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날씨를 이기랴?

25일 차:3.20. 목요일, 비 뒤 갬. 바람 심함, 기온 8~15도

by 장석규

Fontanillas de Castro ~ Faramontanos de Tábara 29km, 누적 거리 636.8km

날씨를 이길 수는 없다. 제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능력이 뛰어나도 날씨와 싸울 수 없다. 더욱이 이길 수는 없다.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순례자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 오늘 역시 그랬다. 잠을 자고 일어나자마자 문을 열고 밖엘 내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비바람이 몰아친다. 어쩔 수 없지 하는 체념의 자세로 짐을 싼다. 이런저런 비닐봉지들을 모아 두었던 게 유용하다. 배낭에 붙은 레인 커퍼를 씌우고 우의를 입은들 새는 비를 막지 못한다는 게 지난 이십여 일의 체험이다. 짐 하나하나를 비닐봉지에 담아 배낭에 쑤셔 넣는다. 비 오는 날 짐 싸는 방법을 나름 터득한 것이다.


알베르게에서 차려준 아침을 간단히 먹고 나선 시간이 08:00, 함께 묵었던 여섯 명의 순례자 누구도 길을 나서는 데 한 치의 주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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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를 나서며 동행인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왼쪽부터 로리나노, 저자, 루이스)


먹구름이 잔뜩 낀 상태에서 추적거리는 비도 비지만, 이미 물러진 흙길은 발을 묶어둘 듯이 푹푹 빠진다. 발을 옮기기가 쉽지 않다. 그렇듯이 한참을 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먹구름 틈바구니로 파란 하늘이 종잇장처럼 보인다. 오래 안 가 비가 그치겠구나 하는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기온이 크게 떨어지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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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0여 km 걸으니 Granja de Moreruela에 이를 즈음 비가 그치고 파란 하늘이 넓어진다. 역시 종잇장처럼 얇고 가늘던 파란 하늘이 먹구름을 몰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마을에서는 '은의 길' 가운데 큰 갈림길이 나온다. 북쪽으로 쭉 올라가면 아스트로가 Astroga에서 프랑스길과 합류하든가, 아니면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몇 개의 산을 넘어 오우렌세 Ourense(갈리시아어: 스페인어로는 오렌세 Orense)로 가든가 선택해야 한다. 우리 일행은 모두 프랑스 길을 걸은 이력이 있어 주저 없이 오우렌세로 가는 길을 택했다.

h_hd1Ud018svcrs727kpbyrvq_towmqu.jpg?type=e1920_std 로리아노가 오우렌세(오렌세, Orense)로 가겠다고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비가 그치고 해가 나니 한결 걷기에 좋아졌다. 이제는 오르막 내리막이 있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참나무 숲 사이, 아니면 밀밭 사이로 길이 시원하게 뚫렸다. 먹구름은 사라지고 흰구름 사이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따스하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고, 온몸에 땀이 솟으려 한다. 긴 호흡으로 산을 오르내리는데 이제는 바람이 분다. 12시쯤 산길을 내려오니 Esla 강이 나타난다. 세찬 바람이 나를 강 쪽으로 밀어붙인다. 모자를 벗어 손에 들었다. 스틱으로 중심을 잡으며 로마시대에 건설되었다는 Quintos 다리를 건너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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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니 노란 화살표는 두 갈래로 안내한다. 하나는 포장도로를 따라 평지로 가는 비교적 편한 길이요, 다른 하나는 강을 끼고 가는 오솔길로 시작해 산길로 이어지는 코스이다. 우리는 오솔길을 택하였다. 쭉쭉 뻗은 카미노를 걷다가 한 사람이 겨우 다닐 만한 길을 걷게 되니 호젓하기 그지없다. 그것도 잠시 산을 다 오르고는 또 이리 돌고 저리 도는 널찍한 카미노가 이어진다. 밤새 잠을 제대로 못 잔 태가 이제부터 발길을 옥죄는 걸까. 외쪽 장딴지가 뻐근해지고 피로가 몰려온다. 최종 목적지에 이르는 마지막 직선 카미노 3km, 소실점 거기 우리가 쉴 만한 마을이 보이니 반갑다. 배낭 허리끈도 풀고 가슴띠도 풀었다. 바로 그때 반가운 이정표가 보였다. 셋은 쾌재를 부르며 각각 자기 핸드폰에 기념을 남긴다. 산티아고까지 348.783km! 아! 우리가 벌써 이 만큼 왔네? 이런 이정표를 만날 때마다 스스로 대견해하는 건 언제나, 누구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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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ja de Moreruela를 지나고 20여 km 구간에는 단 하나의 마을도 없이 밀밭으로 뒤덮인 들판을 뚫고 지나는 카미노요, 산길을 돌고 도는 카미노였다.


우리가 쉬기로 한 동네 Faramontanos de Tábara 에는 알베르게가 없다. 알베르게가 있는 Tábara 까지는 6km 이상 더 가야 하기에 머물기로 했다. 알베르게 대신 개인 펜션을 하루 빌리기로 했다. 루이스와 로리아노, 나 이렇게 셋이서 각각 25유로씩 부담하기로 했다. 대신 집을 새로 리모델링해서 깔끔하고, 주방 설비가 잘 되어 있어서 저녁밥은 파스타를 해 먹었다. 요리를 하는 데 주된 일은 로리아노가 하고 나는 그 보조, 루이스는 허드렛일, 손이 척척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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