에 오픈한 가게였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며 넘어가기엔 너무 모방 수준의 불쾌한 골짜기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나는 고민하다 디엠을 보냈다. 내가 생각한 것이 맞았다. 지금생각해 보면 그 사장님도 딱 잡아떼셨으면 그만일 텐데 잘못을 인정하며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를 하셨다 자기 직원이 본인 아이디어인 것처럼 너무 술술 얘기를 해서 자기도 너무 맘에 들어 분별 심 없이 그렇게 해버렸다고 했다. 메모가 습관인 나는 몇 년 전부터 가게를 하면 이런 이름을 지어야지 하며 생각날 때마다 메모를 했었다. 나는 고민과 노력의 흔적이 있었던 메모지 사진을 그 사장님께 보내며 누군가는 본인의 것을 만들기 위해 기다리며 준비했던 시간들이었다고, 그것을 빼앗긴 기분이 들어 안타깝고 허무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씀드렸다. 다행히 지방에 있는 카페라 상권이 겹칠일은 없었고 사장님 사정을 들어보니 딱해서 그냥 사과만 받고 그 일은 일단락되었다. 언니와 나는 액땜이라 치며 속 편히 샤머니즘에 속상함을 태워 보냈다. 모방과 창조는 늘 동시에 존재하는 모순 같은 걸까? 우리도 느낌 좋은 가게를 보며 영향을 받은 것들이 많다. 그래도 100% 모방하기에는 자존심이 좀 상하는 기분이 든다.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있는 느낌 이상하고 어색한 기시감 같은 것. 나의 생각과 노력을 보탠다면 좀 더 멋진 창조물이 될 텐데.. 나도 그 사건 이후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참 좋은 계절이 지나고 첫겨울이 왔다. 겨울메뉴와 따뜻한 담요를 준비하고 한창 겨울맞이를 하고 있을 무렵 유난히 동네가 뒤숭숭한 기분이 들었다.

하기야 뉴스, 신문에도 온통 그 얘기뿐이어서 모른 체 할 수도 없았다.

그래 뭐 겨울이면 매번 유행하고 한차레 지나가니까 사스나 메르스에 익숙해져 버린 탓인지 이번에도 그려려니 했다. 근데 이놈은 달랐다. 순식간에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얼어붙었다.

고작 코로나라는 맥주이름 같은 새끼 때문에


코로나 걸린 사람의 동선을 역추적하며 매스컴들과 매체는 팬데믹에 맞서는 동시에 엄청난 공포감을 조성했다. 재난영화의 한가운데 조난된 기분이 들었다카페 분위기마저 얼어붙고 급기야 맘대로 영업을 할 수도 없고 인원제한에 출입명부까지 작성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마스크를 사려고 온 동네 약국에서는 줄을 서는 다소 낯선 상황까지 펼쳐졌고 주변에서 기침소리만 내도 인기척을 느낀 송사리 떼처럼 흩어졌다. 우리는 코로나라는 이세계관을 빨리 받아들여야 했다.

카페는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따뜻한 빵들도 재빠르게 식어가고 팔지도 못하고 폐기되는 날이 잦아졌다. 카페뿐만 아나라 동네 가게들도 하나둘씩 문을 닫는 일이 늘어났다. 온기가 점점 사라지고

희망도 사라지고 있었다. 절망은 이렇듯 빠르게 전염되어 갔다.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배달로만 생계를 이어나갔다. 텅 빈 공간을 하루 종일 지키는 일은 힘들었다. 아니 도무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기다림이 사람을 더 지치게 했다.

코로나의 최전선에 있었던 정은경 보건복지부장관의 머리가 새하얗게 덮일 무렵 전 세계의 18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장장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서야 이 팬데믹은 막을 내렸다.

그래도 쉽사리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지 못했다.

불안은 생각보다 깊이 잠식해 있었고, 서로의 만남과 관계는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어버렸다. 코로나는 전 세계가 동시에 겪은 깊은 트라우마였다.


그다음 해 봄, 형부의 일본 발령으로 인해 언니는 일본으로 가야 했다. 혼자서 카페를 지킬 자신이 없었다. 두 번째 작별을 할 시간이 다가온 듯했다.

도망치듯 가게를 정리한 달밤과는 달리, 카페 정리소식을 전하자마자 손님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너무나 아쉽다고 자기들의 최고의 공간이었다고, 분에 넘치는 위로를 받았다. 코로나가 오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아니 어쩌면 우리는 코로나를 핑계 삼았을까 손님들의 진심 어린 환송을 받으며 알 수 없는죄책감을 동시에 느꼈다. 매일 출근해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를 하던 일상이 조금은 버거웠던 건 아닐까..

그시절 우리는 결국 코로나 때문도, 아니기 때문도 아닌 각자의 체력과 마음이 허락한 만큼만 삶을 통과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일들은 끝내기엔 아쉬웠고 어떤 하루들은 이어가기엔 벅찼다. 그 경계에서 나는 무너지지도, 끝까지 버티지도 못한 그저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었다.


가게 문을 닫던 날

마지막 영업을 마치고 불을 하나씩 끄고 조용하고 어두워진 카페 한가운데 앉아 찬찬히 가게 모습을 눈에 담았다. 촉촉해진 눈가를 서로 숨기며 민망한 듯 우리는 "아쉬워.. 그래도 좋았어"라고 말했다.

섭섭 합보 다는 안도에 가까운 감정이 먼저 와 스스로도 조금은 낯설었다.

밖으로 나와 다시 나는 양 눈가에 손을 대고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그 문 안에서 견뎌낸 시간들이 더 또렷하게 떠올랐다. 아팠던 몸으로도 출근을 했고

텅 빈 공간에서도 사람을 기다렸고, 그 와중에 누군가의 하루를 잠시나마 데워주었던 순간들.

그것만으로도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고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카페인스타에 마지막 게시물을 올렸다.

"우리 언젠가 어디선가 좋은 기회가 된다면 또다시

여기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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