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모메 Aug 22. 2022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달밤에 번데기와 함께 춤을

 

 대학 시절, 지금은 미투로 사라진 한 교수가 했던 말 중 사라지지 않는 말이 있다.

 공연이 끝나면 빨리 그 인물과 작별하세요. 사랑했던 연인과 이별하듯 잘 보내주세요.


그래야 다음 배역도 잘 맞이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후로 공연이 끝날 때마다 나만의 작별 의식을 진행했다. 그 효과는 아주 좋았다. 한두 달만 지나도 언제 그 공연을 했었냐는 듯 대사도 기억나지 않았고, 심지어는 그 무대에 선 적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많은 연인을 마음속에 품고 까맣게 잊었다.


 사랑했던 배역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오랜만에 발자취를 뒤적여보았다. 헤어진 x들과의 먼지가 쌓인 추억 상자를 여는 것처럼, 퀴퀴한 설렘이 느껴졌다. 대학교 시절에 적은 리포트를 읽다가 뜨끔하기도 했다. 그중 한 가지만 살짝 공유하자면, 내가 연기하는 공연을 보고 관객들이 쳇바퀴 같은 삶일지라도 인생을 즐겁게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의 인생은커녕, 내 인생을 책임지기도 여유가 없다. 언젠가부터 목표를 잃은 채 남들이 시키는 것에만 집중하며 삶을 떠돌게 되었는데, 23살의 나는 조금 엉뚱하긴 해도 삶의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나 보다.


 ‘삶의 의지’ 하니 떠오르는 배역이 있다. 바로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라는 작품 속 ‘니나’라는 인물이다. 소녀 시절에는 명예와 화려함을 꿈꾸며 배우가 되기를 희망하지만, 많은 역경을 겪은 후엔 자기 삶을 책임지고 인내를 하는 법을 깨달은 인물이다. 니나는 배우가 되지만 그리 재능 있고 유능한 배우가 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가야지’가 그녀의 방식이다. 졸업 공연에서 ‘니나’를 연기했을 때는 대사가 그다지 와닿지 않았는데, 지금에야 그녀의 말이 뼈아프게 들린다. 호숫가를 맴도는 갈매기처럼 연기 주변을 맴돌지만, 언제나 지망생을 맴도는 나.


 살아가며 한 번씩 그녀가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 목소리는 한밤중에 대본을 읽어보라 하고, 감정을 가장 솔직하게 털어놓는 블로그에 독백을 적게 만든다. 아마 문득문득 그녀가 생각났던 건, 그때의 열정을 불태웠던 나는 사라진 게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오랜만에 글을 쓰며 좋아하는 부분을 다시 읽어보았는데 마음에 뜨거운 것이 울컥하면서 눈물이 났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극 중 작별을 고하는 니나의 대사가 슬퍼서인지, 아니면 연기에 대한 나의 미련 때문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옛 연인이 그리운 이유에 대해, 그 사람이 그리운 게 아니라 과거의 어리고 순수했던 자신이 그리운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연기가 그리운 걸까. 그때의 행복했던 내가 그리운 걸까.


 돈을 안 받아도 무대에 설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던 마음은 사라졌다. 그럼 뜨뜻미지근하게 사랑하며 이 삶을 책임질 자신이 나에게 있나? 사랑도 사람도 오래되면 변하는 게 당연하듯, 그냥 자연스럽게 변한 것뿐일까? ‘연기하는 나’라는 캐릭터는 막을 내리고 커튼콜이 될까, 다시 한번 앙코르를 할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연기를 하든 다른 일을 하든 나는 나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걸 하지 않는 시간은 아무런 시간이 아니게 되니까. 그러니 나를 잃지 말자.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다시 만난다.

 꼬스쟈, 이제 난 알아요, 그리고 이해가 돼요. 우리가 연기를 하건 글을 쓰든 간에 상관없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꿈꿔왔던 명예도 화려함도 아닌, 인내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죠. 결국 우리는 믿음을 갖고, 자기 십자가는 자기가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내가 그것을 믿고 가면 그렇게 아프지도 않을 거고, 자기에게 맞는 인생은 그렇게 두렵지 않을 거예요.




작가의 이전글 명랑한 은둔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